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이 아직까지 병역비리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2012년 2월 마무리된 해프닝쯤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법원과 검찰, 병무청이 거듭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히는데도 처벌을 무릅쓰고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공개 검증을 통해 병역비리 의혹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의원직 사퇴 선언까지 했던 강용석 변호사도 최근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박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총정리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보시죠.
■ 4급 처분이 규정 위반인가
박 시장의 아들 주신씨는 2011년 8월29일 공군에 입대했다가 ‘대퇴부 말초신경 손상’을 이유로 나흘 뒤 귀가 조처됐습니다. 2011년 10월26일 열린 보궐선거에서 박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인 11월25일 재입영 통지를 받습니다. 12월9일 강남구 자생한방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엠아르아이(MRI) 촬영을, 같은 날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받았죠. 그리고 12월17일 재검을 통해 4급 공익요원 판정을 받았습니다.
의혹의 핵심은 ‘주신씨에 대한 4급 처분이 적법한가’입니다.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던 강용석 변호사(당시 국회의원)의 주장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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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병무청의 처분이 징병검사규정 제33조 3·4항을 위반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첫째, 제33조3항 위반 여부. 당시 규정(병무청훈령 제966호) 33조3항 “징병검사의사는 병사용 진단서와 같이 제출되는 방사선 영상자료의 촬영병원이 병사용 진단서 발행병원과 서로 다른 경우에는 자체 방사선촬영기를 활용하여 진위 여부를 확인한 후 판정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5월 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2015.5.6 출처 연합뉴스
주신씨는 3항에 해당합니다. 영상자료 촬영병원(자생한방병원)과 병사용 진단서 발급병원(혜민병원)이 다릅니다. 이 때문에 병무청은 3호에 규정된 대로 ‘자체 방사선촬영기’(시티)로 촬영해 주신씨의 상태를 확인한 뒤 4급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병무청은 박 시장 아들에 대해 엠아르아이 촬영 없이 시티만으로 4급 판정을 내렸다. 따라서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병무청 관계자는 “자체 방사선촬영기를 활용하면 되지 꼭 엠아르아이로 촬영해야만 한다는 규정은 없다. 4급 판정을 한 의사의 판단에 따라 시티 촬영을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둘째, 제33조4항 위반 여부. 당시 규정(병무청훈령 제966호) 33조4항은“병역면탈 범죄와 관련된 의료기관 또는 의사가 발행한 진단서는 참조하지 아니한다.”
주신씨에게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한 혜민병원의 의사는 병역비리와 관련해 징역 1년의 선고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주신씨는 다시 4항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주신씨는 이미 3항에 걸려 제출한 혜민병원 발 병사용 진단서만으로 판단 받지 못했습니다. 병무청이 자체 시티 촬영을 거치면서 4급 판정이 난 것이지요. 따라서 ‘4항에 해당돼 4급 처분이 무효’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입니다.
■ 강용석 주장대로 공개 검증
그럼에도 의혹 제기는 가능합니다. 강용석 의원은 2012년 2월14일 “박 시장 아들이 병무청에 제출한 엠아르아이 필름은 4급을 받을 것이 명확하다. 그러나 병무청에 제출된 것은 남의 사진”이라며 주신씨가 병무청에 제출한 엠아르아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본격 공세를 시작한 겁니다. “등 쪽의 피하지방이 3cm가 넘는데, 이는 체중 90kg이 넘는 고도비만 환자의 두께”라는 게 ‘남의 사진’이라는 주장의 핵심 근거였습니다. 강 의원은 “박 시장 아들은 (많아 봐야) 70kg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으로 확인되는 외관상 그렇다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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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의원은 공개신검을 제안합니다. 2012년 2월7일 자신의 트위터에 “박원순 부자가 만일 엠아르아이 필름 바꿔치기를 했다면 그게 바로 결정적 한방임. 그걸 확인하기 위해선 공개신검 필요. 엠아르아이 한 방만 새로 찍어서 그 필름과 병무청 제출 필름의 동일성 여부만 확인하면 됨. 이걸 못하고 있는 박원순이 문제”라고 적었습니다.
