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시각)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뒤 나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바티칸/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수락만으로도 이번 유럽 순방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청와대 고위 관계자)
7박9일 유럽 순방을 마치고 21일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의 순방 최대 성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수락을 얻어낸 것이다. 세계 12억명 가톨릭 세계의 영적인 지도자이자 평화와 화해의 상징인 교황은 지난 18일 교황청에서 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갈 수 있다”며 흔쾌히 방북 요청을 수락했다.
애초 청와대 쪽은 이처럼 명확한 답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교황의 파격 메시지는 참모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날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과의 만찬 회동에서도 교황청 인사들은 교황이 문 대통령 알현에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교황 메시지는 우리가 기대하고 바랐던 그대로라고 생각한다”고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여기에 교황은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시라. 두려워하지 마시라”며 문 대통령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문 대통령은 교황의 지지를 이끌어내 자신이 구상한 한반도 프로세스에 힘을 얻게 됐다. 아직 시기를 확정하긴 이르지만 교황의 방북은 세계에 냉전 구도를 깨고 한반도의 새 질서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연내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냉전 해체를 통한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이라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다. 특히 교황의 방북은 국제사회에 북한을 정상국가로 데뷔시켜, 유럽 순방 내내 문 대통령이 강조했던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에 따른 국제 제재 완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유럽 순방의 또 하나의 주제였던 ‘북한의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실천에 따른 유엔 제재 완화’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7박9일 동안 대북 제재의 열쇠를 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를 만나 설득 작업을 벌였다. 문 대통령은 이들에게 북한 비핵화에 따른 제재 완화 등 상응 조처가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문 대통령은 유럽 주요 국가인 독일과 유럽연합 수장도 만나 같은 논리를 폈다. 프랑스와 영국은 문 대통령의 취지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북한도 시브이아이디(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위한 좀 더 확실한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즉각적인 제재 완화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일단 유럽 주요 국가 정상들에게 최근의 한반도 정세 변화를 충분히 설명했고, 북한의 비핵화 이후에 대비한 제재 완화 여부를 공론화했다는 데 의미를 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유럽 국가들과는 우리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관해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라들이 아니어서, 각 정상들이 최근의 상황 변화에 관해 매우 궁금해하면서 질문을 했다”며 “이들 정상에게 한반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설명했고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이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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