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반전은 그가 그만큼 절박했다는 걸 의미한다. 남북관계 단절, 한·일관계 악화로 한국은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중·일이 접근하는 순간 외톨이가 된다. 북·일이 대화하면 정부는 뭐하느냐는 타박을, 미·일관계 강화 되면 우리만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을 하면 강대국에 한반도 운명을 맡길 거냐는 질타를 받을 것이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할 판이다. 김정은·아베를 상대로는 진전을 보기 어렵다. 중국이라도 잡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궁지에 몰린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 베이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외교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자기 외교 원칙에 충실한 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하고, 한·중관계의 새 지평을 열고, 한·일 정상회담의 전망을 제시하며 외교난국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박근혜 외교 원칙을 단순화하자면 이렇다. 김정은·아베처럼 문제 있는 상대는 개과천선할 때까지 공격한다. 아니면 약간의 관용을 베풀어 기다려준다. 그 효과는 잘 알다시피 불안 증폭이다. 원칙 가운데 괜찮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일에 적용한다던 투트랙이다. 하지만 이를 실천할 의지와 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북한과 대화하되 도발은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그는 대화가 필요할 때 대결했고, 지뢰 사건처럼 용납할 수 없는 도발에 적시 대응하지도 못했다. 아베의 과거사 인식을 따지면서도 대화는 한다고 했지만, 줄곧 대화를 단절한 채 공세로 일관했다. 최근 국내외 압력에 밀려 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자 이제는 과거사 비판도 거두어들였다.
그런데도 한반도 주변 상황이 다소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 김정은의 자충수이다. 그는 대화복귀로 자기 실책을 빨리 거두어들여야 했다. 다른 하나는 박 대통령이 자기 외교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원칙으로부터 유연해지면서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기회도 잡았다. 열병식 참석이 좋은 예다. 중국과의 협력 강화는 북한 문제를 다룰 때뿐 아니라, 미·일을 상대할 때 한국의 위상을 강화시킨다. 시진핑은 중국몽, 신형대국관계의 개념이 말해주듯 아시아에서 대국의 위상에 맞는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 아베는 더 이상 전후 질서에 묶이지 않겠다며 한·일관계의 기초를 흔들고 적극적 평화주의를 기치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오바마는 아시아 회귀로 역내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미·중·일이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중견국가를 자처하는 한국만 현상유지 외교에 머물러 있다. 기존의 금기와 관성에 묶인 방어외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열병식 참석이 불편하고 시진핑의 외교정책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베이징에 가는 것처럼 김정은·아베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접근해야 한다. 미국이라고 모든 것이 흡족한 것은 아니다.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 지도자의 인간적 매력, 좋은 국가 이미지, 우호적 정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 없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목표만으로도 충분하다. 외교는 상대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좌우돼서는 안된다. 외교에 의해 삶의 공간을 안전하게 보장받고, 더 나은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운명을 안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베이징 경험이 박근혜 외교를 바꿀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