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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근의 단언컨대] 박정희도 배신자였다
- 정리 |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 시도가 여권의 권력투쟁으로 번졌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 저지를 강하게 밀어붙여, 새누리당도 당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통령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국회법 개정안이 사실상 무산됐는데도 몰아붙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협상을 책임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축출이라는 목표를 계속 향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사진)은 30일 공개한 팟캐스트 <이대근의 단언컨대> 제82회 ‘박정희도 배신자였다’에서 ‘배신의 정치학’에 대해 분석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에겐 유승민 문제가 공무원 연금 개혁, 메르스 사태 진정, 국회법 개정 저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면서 “유승민 축출은 박 대통령의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흔들리는 권력을 이 기회에 확실히 세우자고 그런 것이겠지만, 매우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배신의 정치학
정치에서 배신은 일상사이다. 브루투스는 시저를 찔렀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최측근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칼을 맞았다.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 린뱌오(林彪)는 자기를 후계자로 지명한 마오쩌둥을 암살하려 했다. 이집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은 자기 손으로 임명장을 준 국방장관 엘시시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호주 줄리아 길러드 전 총리는 2010년 자신의 정치적 멘토인 케빈 러드 총리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역사는 이처럼 권력이나 무력을 동원해 정치적 스승, 동지, 주군을 배신한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다. 배신 없이는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전두환은 아버지라고 하던 박정희를 부정했고, 노태우는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친구 전두환을 백담사에 보냈다. 김영삼은 함께 손을 잡았던 노태우를 감옥에 보냈다. 이 배신의 연속극을 단순화한다면 민주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치 이념이나 정책에 대한 헌신이든 정치인간 신뢰 관계든 상황과 조건이 수시로 변화하는 정치에서 배신은 피할 수 없다. 정치적 여건이 변했는데 과거 신념과 인간적 의리에만 집착한다면 그게 수구이고 퇴행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어떤 경우 배신이 발전이고 혁신이며 진보일 수 있다. 적어도 정치 영역에서 배신은 악, 의리는 선이라는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다.
배신을 찬양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시저>이다. 시저를 살해한 브루투스가 로마 시민들 앞에서 한 연설을 보자. “왜 내가 시저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대답은 이렇습니다. 시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시저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시저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가 행운을 타고 났기에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가 용감했기에 그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눈물, 그의 행운에 대한 기쁨,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습니다.”
■박정희도 배신자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제 때 조선인을 배신했다. 천황을 위해 혈서를 쓰고 만주군으로, 일본 육사로 진출했다. 그러나 해방되자 천황을 배신하고 남로당으로 전향했다. 공산주의 활동을 열심히 했던 그는 1948년 여순사건 때 당국에 체포되고 사형의 위기에서 동료를 밀고하는 대가로 살아났다. 전통적 의미의 배신이었다. 그는 다시 공산주의를 버리고 반공주의로 돌아섰다. 그게 끝이 아니다. 4·19혁명으로 수립된 장면 정권을 상대로 쿠데타를 했다. 그는 또 민정이양 한다는 약속을 어겼고, 3선 불출마 공약을 깨고 헌법을 개정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 정권에 참여한 저명한 정치인 명망가들이 반박정희로 돌아섰고, 반유신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누가 배신자인가. 박정희인가, 반박정희 세력인가.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정희의 인생은 한마디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한, ‘배신으로 점철된 인생’이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금 ‘박정희는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면서 “박정희 평가를 배신 여부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신자라는 사실보다 산업화에 성공한 정치지도자로 평가하는 것이다.