2012년 2월22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검증이 열렸습니다. 강 의원이 제시한 방안대로죠. 주신씨는 오후 2시께 병원을 찾아 몸무게와 키를 측정하고 30여 분 동안 엠아르아이 촬영을 한 뒤 3시쯤 귀가했습니다. 서울시 출입기자 4명이 이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의료진은 촬영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주신씨가 허리 디스크 증세를 지녔음이 분명하다. 지난해 12월 주신씨가 병무청에 신체검사 재검용으로 제출했던 엠아르아이 필름은 본인의 것”이라며 “이날 촬영한 사진은 강 의원이 (바꿔치기 의혹의 근거로) 제시한 사진과도 같다”고 발표했습니다. 병무청 역시 “재검용으로 제출받았던 주신씨의 엠아르아이 사진과 이날 세브란스병원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비교한 결과 동일인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 그땐 그랬지…사과 릴레이
감사원 누리집에 ‘엠아르아이 사진을 보고 강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신하게 됐다’는 글을 올렸던 한석주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짐작했던 것과 주신씨의 체형이 달라 오해했다’며 즉시 사과했습니다. 키 173㎝에 몸무게 63㎏으로 알려졌던 주신씨의 체형은 이날 병원에서 측정한 결과 176㎝에 80.1㎏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개 신검에서 4급이 나오면 즉각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던 강용석 의원은 “병역기피 의혹 제기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있었던 인신공격이나 명예훼손에 대해 당사자와 국민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물론 잔여 임기는 2달 남짓에 불과했죠. 그는 두 달 뒤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습니다. ‘꼼수 사퇴’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죠.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 씨의 MRI를 공개하며 바꿔치기 의혹 등을 제기했던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22일 오후 MRI결과가 사실로 판정나자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정론관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공개검증 뒤에도 의혹 제기자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회지도층 병역비리 국민감시단은 2012년 11월 주신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대리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같은 시각과 같은 장소에서 주신씨와 함께 엠아르아이 촬영을 했다는 겁니다. 이른바 ‘바꿔치기’ 의혹입니다. 세브란스 공개검증 자체가 허위라는 겁니다. 그러나 검찰은 2013년 5월29일 “사안의 핵심은 박 시장 아들의 의료 자료가 바꿔치기 됐느냐는 것인데, 여러 의사에게 감정을 받아본 결과 주신씨의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주신씨를 무혐의 처분합니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3~5월 박원순 시장 쪽은 비슷한 주장을 반복하는 이들을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합니다. 선관위 역시 이들의 혐의를 인정, 검찰에 고발합니다. 당선 뒤 박 시장이 고발을 취하했지만 검찰은 계속 수사해 지난해 11월 이들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서 박 시장의 의사와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주신씨 병역법 위반은 혐의 없고, 관련 의혹도 허위’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라는 뜻입니다. 법원도 여러 차례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정도를 넘어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며 박 시장 손을 들어줬습니다. 현재 검찰이 지난해 11월 기소한 7명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결과가 나오면 논란이 다시 한번 정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 의혹 제기 이유는 ‘바꿔치기’ 라는데…
거듭 제기하는 의혹의 핵심은 ‘바꿔치기’입니다. 이 의혹은 대리인이 ‘박원순 아들’이라고 하면서 검사에 응했다는 핵심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추측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엠아르아이 사진을 아무리 봐도 20대의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전문가의 주장 △주신씨 사진이라는 자생한방병원 사진 속 인물의 치아 치료 상태가 ‘야바위 수준’이라 강남 거주 중상층 젊은 청년이 받은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몇몇 전문가들의 추측 등이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추측들입니다. 2012년 2월 공개검증에 관여했던 세브란스 의사들이 박 시장과 직간접적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이들의 요구는 “다시 ‘제대로’ 공개 검증하라”는 겁니다.
‘바꿔치기 의혹’에 대해 공개검증을 참관했던 기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KBS 김상협, <서울신문> 송한수, <머니투데이> 최석환, <연합뉴스> 국기헌 기자 등이 참관했습니다. 이들 중 한 명은 23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선거 운동 기간에 박 시장 아들을 몇 번 봤다. 병역 관련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주신씨 사진도 여러 차례 봤다. 검사받으러 오는데 본인이 맞더라. 엠아르아이 촬영하는 것까지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는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의혹 제기하는 분들이 ‘그렇다면 세브란스가 사진을 바꿔치기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시더라. ‘세브란스가 무슨 덕을 보려고 병원의 존폐를 걸고 그런 조작에 가담하겠느냐’고 반문했더니 ‘방사선 기사만 매수하면 가능하다’고 하시더라”고 덧붙였습니다.
‘바꿔치기 의혹’이 성립하려면 제3자가 2012년 2월 세브란스 공개 검증에 응한 건 물론이고 2011년 12월 4급 처분을 내렸던 병무청 검사까지 대신 받았어야 합니다. 병무청도 속았다는 거죠. 병무청 관계자는 “신분증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한 뒤 검사를 진행한다. 대리인이 검사를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의혹을 ‘격하게’ 제기했던 강용석 의원이 2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 사퇴 의사를 밝히면 고개를 숙였다. 출처 뉴시스
■ 다시 리플레이
그래도 의혹은 계속됩니다. 무한 도전에, 이제 MBC가 나섰습니다. 지난 1일 MBC는 “주신씨의 엠아르아이 사진은 20대가 아닌 40대 남성의 것”이라는 주장을 보도합니다. 근거는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에 넘겨진 ‘영상의학 전문가인 양승오 박사’의 주장뿐입니다. 새로운 내용은 하나도 없는데 마치 새로운 의혹이 나온 것처럼 보도한 겁니다.
박 시장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이용자 16명과 함께 해당 기자와 사회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 등을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MBC 기자 등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또 검찰이 나서야하는 상황입니다. (
▶ 관련 기사 : 박원순 시장 “MBC, ‘아들 병역 기피 의혹’ 왜곡 보도” 형사고발 )
아 참, 공개 사과하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던 강용석 변호사도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엔 기소된 이들의 변호인 자격입니다. “지난번에는 제가 사퇴를 했지만 이 사건이 진행이 잘 되면 박 시장이 사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에 또 틀리면 강 변호사는 어디에서 물러날까요. 물러날 ‘직’은 있을까요?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