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술력은 아직 사람을 화성에 보내기도 버거운 수준이지만, 1200광년 밖 거문고자리에 있는 행성(케플러-62f)이 생명체가 있을 만한 조건이 된다는 것은 알아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탐색이 가능한지, 향후 전망은 무엇인지 짚었다.
‘사회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1844년 인간이 영원히 알 수 없는 지식의 예로 “별과 행성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들었다. 실증주의자였던 그는 별에 직접 가 볼 수 없고, 시료를 채취할 수도 없으니 그 구성 성분은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860년, 콩트가 죽은 지 겨우 3년 만에 과학자들은 구성 성분을 알아낼 방법을 찾아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그의 책 <코스모스>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며 대학자 콩트가 하필 영원한 미지의 영역으로 별 이야기를 꺼낸 것을 두고 “운이 나빴다”고 안타깝게 여겼다. 현대의 우리는 심심찮게 먼 행성에 대한 뉴스를 접한다. 그냥 먼 것이 아닌 수백 광년(1광년은 9.5조㎞) 떨어진 곳의 생명체가 거주할 수 있을 태양계 밖 외계 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올해는 1992년 최초 외계 행성을 발견한 지 25년을 맞는 해이다. 지난해 인간은 모두 1467개의 새로운 태양계 밖의 행성(외계 행성)을 찾아, 기존에 우리가 알던 외계 행성의 목록을 갑절 가까이 늘렸다. 한해 사상 최대 발견이다. 내년 4월에 유럽우주국(ESA)의 우주망원경 ‘가이아’의 추가 데이터가 공개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차세대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이 발사되면 이 상승세는 더욱 올라갈 전망이다. 김승리 한국천문연구원 변광천체그룹 박사는 “과거 한해 수십개에 머물던 외계 행성 발견이 1천개 넘는 수준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연구의 막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외계 행성 사냥꾼’들의 최대 목표는 하나, 또 다른 생명을 품고 있는 행성을 찾는 것이다. 바야흐로 ‘외계 행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2만7710광년 떨어진 스윕스-11
‘위대한 천문학자’로 불리는 요하네스 케플러는 “인간이 천체의 지식에 대해 이르는 과정은, 자연 그 자체 못지않게 경이롭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확인한 가장 먼 외계 행성은 궁수자리에 있는 스윕스(SWEEPS)-4와 11로, 지구로부터 무려 2만7710광년가량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가도 2만7000년 넘게 걸리는 먼 곳의 행성을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 특히 행성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더욱 불가사의하다. 만약 2만7000광년 밖의 스윕스-11에서 태양계를 관찰한다면 태양 빛에 가려 지구 따위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열쇠는 빛에 있다. 스윕스-11에서 태양을 관찰한다면, 365일마다 한번씩 태양 빛이 약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왜냐면 지구가 한번씩 태양과 스윕스-11 사이를 가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가장 많은 2714개의 행성을 찾아낸(미국 항공우주국 집계) ‘통과 측광법’이라는 기술이다.
두 번째로 많은 행성을 찾아낸 방법은
619개의 행성을 찾아낸 ‘시선 속도법’이다. 무거운 별의 중력에 잡혀 있는 행성은 그 주변을 도는데, 동시에 별도 미약하나마 행성의 중력 때문에 제자리에서 약간씩 돌게 된다. 태양의 예를 들면, 지구 탓에 초당 12㎝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2만광년 밖에서 별의 이런 떨림을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역시 별빛을 분석하면 알 수 있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옆을 지나갈 때 소리가 점점 높아지다 낮아지는 것을 경험한 일이 있을 것이다. 같은 소리인데 차이가 나는 이유는, 구급차가 다가올 때는 소리의 파장이 압축되어 음높이가 올라갔다가 멀어질 때는 파장이 늘어지면서 음높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도플러 효과라고 하는데, 빛의 파장도 같다. 행성의 당김 때문에 별이 우리로부터 멀어질 때는 파장이 늘어지고, 가까워질 때는 파장이 압축된다. 빛의 경우 멀어지면 좀더 붉게, 압축되면 좀더 푸르게 보이게 된다. 이런 별빛 파장의 주기적 변동을 관측하면 행성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생명체 거주 가능 외계 행성 ‘프록시마 켄타우리 b’의 상상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천문학자가 이렇게 힘들여 외계 행성을 찾는 최대 목표는 ‘생명체’다. 행성 존재는 알 수 있다고 해도 어떻게 생명체 거주 가능 여부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나사는 지난해 8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생명체 거주 가능 행성” 프록시마-b를 공개했고, 올 2월에는 한 외계 행성계에 3개의 거주 가능 행성이 밀집하고 있는 트라피스트(TRAPPIST)-1을 찾았다고 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 거주 행성, 지구와 유사성으로 판단한다.