박정희를 비판하는 세력 역시 그가 배신자였다는 이유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가 한 일, 즉 독재, 반민주적 억압 통치, 공작 정치, 인권탄압 등으로 비판한다. 이 논설위원은 “정치 영역에서 배신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면서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배신자였음에도 존경하고 있지 않나. 박 대통령의 관점에서 아버지였을 뿐 아니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정치지도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신이 없었으면 존경할 아버지도 없는 것이다. 이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도 스스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배신했다는 것에 너무 상심해서 국정의 중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복수심은 자신과 당을 망친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 연금 개혁이 무산되어도 좋으니 야당의 국회법 개정안을 받지 말라는 자세로 임했다. 메르스 확산에도 불구하고, 국회법 개정안 합의를 한 여야를 비판하며 정쟁을 이끌었다. 이는 박 대통령에게 공무원 연금 개혁 보다 국회법 개정 저지가 더 중요했다는 걸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결국 거부권을 행사했고, 새누리당은 재의에 부치지 않기로 했으며, 재의하게 되더라도 부결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당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통령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거부권 자체도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살만한 태도를 보였다. 거부권 행사로 국회법 개정안이 사실상 무산되었는데도 몰아붙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협상을 책임진 유승민 원내대표의 축출이라는 다른 목표를 향해 계속 행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집권세력의 대립과 갈등 등 많은 무리가 따른다.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국 경색과 비교할 수 없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에겐 유승민 문제가 공무원 연금 개혁, 메르스 사태 진정, 국회법 개정 저지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면서 “그래서 당초 거부권은 수단이었고 목표는 유승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이 논설위원은 유승민 축출이 박 대통령의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친박계는 몰락중이다. 이미 당 대표, 국회의장, 원내대표 등 ‘친박’과 ‘비박’이 대결한 세 번의 당내 선거에서 친박이 전패했다. 과거 친박의원들도 비박으로 돌아섰다. 19대 총선 때는 박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천권을 행사해 승리했고, 그 때문에 친박이 압도적이었다. 지금은 많아야 30명 정도이다. 국정 무능에 지지율 하락 때문에 친박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유승민 대표를 강제 사퇴시키기도 어렵지만, 성공한다 해도 비박계를 자극하고 결집시켜 친박계 원내 대표를 만드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친박의 몰락을 재촉하게 된다. 설사 친박 원내대표를 낸다 해도 그런 지도부로는 총선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이 참에 불편한 상대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제거해 버리고 싶겠지만, 전당대회를 다시 해도 친박 당 대표 선출 가능성은 적다. 역시 친박 당 대표가 된다 해도 미래는 암담하다. 총선 패배는 물론 마땅한 대선 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대선 패배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복수심에 불타는 박 대통령은 당이 어떻게 되든, 총선 패배하든 말든, 배신자를 심판하는 것으로 만족할지 모른다”면서 “복수심에 불타면 재집권 포기하고사러도, 야당에 권력 내주더라도 배신자를 지옥까지 따라가 혼내주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다. 이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은 흔들리는 권력을 이 기회에 확실히 바로 세우자고 그런 것이겠지만, 그런 방식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면서 “국정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권력을 되찾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권력을 동원하는 변칙으로는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권력을 다시 모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친박은 왜 ‘배신’하는가
친박 좌장이었던 김무성 당 대표, 친박 핵심이었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주변에서 멀어졌고 오히려 비판세력이 됐다. 친박이었다가 돌아선 전·현직 의원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왜 친박은 친박으로 남지 못할까. 친박이 하나의 파벌이라는 것은 특정 정치인 중심의 정치집단이라는 뜻이다. 계파 보스와 의원들의 관계는 파벌의 특징상 어느 정도 수직적이다. 정치적 자원을 독점한 보스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다라 추종 의원들의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계파 보스가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던 ‘3김 시대’가 아니다. 보스가 가진 정치적 자원도 그렇게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파벌이라 해도 어느 정도 수평적, 협력적 관계가 필요하다. 보스가 정치적 구심이기는 하지만, 계파를 군주와 신하의 관계망으로 지속하려고 하면 파벌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그런데 박 대통령은 오직 보스만이 생각하고 판단할 뿐, 나머지는 충실히 따르기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계파에서는 정치 지도자로 클 인물도 있고, 보스에게 영향을 줄 조언자도 필요하다. 보스는 계파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계파 의원을 부하가 아니라 정치적 동지로서 대우해야 한다. 조언을 경청하고, 상호 의논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당신들이 나를 좋아서 따르고 있는 것이니, 내 뜻을 존중할 생각이면 나를 무조건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친박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계파는 결코 클 수 없다.
