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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전강수(gsjun)
25.04.09 15:29ㅣ최종 업데이트 25.04.09 16:51
지금은 지난 4개월과는 판이한 상황이 펼쳐지려고 하는 시점이니만큼, 이재명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누구보다도 더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국면의 초입에서 이재명이 선택해야 할 길을 큰 그림으로 제시함으로써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앞으로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고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전제하므로, 민주당 내 다른 '잠룡'들이 서운해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16년 10월 29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와대 비선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으로서 권위를 잃었다”며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유성호
무엇보다도 먼저, 이재명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처럼 단지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소명으로 삼는다든지, 윤석열처럼 최고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일찍이 이재명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행한 연설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음과 같이 천명한 적이 있다. 2016년 10월 29일의 일이다. 일개 기초자치단체장에 불과했던 인물이 일약 전국적 정치인으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민주공화국을 위하여,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는 평등한 나라를 위하여,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진정한 자유로운 나라를 위하여, 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위하여, 생명의 침해가 걱정이 없는 안전한 나라를 위하여 우리가 싸울 때입니다. 박근혜를 내보내고 이 박근혜의 몸통인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기득권을 혁파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갑시다."
이재명은 그 후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서서 이 연설의 정신에 부합하는 공약을 내세우며 선전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로 선출되었다.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이재명은 성남시장 때 품었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며 이를 도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명의식에 기초한 국가발전 전략 보여주어야
그런데 지난 20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면서 이재명의 언행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으나,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 등 자신의 브랜드 공약들을 뒤로 물리는 행보를 보였다. 그 대신 내세운 것이 약 50개에 달하는 '소확행' 공약이었다.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라는 선거 구호에서 드러나듯이, 이재명 후보 측은 유권자들의 애국심과 정의감이 아니라 이기심에 호소했다. 국가발전의 장기 비전은 실종되는 듯 보였고, 여기저기서 소집단 이기심을 자극하며 이삭줍기하듯 표를 구하는 득표전략이 전면에 부상했다.
이런 전략을 두고 나는 2021년 11월 10일 자 <오마이뉴스> 칼럼 "기발한 이재명, 그래도 공학이 철학 이길 수는 없다"(https://omn.kr/22dhe)에서 공학이 철학을 압도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더욱이 2024년 8월 민주당 대표로 다시 선출된 이후 이재명은 '먹사니즘', '잘사니즘' 같은 신조어로 성장중심주의를 천명하는 한편, 종합부동산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상속세 완화 등 소위 '중산층 맞춤형' 정책들을 제시하며 소확행 방식의 기존 정책 노선을 한층 강화했다.
이쯤 되자 이재명이 어떤 소명을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설마 대통령 당선 그 자체를 소명으로 삼고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는 평등한 나라,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진정한 자유로운 나라를 마음에 그리며, 기득권을 혁파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2016년의 꿈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데 이재명은 이런 멋진 꿈을 포기한 것일까.
이와 같은 소명 인식을 분명히 갖추지 않는다면, 대선에서 승리해 21대 대통령에 취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난마처럼 얽혀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면 지지율에 연연하다 국정운영에 실패하고, 윤석열이라는 '괴물'까지 등장시킨 문재인 정부 꼴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실 오는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이재명은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해서 국가발전의 장기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이나 소집단의 이기심에 기대는 쪽이 득표에 유리할 수도 있지만, 대선은 전혀 다르다. 이번 빛의 혁명에서 드러났듯이, 우리 국민의 다수는 탄탄한 정의감과 민주 의식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재명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흔쾌히 자신에게 투표하게 만들려면 후보의 소명의식과 그에 기초한 국가발전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치 공학이 정치 철학 압도해선 안 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해 있다.남소연
이재명이 바른길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존재하는 듯해서 걱정이다. 이재명 본인이 누구보다도 계산이 빠른 사람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기승을 부리는 것이 정치 공학인데, 후보 본인이 계산이 빠르니 선거 전략이 공학 쪽으로 쏠릴 공산이 크다. 물론 표도 중요하고 득표를 위한 공학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적 소명과 정치 철학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패하기 쉽다.
어느 정당이건 후보를 정치 공학에만 몰두하게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 전략가들과 관료 출신들이다. 본질적으로 기술자에 해당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소명, 철학, 장기 비전을 말하면 한가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거 후 한 자리 차지하려는 간신배들도 즐비하다. 이런 사람들이 후보를 둘러싸고 좌지우지하면, 후보는 결국 망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 나라도 망한다.
이재명이 대표 시절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서 당태종과 위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위징은 당태종의 신하로 시도 때도 없이 왕을 괴롭힌 '쓴소리 선수'였다. 사소한 통치 기술 위주로 쓴소리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문제 삼은 것은 필시 당태종의 통치철학과 정책 방향이었을 것이다.
인사가 만사임은 만고의 진리이고, 이재명은 자신의 주위에 쓴소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히 아는 만큼, 주저함 없이 권면한다. 전략가와 관료 출신 등 기술자들의 위상을 낮추고 간신배는 과감히 쳐내시라. 그 대신에 정의·자유·공평·평등 같은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개혁적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시라. 지식인의 정치 철학과 기술자의 정치 공학을 적절히 조화시켜서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고단함·억울함·불안함에 시달리는 국민의 고통을 완화하는 동시에 국정운영에 성공해서 정권 재창출까지 이루시라. 나는 그렇게 끝까지 성공하는 대통령을 정말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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