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 박인비 “도쿄올림픽, 의미 있지만 시기상조” (일문일답)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압도적인 응원 덕분에 좋은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올해는 일단 손가락부상 회복에 신경을 쓸 계획이다.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4년 뒤의 일이라 아직 확답할 순 없다.”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만큼, 박인비(28, KB금융그룹)는 활짝 웃었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낸 모습이었다.
박인비가 29일 서울 더케이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골프 역사상 최초의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기자회견을 실시했다.
박인비는 최근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에서 112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골프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여자골프는 116년만이었다.
박인비는 올해 건재를 과시,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됐다. 손가락부상 탓에 올해 기복을 보였던 박인비는 전격적으로 리우올림픽에 출전했고, ‘골프 여제’답게 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박인비는 이에 앞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5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US 여자오픈(2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3회), ANA 인스퍼레이션(1회), 브리티시 여자 오픈(1회) 등 4개 대회를 제패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바 있다. 이는 여자선수로는 역대 7번째며, 아시아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박인비는 기자회견을 통해 “압도적인 응원 덕분에 좋은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올해는 일단 손가락부상 회복에 신경을 쓸 계획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4년 뒤의 일이라 아직 확답할 순 없다”라며 그랜드슬램 달성 소감,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손가락통증에도 불구, 금메달을 따냈다. 현재 손가락 상태와 향후 일정은?
“손가락은 올림픽 기간에 많이 호전됐다고 느꼈다. 완치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의사선생님께 통증없이 경기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3주 정도는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 에비앙대회는 참가가 힘들 것 같다. 올해 가장 나가고 싶은 대회였고, 마지막 대회라 무리해서라도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몸을 더 신경써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팀과 상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손가락은 3주 후 상태를 본 후 재활을 3주 정도 해야 할 것 같다.”
-협회에서 3억원, 대한체육회에서 2,000만원 정도 포상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많은 포상금을 받았는데, 이번 포상금은 어떤 용도로 쓸 계획인지?
“압도적인 응원에 힘입어 내가 좋은 자리에 설 수 있었던 만큼, 고민하고 있다. 어디에 사용하는 게 좋을 지는 아직까지도 고민중이다.”
-과거 박세리 덕분에 '세리키즈' 신드롬이 생겼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인비키즈' 신드롬도 생길 것 같고, 골프 저변확대에도 도움이 될 듯 한데?
“골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돼 골프에 큰 힘이 됐다. 예전에는 골프 마니아층이 형성됐는데, 요새는 젊은 층도 나를 봤다는 얘기를 많이 해줬다. 팬 층이 다양해졌고, 골프가 많은 분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스포츠가 된 계기라 생각한다. 내가 박세리 감독님께 영감을 받았듯, 나로 인해 그런 현상이 생긴다면 영광일 것 같다.”
-최근 인터뷰를 통해 양궁 4관왕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고 했던데?
“양궁과 골프는 비슷한 스포츠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양궁선수들이 바람과 싸우는 것을 중계를 통해 확인했다. 양궁이 세계최강이듯, 여자골프도 한국이 세계최강이라는 것을 입증해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양궁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재활 이후 구체적인 일정은?
“일단 부상 경과를 봐야 한다. 대회나 얼마나 참가할지 미정이다. 대회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아서 올해는 완치에 더 힘을 쓸 생각이다. 기회가 되면 1~2개 대회에 출전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모르겠다.”
-앞으로의 골프 판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올해는 젊은 층의 선수가 발전한 시즌이었다. 올 시즌을 기점으로 내년, 내후년에도 젊은 선수들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도 활약하고 있어 베테랑이 우승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젊은 층의 기세를 꺾는 게 쉽진 않지만,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나이의 영향을 덜 받는 스포츠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승)기회는 있다고 본다.”
-귀국 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지난 주말에는 가족들과 경포대를 다녀왔다. 이전까지는 계속 바빴다. 무엇 때문에 바빴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어쨌든 굉장히 바빴다(웃음). 앞으로는 치료에 신경 쓰는 한편, 감사했던 분들에게 찾아가 인사를 드릴 생각이다.”
-박인비하면 멘탈 얘기가 많이 나온다. 본인의 멘탈이 골프선수로서 얼마나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골프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한 가지에 집중하면 주변이 안 보이는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가족들도 집중하면 그 외의 부분은 너무 무관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단점이지만, 골프라는 종목을 하는데 있어서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항상 집중력이 나오는 건 아니다. 메이저대회 또는 다른 대회보다 긴장해야 하는 대회라고 생각하면 힘이 더 나오는 것 같다. 나도 항상 (집중력을)발휘하는 게 아니라 쉽지는 않다. 다만, 리우올림픽은 다른 대회보다 집중이 잘 됐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도 많았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대회였다.”
-골프라는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정신력이 50% 정도 되는 것 같다. 테크닉은 30%, 창의력은 15%라 생각한다. 일단 정신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올바른 스윙도 나온다. 테크닉이 안 되면 정신력도 떨어진다. 둘 다 굉장히 중요하다. 창의력은 필요하지 않은 코스도 있다. 올림픽의 경우는 창의력이 필요한 코스가 많았다. 까다로운 코스도 있었고, 그래서 그동안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어프로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는데, 향후 목표는?
“올림픽을 치러보니 올림픽 출전선수가 어떤 느낌인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다음 목표는 아무래도 메이저대회에서 승수를 많이 쌓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욕심나는 부분이다. 일단 메이저대회 출전에 초점을 둘 계획이다. 물론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다만, 4년 뒤의 일이기 때문에 장담하기엔 아직 이르다. 또한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모범적인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리우올림픽에서 동작이 큰 세리머니를 해서 화제를 모았는데?