결국 김무성, 유승민, 진영 등 친박 핵심은 이러한 계파의 한계 때문에 박 대통령을 떠났다. 이혜훈 전 의원, 전여옥 전 의원 등 정치인뿐만 아니라, 김종인 전 장관, 김광두 서강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처럼 대통령 만들기에 상당한 기여를 했던 사람들도 박 대통령을 떠났다. 이 논설위원은 “이들이 기대했던 것을 박 대통령이 하지 않고,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그들은 아마 박 대통령이 배신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을 떠난 이들을 배신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박 대통령을 추종하지 않기로 결심한데는 박 대통령의 책임이 상당히 있다. 박 대통령은 의원일 때는 비교적 자기 원칙과 소신을 지킨 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원칙과 소신은 사라졌다. 대신 대통령 권력을 동원한 임기응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런 계파 보스를 따르며 남아있는 계파 정치인들이라면 경쟁력이 있을 리 없다. 친박이라는 이름은 이제 무능한 정치인과 동의어가 됐다. 이 논설위원은 “친박계로 남아있다는 것은 이러한 낙인을 묵묵히 감내하며 오직 보스의 영광을 위해 자기 희생하는 살신성인의 정치인이거나, 친박계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는 한계 정치인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배신자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배신자가 누구인지를 따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배신했다고 판단하고 떠난 의원들도 있다. 보스로서 기대되는 역할을 전혀 못해 실망하고 떠난 의원들에게 배신자는 박 대통령일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친박 핵심 의원, 지도자급 의원들이라면 그들의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누가 배신자인가?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이 ‘배신자 게임’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박 대통령 어법대로 배신하지 않는 걸 신뢰라고 해보자. 신뢰는 두 차원이 있다. 하나는 대의 명분을 지키는 것이다. 이념, 정책 등 가치 체계를 뒤집지 않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지키는 걸 말한다. 다른 하나는 특정 개인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전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박 대통령은 배신자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공약 파기로 다수를 배신했다. 그런데 다수를 배신한 박 대통령은 무죄이고, 박근혜 한 사람을 배신한 이는 중죄인가. 박 대통령이 말하는 배신은 후자, 개인적인 것에 가깝다.
이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에게 배신의 기준은 오직 한 가지, 자기 자신을 추종하느냐 않느냐 뿐”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직접 선거 유세에 나서 당선시켜주었는데 자신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고 이것저것 정책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따지며 자기 견해를 내세우면 배신자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계파도 정치집단이다. 계파라면 일정한 정치적 견해, 국가 비전, 노선과 정책에 대한 공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친박계라도 최소 공유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면 계파 존립은 어렵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계파를 하나로 결속시켜 줄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애당초 그럴 생각도 없었을 것으로 이 논설위원은 봤다.
그렇다면 왜 박 대통령을 배신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도 많을까. 배신자의 눈에는 모두가 배신자로 보여서 그런가? 혹시 그 자신이 배신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하는가? 나는 배신할 수 있지만, 나를 배신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사진)은 30일 공개한 팟캐스트 <이대근의 단언컨대> 제82회 ‘박정희도 배신자였다’에서 ‘배신의 정치학’에 대해 분석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에겐 유승민 문제가 공무원 연금 개혁, 메르스 사태 진정, 국회법 개정 저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면서 “유승민 축출은 박 대통령의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흔들리는 권력을 이 기회에 확실히 세우자고 그런 것이겠지만, 매우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신의 정치학
정치에서 배신은 일상사이다. 브루투스는 시저를 찔렀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최측근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칼을 맞았다.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 린뱌오(林彪)는 자기를 후계자로 지명한 마오쩌둥을 암살하려 했다. 이집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은 자기 손으로 임명장을 준 국방장관 엘시시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호주 줄리아 길러드 전 총리는 2010년 자신의 정치적 멘토인 케빈 러드 총리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역사는 이처럼 권력이나 무력을 동원해 정치적 스승, 동지, 주군을 배신한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다. 배신 없이는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전두환은 아버지라고 하던 박정희를 부정했고, 노태우는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친구 전두환을 백담사에 보냈다. 김영삼은 함께 손을 잡았던 노태우를 감옥에 보냈다. 이 배신의 연속극을 단순화한다면 민주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치 이념이나 정책에 대한 헌신이든 정치인간 신뢰 관계든 상황과 조건이 수시로 변화하는 정치에서 배신은 피할 수 없다. 정치적 여건이 변했는데 과거 신념과 인간적 의리에만 집착한다면 그게 수구이고 퇴행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어떤 경우 배신이 발전이고 혁신이며 진보일 수 있다. 적어도 정치 영역에서 배신은 악, 의리는 선이라는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다.
빈첸초 카무치니 ‘카이사르의 죽음’
배신을 찬양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시저>이다. 시저를 살해한 브루투스가 로마 시민들 앞에서 한 연설을 보자. “왜 내가 시저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대답은 이렇습니다. 시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시저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시저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가 행운을 타고 났기에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가 용감했기에 그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눈물, 그의 행운에 대한 기쁨,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습니다.”
