다음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상한 나라의 박근혜씨에게’ 전문.
박근혜 씨.
3년이 지나가는데도 대통령님이라 부르려니 입이 참 안 떨어지네요. 오만가지 흠결에도 ‘각하’라고 불러주는 충정이 어여뻐 총리로 간택되는 세상에다, 비 오면 우비에 달린 모자를 씌워줘야 할만큼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정권인데, 저는 참 벼슬 운이 없나 봐요.
3년 아냐, 100년이 지난다 한들 모자 쓰고 천년 묵은 구렁이처럼 목도리를 칭칭 감고 치정살인을 저지른 내연녀의 비주얼로 화면에 비치던 하영 씨와 군부대에서 국정원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에서 바퀴벌레처럼 국운을 좀먹으며 암약하던 그들이 차마 잊혀지겠습니까.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언어를 쓰며 여름엔 얇은 옷을 입고 겨울엔 목도릴 두르고 산다 한들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순 없겠지요. 우리가 지난 해 4월 16일 근혜 씨의 7시간을 상상할 수 없듯이 근혜 씨 또한 굴뚝 위의 시간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요.
누군가의 ‘밑’에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새끼들 옷 사주고 신발 사주며, 봉투값 50원 아끼겠다고 속이 다 비치는 봉다리에 주저리 주저리 장을 본적도 없을 것이고, 거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는 대출금과 이자로 월급날은 돈이 들어오는 날이 아니라 나가는 날이며, 그마저도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 못하고 주어지는 대가라는 게 믿어지시나요? 택시비 몇 푼이 아까워 댁이 잠들었을 오밤중이나 새벽에 입김을 기관차처럼 내뿜으며 뛰는 대리기사들, 밤 10시에 허기져 푹 들어간 눈으로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택배기사. 잠깐 현관문이 열린 틈으로 보이는 가족의 저녁을 보며 그는 얼마나 집으로 가고 싶을까요.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 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몇 년을 먹었더니 삼각 김밥만 보면 토한다는 알바 청년. 손바닥만한 햇살이라도 들어오는 창문이 있는 방이 꿈인 반지하나 고시원 청춘들. 공무원이 꿈인 청년들. 캄보디아나 북한의 이야기가 아니라 근혜 씨가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도 암담하지만 그들의 절망과 꿈을 근혜 씨가 단 한 자락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게 나는 더 절망입니다. 요즘 이어지는 자살 사건들을 근혜 씨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면 가위 눌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 죽음들은 자살이 아닙니다. 명백한 타살이지요. 사람은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이 희망이 있다면 안 죽거든요.

2011년 11월 8일 부산 영도 한진중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지자들을 향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자료사진
비정규직으로 십년 넘게 일하고 있는 조카가 있습니다. 서른이 되기 전엔 아침에 눈뜨는 게 제일 두려웠답니다. 스물 몇 살의 청춘이 아무 희망도 없고 설렘도 없이 시작해야 하는 하루라는 건 고통이지요. 왜 그러고 사냐고, 영어라도 배우라고 했던 제게 조카는 말했습니다.
“내가 그거 배우면 뭐하는데? 내 인생이 뭐가 달라지는데? 우리 마트에 영어 잘하는 애들 천지고, 대학원 나오고 공무원 시험만 몇 년씩 공부하는 애들도 천지야. 이모가 뭘 알어?”
참 많이 미안했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근혜 씨에게 “당신이 뭘 알어!?” 소리치고 싶은 사람들 부지기수 일 거고 그때마다 근혜 씨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면 이 나라는 많이 달라졌겠죠.
그 조카는 이제 연말이 제일 두려운 40대가 됐습니다. 임금이 깎이는 것보다 재계약에서 탈락하는 게 더 두려운 그런 이들에게 왜 애를 낳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게 이 나라의 출산정책이죠.
몇 년 전 정리해고를 뼈저리게 겪었던 한진중공업은 희망버스와 수많은 연대시민들의 힘으로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사원아파트 벽에 누군가의 아이가 남긴 ‘00새끼 배신자 새끼’ 라는 낙서는 아직도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저 글을 쓴 아이의 아빠는 해고자였습니다. 정리해고 싸움이 길어지고, 복직의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사원아파트에는 퇴거명령서가 매일 날아들고, 가압류의 협박은 서슬이 퍼렇고. 이런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비해고자라면요. 십년을 넘게 함께 일하며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내며 쌓아왔던 의리와 인간적 신뢰를 저버리고 파업 현장을 떠났겠죠. 그 상처가 아이들에게까지 남아있는 거예요. 같은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같은 유치원을 다니고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를 배신자로 명명하며 아직까지 서로 말을 안 한다는 저 아이들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야 할까요.
사람이 참 곤혹스러울 때가 있어요. 절망을 설명해야 할 때요. 기껏 설명했는데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을 때.

이창근, 김정욱 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굴뚝 농성을 다룬 경향신문 김용민만평
크레인에서 309일을 보내면서 전 울 여유도 없었어요. 우는 것도 마음과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 날이 있었어요.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는데, 크레인 벽으로 빗물이 줄줄 흐르는 거예요. 처음엔 어떻게 하든 안 젖게 하려고 이불이랑 베개를 양손에 들었어요. 양말이 젖더군요. 옷도 젖고. 그러다가 이불도 다 젖어 버렸습니다. 그 젖은 이불을 바닥에 내려놓고 내려다보니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무력할 수가 없습디다. 이불 하나도 건사할 수가 없는 무력감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습디다.
근혜 씨는 그렇게 생각하겠죠. 야, 이불 하나 새로 장만하면 되지. 전기도 끊고 저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날은 며칠씩 밥도 물도 못 올리게 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 굴뚝위에 지금 스타케미칼의 차광호, 쌍용차의 김정욱, 이창근 세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의 정책투명성이 캄보디아보다 떨어진다는 것보다 더 부끄럽고 충격적인 게 굴뚝 위에 세 명의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백여 명의 노동자가 구속되고, 26명이 죽어도 대화 한번 안되는 ‘노사문화’와 6년을 싸우고 9년을 싸우는 현장들이 도처에서 신음하는 ‘국민대통합’이 진정 부끄럽고 답답합니다.
재래시장에 가서 경우 없는 할매 할배들의 거칠고 더러운 손에 잡혀가며 그림을 만들고, 손수건을 준비해서 국제시장을 가봐도 지지율이 꼼짝도 안해서 성질나시죠? 어느 철없는 부잣집 딸내미처럼 “야! 이 삐리리야. 내 나라에서 내려!” 고함이라도 치고 싶죠? 비행기 돌리는 거 보다 더 쉽게 나라를 돌리고 역사를 돌렸는데 그거 못하란 법도 없죠. 전 국민의 60%가 넘는 국민들이 근혜씨에게 부정적이라는데 한 사람이 내리는 게 안 낫겠습니까.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