핵심은 우리의 생물학에서 생명체 잉태의 최적 조건인 액체 상태의 물이 행성 표면에 존재할 수 있는지다. 지구가 만약 지금 궤도보다 태양에 더 가까웠다면 너무 많은 태양에너지를 받아 금성처럼 뜨거워져 물이 모두 날아갔을 것이다. 반면, 멀었다면 천왕성 같은 얼음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생명체 거주 가능 지역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가 핵심이기에, 관련한 영국 전래동화에서 따와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 판별하는 데 쓰이는 별의 에너지는 별빛을 분석해서, 행성의 별로부터 거리는 통과 측광법으로 구할 수 있다.
푸에르토리코 대학의 ‘행성 거주 가능성 연구소’는 여기에 표면이 딱딱하고 지구와 유사한 질량과 크기라는 조건에 맞는 12개를 뽑아 ‘보수적으로 뽑은 잠재적인 거주 가능 외계 행성’ 최신 순위를 내놓고 있다. 19일 기준, 이 순위에서 지구 유사도(ESI)가 가장 높은 행성은 4.2광년 밖의 ‘프록시마 켄타우리 b’(0.87)가 차지하고 있다. 지난 2월 발견된 트라피스트-1 e, f, g 등 3개의 행성은 2, 7, 12위로 새롭게 진입했다. 이를 포함,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거주 가능 지역 행성은 모두 18개, 지구 보다 큰 크기의 거주 가능 지역 행성은 31개로, 지금까지 발견된 3593개 행성 가운데 골디락스 존에 속한 이들은 49개에 불과하다.
이런 외계 행성 발견은 세계 각지에 있는 여러 관측 망원경이 협업해 진행하고 있다. 먼 곳의 행성을 관측하는 데이터에는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별개의 검증을 받은 경우에만 학계에서 확인된 행성으로 인정받는다. 각지의 관측설비는 이렇게 서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협업을 한다.
가장 독보적인 설비라면 나사가 2009년 발사한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손꼽힌다. 케플러는 외계 행성 탐지가 목표인 망원경으로 지금까지 2500개가 넘는 행성을 발견했다. 지난해 외계 행성의 수가 많이 늘어난 이유도 케플러의 공헌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밖에 현재 지구 각지의 40곳 가까운 관측소에서 천문학자들이 끊임없이 외계 행성을 찾아 밤하늘을 살피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칠레 등에 지상 망원경을 운용 중이다. 김승리 박사는 19일 “케플러 망원경이 별과 가까운 근거리 행성을 찾는 데 강점이 있다면, 우리 망원경은 중력 렌즈라는 다른 방식으로 지구와 유사한 중간 거리 행성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의 지구’ 대기 분석 예정
지난해 큰 수확이 있었지만, 더 큰 발견이 남아 있다. 우선 지난해 9월 첫 관측 데이터를 공개한 유럽우주국의
‘가이아’ 우주망원경이 내년 추가 데이터를 내놓을 채비를 하고 있다. 2013년 관측에 들어간 이 우주망원경은 황극(지구의 태양 궤도 평면에서 하늘 꼭대기) 방향을 향해 약 10억개의 천체를 주기적으로 관측하는 장비다. 이 별들의 떨림을 통해 행성의 존재도 드러날 수 있는데, 유럽우주국은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개의 발견을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미 항공우주국이 개발한 차세대
우주망원경 제임스 웨브가 내년에 우주로 올라갈 예정이다. 제임스 웨브는 1990년부터 나사의 주력 관측 장비 역할을 해왔던 허블 우주망원경을 대신해 수십년 동안 그 역할을 맡는다. 망원경의 성능은 주경(main mirror)의 지름에 크게 좌우되는데, 허블이 2.4m였다면 제임스 웹은 6.5m에 달한다. 나사는 “제임스 웨브의 주 임무 가운데 하나는 외계 행성의 대기 측정이다. 행성을 통과해 나오는 별빛을 분광기(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구성 물질을 밝혀내는 방법)로 분석해 생명체 존재 가능 행성의 대기를 살펴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케플러 망원경은 외계 행성 연구 대상을 획기적으로 늘렸지만, 탐색 지역은 거대한 별의 강인 은하수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나사의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케플러의 발견을 바탕으로 우리 은하수에만 “20억개”에 이르는 “지구와 닮은 행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주에는 은하수 같은 다른 은하계가 500억개 존재한다. 지구가 홀로 생명체를 품고 있는 고독한 행성인지 아닌지 밝히기 위한 여정은 이제 겨우 걸음마일 뿐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