“나름대로 크게 세리머니를 했는데, 그땐 잘 몰랐다. 자연스럽게 나온 세리머니였고, 당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박세리 감독과 올림픽 전후로 나눴던 얘기가 있다면?
“올림픽 전에는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고충을 토로했다. 감독님이 격려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대회 끝난 후 누구보다 좋아해주셨다. 감독님과 함께 금메달을 일궈냈다는 부분은 특별한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감독님과의 궁합, 운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올림픽 금메달은 처음이었는데, 금메달을 깨물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부활 후 첫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게 돼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금메달이었다. 트로피는 항상 입맞춤을 하는데, 금메달은 깨물어달라는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 생각보다 무거워서 놀랐다. 깨물었을 때는 그간 경기를 해왔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트로피에 입맞춤할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아내로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2세 계획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나?
“선수생활 하는 동안 남편의 외조를 잘 받았고, 고마운 부분이 많다. 은퇴한 이후에는 남편 이상의 내조를 하고 싶다. 나도 남편에게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싶다.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확고하다. 다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여전히 골프가 즐겁다.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다. 온전히 아이에게만 집중하고 싶을 때, 100% 시간을 함께할 수 있을 때 아이를 갖고 싶다. 남편도 아들이든 딸이든 원하면 골프를 시키자는 얘기를 하긴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라 섣불리 얘기하긴 힘들다.”
-메이저 최다승도 염두에 두고 있나?
“매 대회에 좋은 경기력이 유지되면 좋겠지만, 메이저대회에 보다 집중하면 좋을 것 같긴 하다. 매 경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보단 메이저대회에 비중을 두는 게 낫다는 생각도 했다. 한 해에 메이저 3승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몸소 느꼈다. 메이저대회에 많이 출전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나. 도전할 게 남아있으면 앞으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못 나가지만, 에비앙대회도 우승하고 싶은 대회 가운데 하나다.”
-은퇴 후 골프행정가라는 계획도 있나?
“지금으로서는 향후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스포츠나 골프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면 좋을 것 같긴 하다.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나.”
-인기가 많아졌다는 것을 몸소 느낀 일화가 있다면?
“강원도 여행 갔을 때 일이다. 할머니들이 강원도 사투리로 금메달 축하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예전에는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많이 알아본다는 데에 놀랐다. 올림픽의 힘이라고 느꼈다.”
-올림픽 출전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올림픽 출전을 결정짓게 된 계기가 있다면?
“사실 나도 포기하고 싶은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스스로 100% 컨디션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언제 또 아플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정 내리는 게 힘들었는데, 116년 만에 열린 여자골프고 나라를 대표하는 대회였다. 개인적인 몸 상태만으로 포기한다면, 올림픽정신에 맞지 않는 결정이라 생각했다. 물론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운동선수로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열정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무대가 올림픽이다. 개인적인 부상, 두려움으로 포기한다면 올림픽이 아닌 골프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어떤 대회를 치르던 두려움을 계속 안고 출전할 것 같았다. 패배자로 남기 싫었고, 가족들도 출전할 수 있게 용기를 줬다.”
-올림픽 때 통증을 어떻게 이겨내고 라운딩에 임했나?
“아플 때도 집중을 많이 하면 통증이 안 느껴진다. 경기가 끝난 후 (통증이)온다. 도핑에 걸리지 않는 정도의 진통제는 먹었다. 통증은 감수하고 대회에 나갔고,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금메달 확신이 들었던 순간은?
“17번홀이 끝날 때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다른 대회와는 느낌이 달랐다. 막중한 무게감, 책임감이 느껴진 대회였고 매 샷에 진지하게 임했다.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중하게 임하기 위해 노력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올림픽 숙소생활도 화제를 모았다.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엘리베이터에 갇힌 일이 있었다. 8명이 약 30분 동안 갇혔는데, 소방관에 의해 구조됐다. 엘리베이터가 1층 정도 떨어져서 무섭긴 했다. 다만, 대회를 앞두고 액땜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샷에 임할 때 손, 발 감각 가운데 더 중점을 두는 쪽은?
“느껴볼 새가 없었다. 손이 발인지, 발이 손인지 모른다(웃음). 무의식 상태에서 홀에 집중해 임한다. 친구가 공과 채 가운데 어떤 것을 보면서 치는지 물어봤는데, 모르겠더라. 그 정도 집중력이 발휘될 때 좋은 퍼트가 나오는 것 같다.”
-최근 청와대를 방문했는데?
“영광이었다. TV로만 보던 선수들과 얘기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운동선수다 보니 통하는 게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님 옆자리에 앉아서 영광이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한 번 더 서로를 축하해주는 자리였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소렌스탐의 경우 아이를 위해 은퇴를 했고, 아이를 가진 후 선수생활을 하는 선수도 있다. 본인은 어느 케이스가 될 것 같은지?
“나는 소렌스탐 쪽이 될 것 같다. 아까 얘기했듯,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싶다. 하지만 언제 아기를 갖게 될 지는 아직 상상이 안 된다. 소렌스탐이 쓴 책을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왜 여기에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은퇴를 결심했다고 하더라. 골프선수로서 내가 말한 대로 목표가 다 이뤄지니 스스로도 놀랍긴 하다. 다만, 은퇴하는 시기는 향후 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도 언제가 될지 알고 준비하는 게 좋을 텐데, (은퇴시점은)아직 모르겠다.”
[박인비.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