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댓글 작성 대가로 월 25만 원 지급
인터넷에 비밀카페 차리고 사이버전"
연제욱·옥도경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정치댓글 사건 1심 판결문
15.01.07 21:29
최종 업데이트 15.01.08 08:02▲ 연제욱.옥도경 전 국군사이버사령관의 정치댓글사건 판결문 중 일부. | |
ⓒ 전해철 의원실 |
군사법원은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지난 2012년 대선 전후로 대통령과 여당 등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정치댓글을 써온 사실을 확인했다.
<오마이뉴스>가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연제욱·옥도경 전 국군사이버사령관 판결문'(1심)에 따르면, 연제욱·옥도경 전 사령관은 매일 사령관실에서 정치적 사이버전의 결과물인 '대응작전결과 보고서'를 검토·수정했다. 또 이 '작전'에 참여한 부대원들에게 매달 25만 원을 지급하고 인터넷사이트에 '비밀카페'까지 개설해 사이버전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국군사이버사령부 예하부대인 530단의 정아무개씨는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댓글이 큰 논란을 일으킨 시점에 '530단 작전·위기조치예규'의 사이버사령관 서명을 위조했다.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작전보고서 파기와 정치댓글 삭제가 문제되자 '국군사이버사령부 작전예규 대체문'의 시행 일자도 허위 기재했다.
이들이 단 댓글들에 대해 군사법원은 "대부분 특정정당이나 특정정치인에 대한 지지와 이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며 '정치관여' 혐의를 인정했다. 그런데도 군사법원은 연제욱·옥도경 전 사령관에게 각각 집행유예와 선고유예를 선고함으로써 '면죄부 판결'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별이 2개 적립되었습니다' 이 문자의 뜻은?
'면죄부 판결'이라는 비판에도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이 작성한 판결문(2014년 12월 30일자)은 국군사이버사령부와 예하부대인 530단이 정치댓글 작성과 재전송(리트윗) 등을 통해 얼마나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는지 잘 보여준다.
먼저 대북 사이버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530단은 '1과 3대' 체제로 구성돼 있다. 1대에서 인터넷 매체 등을 검색해 정치 현안 등을 다룬 기사를 출력해 매일 오전 9시 530단 단장(당시 이태하)에게 보고한다. 단장은 보고된 기사들 가운데 '대응'이 필요한 기사를 선별하고, '대응논리'를 정리해 '작전지시'를 내린다.
530단장이 내린 작전지시는 KT에서 제공하는 내부시스템을 통해 부대원들에게 전파된다. 특히 부대원들에게 작전 내용을 전파할 때 '별이 2개 적립되었습니다'라는 위장문자를 발송하는데 이는 '대응할 기사가 2개'라는 뜻이다. 문자를 받은 부대원들은 비밀카페에 접속해 대응논리 등 구체적인 작전내용을 확인한 뒤 인터넷사이트나 SNS 등에 댓글을 작성하거나 남의 글을 재전송한다. 비밀카페는 두세 달을 주기로 변경된다.
530단에서 동영상, 웹툰, 포스터 등을 자체적으로 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단장으로부터 동영상 등 매체 제작 방향이나 지침을 시달받아 제작하는데, 자체 심의를 통과한 동영상 등은 정치적 사이버전에 활용됐다. 단순히 정치댓글을 달거나 남의 글을 재전송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사이버전을 수행한 것이다.
'안철수-문재인을 비판하고 박근혜를 지지하라'
이러한 방식으로 530단은 ▲ 한미FTA를 반대하는 야당 비판 ▲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일부 야당 정치인들 비판 ▲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박원순 후보, 전교조 등 비판 ▲ 탈북자를 변절자라고 발언한 임수경 의원 비판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애국가 제창 거절 비판 ▲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 최루탄 투척 비판 ▲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비판 ▲ '종북세력'으로 불리는 일부 국회의원들 비판 ▲ 백선엽 장군을 민족반역자라고 발언한 김광진 의원 비판 ▲ NLL 관련 발언한 일부 정치인 비판 등 "국방·안보현안을 넘어서는" 정치적 사이버전을 수행했다.
530단 소속 김아무개 중사는 지난 2012년 1월 31일 박원순 서울시장 무상급식 예산을 비판한 글을 재전송하면서 "원숭이~!!"라는 글을 작성했다. 이아무개 중사는 같은 해 6월 4일 임수경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탈북자는 변절자"라는 막말을 사과했다는 기사에 "저런 빨갱이년은 당장에 북으로 보내서 김정은이 기쁨조나 시켜야지"라는 '악성 댓글'을 썼다.
8급 송아무개씨도 박지원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노크귀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사퇴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기사(2012년 10월 16일자)에 "지는 실정에 책임진 적 있나. 교도관까지 매수해서 증거인멸한 인간이 ㅉㅉㅉㅉ"라는 댓글을 달아 박 의원을 공격했다. 심지어 이태하 전 단장은 일부 부대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안철수와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일부 부대원들은 이러한 정치적 사이버전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검찰조서에 따르면, 조아무개씨는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의 최루탄 투척사건과 관련해 "이런 정치적인 것까지 작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진술했다. 조씨를 포함해 일부 부대원들은 "작전내용이 너무 정치적이다"라고 문제제기했지만 이태하 전 단장은 이를 일축했다.