■박정희도 배신자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제 때 조선인을 배신했다. 천황을 위해 혈서를 쓰고 만주군으로, 일본 육사로 진출했다. 그러나 해방되자 천황을 배신하고 남로당으로 전향했다. 공산주의 활동을 열심히 했던 그는 1948년 여순사건 때 당국에 체포되고 사형의 위기에서 동료를 밀고하는 대가로 살아났다. 전통적 의미의 배신이었다. 그는 다시 공산주의를 버리고 반공주의로 돌아섰다. 그게 끝이 아니다. 4·19혁명으로 수립된 장면 정권을 상대로 쿠데타를 했다. 그는 또 민정이양 한다는 약속을 어겼고, 3선 불출마 공약을 깨고 헌법을 개정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 정권에 참여한 저명한 정치인 명망가들이 반박정희로 돌아섰고, 반유신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누가 배신자인가. 박정희인가, 반박정희 세력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정희의 인생은 한마디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한, ‘배신으로 점철된 인생’이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금 ‘박정희는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면서 “박정희 평가를 배신 여부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신자라는 사실보다 산업화에 성공한 정치지도자로 평가하는 것이다.
박정희를 비판하는 세력 역시 그가 배신자였다는 이유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가 한 일, 즉 독재, 반민주적 억압 통치, 공작 정치, 인권탄압 등으로 비판한다. 이 논설위원은 “정치 영역에서 배신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면서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배신자였음에도 존경하고 있지 않나. 박 대통령의 관점에서 아버지였을 뿐 아니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정치지도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신이 없었으면 존경할 아버지도 없는 것이다. 이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도 스스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배신했다는 것에 너무 상심해서 국정의 중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복수심은 자신과 당을 망친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 연금 개혁이 무산되어도 좋으니 야당의 국회법 개정안을 받지 말라는 자세로 임했다. 메르스 확산에도 불구하고, 국회법 개정안 합의를 한 여야를 비판하며 정쟁을 이끌었다. 이는 박 대통령에게 공무원 연금 개혁 보다 국회법 개정 저지가 더 중요했다는 걸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결국 거부권을 행사했고, 새누리당은 재의에 부치지 않기로 했으며, 재의하게 되더라도 부결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당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통령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거부권 자체도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살만한 태도를 보였다. 거부권 행사로 국회법 개정안이 사실상 무산되었는데도 몰아붙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협상을 책임진 유승민 원내대표의 축출이라는 다른 목표를 향해 계속 행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집권세력의 대립과 갈등 등 많은 무리가 따른다.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국 경색과 비교할 수 없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에겐 유승민 문제가 공무원 연금 개혁, 메르스 사태 진정, 국회법 개정 저지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면서 “그래서 당초 거부권은 수단이었고 목표는 유승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히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이 논설위원은 유승민 축출이 박 대통령의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친박계는 몰락중이다. 이미 당 대표, 국회의장, 원내대표 등 ‘친박’과 ‘비박’이 대결한 세 번의 당내 선거에서 친박이 전패했다. 과거 친박의원들도 비박으로 돌아섰다. 19대 총선 때는 박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천권을 행사해 승리했고, 그 때문에 친박이 압도적이었다. 지금은 많아야 30명 정도이다. 국정 무능에 지지율 하락 때문에 친박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유승민 대표를 강제 사퇴시키기도 어렵지만, 성공한다 해도 비박계를 자극하고 결집시켜 친박계 원내 대표를 만드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친박의 몰락을 재촉하게 된다. 설사 친박 원내대표를 낸다 해도 그런 지도부로는 총선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이 참에 불편한 상대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제거해 버리고 싶겠지만, 전당대회를 다시 해도 친박 당 대표 선출 가능성은 적다. 역시 친박 당 대표가 된다 해도 미래는 암담하다. 총선 패배는 물론 마땅한 대선 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대선 패배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복수심에 불타는 박 대통령은 당이 어떻게 되든, 총선 패배하든 말든, 배신자를 심판하는 것으로 만족할지 모른다”면서 “복수심에 불타면 재집권 포기하고사러도, 야당에 권력 내주더라도 배신자를 지옥까지 따라가 혼내주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다. 이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은 흔들리는 권력을 이 기회에 확실히 바로 세우자고 그런 것이겠지만, 그런 방식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면서 “국정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권력을 되찾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권력을 동원하는 변칙으로는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권력을 다시 모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친박은 왜 ‘배신’하는가
