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80억 보너스 박차고 빈민가로 간 월가 직원 “지금이 훨씬 행복”

어니엘 2014. 1. 24. 13:50
반응형

80억 보너스 박차고 빈민가로 간 월가 직원 “지금이 훨씬 행복”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당신은 돈에 중독된 사람일까, 아닐까. 최근 개봉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조던 벨포트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8일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즈에는 ‘현대판 조던 벨포트’라 할 수 있는 기고문이 실려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돈에 대한 사랑 때문에(For the Love of Money)’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쓴 이는 샘 포크. 비영리단체(NGO) 대표인 그는 10여년 전만 해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 트레이더였다. 그는 왜 수십억원을 버리고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갔을까.

기고문을 보면, 미국 명문대 컬럼비아대학교에 재학하던 22살의 포크는 ‘크레디트스위스’에 인턴으로 일하며 월스트리트에 첫발을 들였다. 그가 월스트리트로 향한 이유는 다름 아닌 부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의 유년시절은 유복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싱크대 판매원이었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그의 아버지는 항상 부자가 되는 것을 꿈꿨다. 그의 아버지는 부자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상상과 달리 그의 가족은 어머니가 간호사 일을 해서 버는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포크가 크레디트스위스에 들어가 만난 세상은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평면 TV들과 최신형 컴퓨터 모니터들은 전투기 조종석을 연상케 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트레이더들은 우주선 안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는 이들처럼 보였다. 그 비디오 게임에서 이기면 포크가 그토록 원하던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시절 포크는 무기력함을 덜어내기 위해 매일 술과 대마초에 빠져있었고, 가끔은 코카인·리탈린·엑스터시 등 강한 약물도 섭취했다. 그에게는 크레디트스위스 인턴 자리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매우 사랑했지만 약물을 섭취하면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했다. 인턴 3주차가 되던 날 그의 여자친구는 “너 같은 사람은 싫다”며 이별을 통보해왔다. 변한 자신 때문에 떠나는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 포크는 매우 괴로웠다. 그는 결국 심리상담사를 찾았다.

심리상담사는 포크가 술과 약물을 섭취하는 이유가 자신의 무기력함을 덜어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자신이 아이 같다고 생각한 포크는 그날 이후로 술과 약물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몇달이 흘렀다. 술과 약물을 없이 살자 포크는 새로운 삶을 사는 느낌을 받았다. 심리상담사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술과 약을 남용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정신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인턴이 끝났지만, 크레디트 스위스는 포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았다. 그는 대학으로 돌아가 마지막 학기를 끝냈다.

대학을 졸업한 포크는 미국 내 최대 규모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취직했다. 그는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그는 취직 첫해 4만달러(약 4000만원)에 달하는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돈을 인출하면서 통장 잔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몇주 뒤 포크는 크레디트스위스에 취직한 대학 4년 선배가 90만달러(약 9억원)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려 포크의 22배였다. 그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을 하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몇년 동안 포크는 미친 사람처럼 일했고, 월스트리트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채권과 CDS(신용파생상품)를 취급하는 트레이더가 됐다. 그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일한 지 4년이 되던 해 그는 씨티은행으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다. 승진은 물론 2년 동안 175만달러(약 17억5000만원)에 계약하자는 제안이었다. 이후 그는 예쁜 금발의 미녀들과 데이트하고, 영국 런던에서 월세 6000달러(약 600만원) 아파트에 사는 화려한 생활을 시작했다.

25살의 포크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뉴욕 맨하탄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싶으면 전화 한 통만 하면 됐다.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브로커에게 전화하면 아무리 어려운 예약이라도 쉽게 할 수 있었다. 또 유명인들도 구하기 힘든 농구경기를, 그것도 선수들 뒤에서 볼 수 있는 티켓을 그는 구할 수 있었다. 그의 기고만장함은 단순히 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질투에 시달렸다. 그 옆자리에서 들리는 1000만달러, 100만달러, 200만달러 거래 성사 얘기는 그를 성가시게 했다.