530단은 지난 2011년 11월부터 2013년 10월 15일까지 1만2844회의 댓글작성과 재전송 등을 통해 정치적 사이버전을 수행했다. 이 사이버전을 수행한 부대원들에게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노트북뿐만 아니라 업무수당 명목으로 매달 25만 원이 지급됐다. 부대예산으로 지급했다고 하지만 '예산출처'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보고서가 맘에 안들면 레이저 포인트 집어 던져"
530단 야간 상황 근무자들은 작전이 끝난 뒤 대응건수 등을 종합해 '대응작전결과보고서'를 작성했다. 국군사이버사령관은 매일 오전 6시에 열리는 '530단 상황회의'에 참석해 이를 검토했다.
연제욱 전 사령관은 지난 2011년 11월 18일부터 2012년 11월 1일까지 국군사이버사령관으로 근무했다. 근무하는 동안 연 전 사령관은 매일 오후 5시 자신의 집무실에서 당시 이태하 530단장으로부터 '대응작전결과보고서'를 보고 받았다. 대응작전결과보고서에는 ▲ 대응주제 ▲ 비판내용 ▲ 대응방향(작전지침) ▲ 대응결과 등이 포함됐다. 특히 대응결과에 "지지여론 5%→20%" 등처럼 이슈의 찬반 여론 동향 변화를 수치로 기재하도록 했다. 군사법원을 이를 두고 "'정치적 의견의 공표'를 넘어 '여론조성의 목적'도 인정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연 전 사령관은 대응작전결과보고서를 아주 꼼꼼하게 검토했다. 직접 보고서 내용을 수정하거나 메모지 등을 통해 수정사항을 지시했다. 심지어 판결문은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레이저 포인트를 집어 던지는 경우까지 있었다"라고 전했다.
"(연제욱 전 사령관은) 대응작전결과보고서 초안을 검토하며 위 보고서를 자필로 수정하거나 포스트 잇 등 메모지로 수정사항을 지시하는 등 당일 수행될 대응작전의 내용을 검토․확인하고, 매일 06:00경 위 530단 상황실에서 이태하(단장)로부터 야간에 종합된 댓글 수치가 포함된 대응작전결과를 보고받으면서 문맥, 오탈자, 자구 수정 등 대응작전결과보고서 최종본을 점검하며, 전일 수행한 대응작전에 대한 포괄적인 승인은 물론 대응작전간 유의사항을 지시하는 등 …."(판결문 8쪽)
후임인 옥도경 전 사령관도 연 전 사령관과 비슷했다. 지난 2012년 11월 2일부터 지난해 5월 11일까지 군군사이버사령관으로 근무한 옥 전 사령관은 부임한 후 1개월 동안에는 하루 두 차례 대응작전결과를 보고받았다. 이후에는 매일 오후 5시에 대면보고 받았다. 연 전 사령관과 옥 전 사령관이 근무한 동안 작성된 정치글은 각각 7575건과 5269건이었다.
사령관 서명도 위조하고, 공문서 시행일자도 허위기재
특히 530단은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댓글 사건이 큰 논란을 일으키자 국군사이버사령관의 서명을 위조하고, 공문서의 시행일자도 허위기재했다. '공서명위조'와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다.
530단 군무원인 정아무개씨는 지난 2013년 11월 6일 이태하 전 단장으로부터 비어있는 '530단 작전·위기조치예규'의 사령관 서명란을 보완하라'고 지시받았다. 그런데 정씨는 전 사령관인 고아무개 준장에게 서명받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해 고 준장의 서명을 수차례 연습한 뒤 자신이 서명했다.
또한 정씨는 같은 해 11월 26일 '국군사이버사령부 작전예규 대체문'의 시행일자를 허위기재했다. 530단에서 작성한 작전보고서 파기와 정치 댓글 삭제가 문제될 때였다.
정씨는 작전보고서 파기와 정치댓글 삭제의 근거를 보완한 '국군사이버사령부 작전예규 대체문'의 시행일자가 사령관이 결재한 '2013년 11월 26일'인데도 '2013년 7월 31일'로 허위기재했다. 그는 대체문 외에도 비밀관리기록부와 530단 작전·위기조치예규에 편철된 비밀이력카드에도 날짜를 허위기재했다.
작전보고서 파기와 정치댓글 삭제 이전으로 날짜를 허위기재함으로써 파기와 삭제를 정당화하려고 한 것이다. 이태하 전 단장의 지시로 상당수 '작전자료'들이 삭제돼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작전예규와 관련된 문서의 서명을 위조하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이를 모르는 후임자에게 인계하는 등 그 죄책이 무겁다"라고 판시했다. 정씨는 공서명위조와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530단 부대원들의 개인적 일탈행위 아니다"
재판부는 "530단 부대원들이 하나 같이 작전지시가 없었다면 정치댓글을 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제욱·옥도경의 지시가 없음에도 530단 부대원들이 개인적으로 일탈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댓글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두 전직 사령관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재판부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에 국가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를 반대·비판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얻게 되는 군사안보상의 이익은 크지 않다"라며 "반면 국가기관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개입함으로써 여론이 왜곡되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여론의 형성이라는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자유가 심대하게 침해돼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여론의 형성은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라며 "국가기관이 특정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국민들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개입하는 행위는 군사작전의 경우라도 그 긴급성과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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