친박 좌장이었던 김무성 당 대표, 친박 핵심이었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주변에서 멀어졌고 오히려 비판세력이 됐다. 친박이었다가 돌아선 전·현직 의원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왜 친박은 친박으로 남지 못할까. 친박이 하나의 파벌이라는 것은 특정 정치인 중심의 정치집단이라는 뜻이다. 계파 보스와 의원들의 관계는 파벌의 특징상 어느 정도 수직적이다. 정치적 자원을 독점한 보스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다라 추종 의원들의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계파 보스가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던 ‘3김 시대’가 아니다. 보스가 가진 정치적 자원도 그렇게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파벌이라 해도 어느 정도 수평적, 협력적 관계가 필요하다. 보스가 정치적 구심이기는 하지만, 계파를 군주와 신하의 관계망으로 지속하려고 하면 파벌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그런데 박 대통령은 오직 보스만이 생각하고 판단할 뿐, 나머지는 충실히 따르기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계파에서는 정치 지도자로 클 인물도 있고, 보스에게 영향을 줄 조언자도 필요하다. 보스는 계파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계파 의원을 부하가 아니라 정치적 동지로서 대우해야 한다. 조언을 경청하고, 상호 의논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당신들이 나를 좋아서 따르고 있는 것이니, 내 뜻을 존중할 생각이면 나를 무조건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친박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계파는 결코 클 수 없다.
결국 김무성, 유승민, 진영 등 친박 핵심은 이러한 계파의 한계 때문에 박 대통령을 떠났다. 이혜훈 전 의원, 전여옥 전 의원 등 정치인뿐만 아니라, 김종인 전 장관, 김광두 서강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처럼 대통령 만들기에 상당한 기여를 했던 사람들도 박 대통령을 떠났다. 이 논설위원은 “이들이 기대했던 것을 박 대통령이 하지 않고,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그들은 아마 박 대통령이 배신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을 떠난 이들을 배신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박 대통령을 추종하지 않기로 결심한데는 박 대통령의 책임이 상당히 있다. 박 대통령은 의원일 때는 비교적 자기 원칙과 소신을 지킨 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원칙과 소신은 사라졌다. 대신 대통령 권력을 동원한 임기응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런 계파 보스를 따르며 남아있는 계파 정치인들이라면 경쟁력이 있을 리 없다. 친박이라는 이름은 이제 무능한 정치인과 동의어가 됐다. 이 논설위원은 “친박계로 남아있다는 것은 이러한 낙인을 묵묵히 감내하며 오직 보스의 영광을 위해 자기 희생하는 살신성인의 정치인이거나, 친박계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는 한계 정치인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누가 배신자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배신자가 누구인지를 따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배신했다고 판단하고 떠난 의원들도 있다. 보스로서 기대되는 역할을 전혀 못해 실망하고 떠난 의원들에게 배신자는 박 대통령일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친박 핵심 의원, 지도자급 의원들이라면 그들의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누가 배신자인가?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이 ‘배신자 게임’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박 대통령 어법대로 배신하지 않는 걸 신뢰라고 해보자. 신뢰는 두 차원이 있다. 하나는 대의 명분을 지키는 것이다. 이념, 정책 등 가치 체계를 뒤집지 않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지키는 걸 말한다. 다른 하나는 특정 개인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전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박 대통령은 배신자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공약 파기로 다수를 배신했다. 그런데 다수를 배신한 박 대통령은 무죄이고, 박근혜 한 사람을 배신한 이는 중죄인가. 박 대통령이 말하는 배신은 후자, 개인적인 것에 가깝다.
이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에게 배신의 기준은 오직 한 가지, 자기 자신을 추종하느냐 않느냐 뿐”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직접 선거 유세에 나서 당선시켜주었는데 자신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고 이것저것 정책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따지며 자기 견해를 내세우면 배신자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계파도 정치집단이다. 계파라면 일정한 정치적 견해, 국가 비전, 노선과 정책에 대한 공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친박계라도 최소 공유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면 계파 존립은 어렵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계파를 하나로 결속시켜 줄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애당초 그럴 생각도 없었을 것으로 이 논설위원은 봤다.
그렇다면 왜 박 대통령을 배신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도 많을까. 배신자의 눈에는 모두가 배신자로 보여서 그런가? 혹시 그 자신이 배신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하는가? 나는 배신할 수 있지만, 나를 배신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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