그러나 포크의 심리상담사는 그의 기고만장함을 들어주지 않았다. 심리상담사는 포크에게 “당신이 대학 때 약물과 술에 중독돼 있었던 것처럼 돈에도 중독됐다”며 “마음 속 상처를 치료하는 데 돈을 써보라”고 조언했다. 마음 속 상처. 포크는 조금 생각하다 다시 헤지펀드 일을 하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

포크는 억만장자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욕망의 화신’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만약 원한다면 미크로네시아를 살 수도 있고, 뉴욕시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그들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유명 레스토랑을 손쉽게 예약하고, 상원의원을 그들의 사무실로 부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포크는 보다 큰돈을 원했다. 헤지펀드 매니저로 옮긴 그는 2년 만에 150만달러(약 15억원)를 보너스로 받았다.

그러던 그에게 월스트리트를 새롭게 볼 수 있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회사 중역들과 트레이더들이 모여 헤지펀드 관련 개정안에 대해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당시 월스트리트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정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포크는 “그런데 전체 시스템을 위해서는 개정안이 좋은 것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회의실은 조용해졌고, 그의 상사는 포크를 쏘아보며 말했다. “내 머리에는 전체 시스템을 생각할 곳이 없다. 나는 이 개정안이 우리 회사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만 생각한다.”

포크는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의 상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의 돈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보너스에 상한을 두는 것에 대해 트레이더들은 독설을 했다. 정부가 더 세금을 걷는다는 언급을 했을 때, 포크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분노를 들을 수 있었다. 트레이더들은 그들의 보너스를 줄이려는 이들 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경멸했다. 약물 중독자에게서 약을 뺏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그들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눈 속에서 20마일(약 32㎞)을 걸어가기도 할 테고, 심지어 자신의 할머니에게 강도짓을 할 것이다. 포크는 “월스트리트에 있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며 “보너스가 나오기 몇달 전의 트레이딩 부서는 ‘더 와이어(거대한 마약 조직이 등장하는 범죄 드라마)’에 나오는 마약이 다 떨어진 중독자들의 동네와 다름없었다”고 회상했다.

포크는 항상 자신보다 돈을 더 버는 사람들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들은 자신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포크는 세상에 있는 많은 모순들은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이용해 부를 쌓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포크는 위험한 회사의 파생상품에 엄청난 양의 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세상이 뒤집어졌을 때 그는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는 “너 같은 사람은 싫어”라고 말한 여자친구의 말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도 옳고, 이제는 포크도 자신이 싫어졌다.

포크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달았지만,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돈이 떨어질까봐 겁이 났고, 앞으로 받을 보너스들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5년 또는 10년 동안 길에서 보내면서 기회를 날려버린 바보 같이 느껴질 것이 싫었다. 그런 포크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그가 월스트리트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돈에 대한 그의 중독이 점점 약해져가던 2010년, 그는 마지막 발악을 했다. 그는 회사가 제시한 360만달러(약 36억원) 대신 800만달러(약 80억원)를 요구했다. 그의 상사는 “계약을 몇년 더 연장하면 보너스를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그 제안을 받는 대신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포크가 월스트리트를 떠난 첫 해는 매우 힘들었다. 한밤중에 돈이 다 떨어져 당황한 적도 있고, 옛 동료가 승진했다는 기사를 신문 헤드라인으로 접하기도 했다. 포크는 자신이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집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가끔 로또를 사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가 홀로서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는 현재 미국 LA에서 ‘그로서리십스’라는 NGO를 운영하고 있다. 그로서리십스는 ‘식료품(Grocery)’와 ‘장학재단(Scholarships)’을 합쳐서 만든 말이다. 이곳은 사람들에게 돈을 기부 받아 빈곤층에게 먹을거리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일을 한다. 포크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전했다. 그는 돈 중독자를 판별하는 방법을 얘기했다. 포크는 “자신이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 중독자가 아니다”며 “내 경험상 월스트리트에서는 ‘충분하다’라는 표현은 거의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기고문은 이날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 1위를 기록했다.

경향신문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