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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기간 온·오프라인 상에서 이뤄진 여론 조작의 실상이 국정원 적폐청산TF의 발표로 조금씩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발표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2년 대선 당시 계정(아이디) 3500개를 동원해 여론 조작 목적의 점조직을 운영했고, 한 해 인건비로만 30억 원 가까이 사용했다고 한다.
사실 그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국가 기관에 의한 온·오프라인 여론 조작이 이뤄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언론에 의해 수차례 꼬리가 잡힌 적이 있지만 그것의 전체 규모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의 조사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것만으로도 대규모의 조직적 댓글 공작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긴 힘들 듯하다. 그리고 만일 그런 공작이 있었다면 그것은 명백한 '국기 문란 사건'이다. 실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제외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사건을 국민에 봉사해야 할 국가 기관을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킨 반국가·반국민 사건으로 규정하며 관련자를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일제히 성토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은 '친위쿠데타'
이처럼 댓글 공작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단죄가 헌법이나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나 이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국정농단죄가 존재하지 않기에 최순실과 박근혜를 국정농단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기문란죄라는 죄목은 우리 법체계에 존재하지 않고, 그렇기에 댓글 공작의 책임자를 국기문란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댓글 공작의 책임자들을 국정원법 위반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심판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온다.
문제는 그 경우 그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댓글 공작이 갖는 국기문란적 성격에 비춰 엄중한 처벌이 요구됨에도 그에 대한 법적 장치의 미비로 자칫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댓글 공작이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고 국헌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내란죄로 처벌하지 못할 이유가 딱히 없어 보인다. 물론 특정 범죄활동에 어떤 법을 적용할지는 법조계 인사들이 필자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들의 의견이 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상식인의 관점에서 댓글 공작에 내란죄를 적용하는 것이 그리 불합리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2012년도 대선 국면에서의 댓글 공작이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의 정치적 흥정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건 '친위쿠데타'다. 그 경우 댓글 공작은 내란죄와 같은 중요범죄로 반드시 단죄돼야 할 것이다.
형법 제87조의 내란죄는 국헌문란(國憲紊亂)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이다. 이 말은 내란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 즉 (1)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하는 (2) 폭동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댓글 공작 사건의 경우, 그 규모나 성격 면에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댓글공작이 국헌문란인가? 그렇다
형법 제91조는 국헌문란을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럼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댓글 공작이 이런 의미에서의 국헌문란인가?
필자는 그렇다고 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필자의 제안은 댓글 공작을 바로 이 헌법 1조 1항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범죄행위로 보자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이론에 따라 동등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의 존재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라는 점을 인정할 때 댓글 공작은 바로 그런 공론장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댓글 공작 사건은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인 비리로 흔히 언급되는 사대강 사업이나 자원 외교와는 차원이 다른 범죄다. 그것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뿌리째 위협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여러 연구자들이 주목한 바와 같이, 포털에서의 뉴스 댓글이나 다음의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공간은 민주주의적 공론장으로서의 잠재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여론 형성에 있어서 그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민주적 숙의가 이뤄져야 할 이런 공론장을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댓글 알바를 고용해 훼손했던 것이다. 이는 철저한 정보통제로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북한 정권의 여론 조작 행태와 방법만 다를 뿐 그 동기와 목적은 사실상 동일하다.
이처럼 국가기관이 앞장 서서 조직적으로,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공론장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댓글 공작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했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국헌문란 행위로 간주돼야 할 것이다. 이는 내란죄의 첫 번째 조건이 만족된다는 것을 뜻한다.
댓글공작은 폭동이었나... 그렇다 '사이버 폭동'이었다
댓글 공작 사건에 내란죄를 적용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아마도 그 두 번째 조건, 즉 '폭동'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일 것이다. 내란죄 적용에 반대하는 이들은 비록 댓글 공작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긴 했지만 폭동은 없지 않았느냐고 항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달리 생각할 여지가 많다.
폭동이란 무엇인가? 관련 문헌에서는 '폭동은 다중(多衆)이 결합하여 폭동·협박을 행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적어도 한 지방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할 정도의 규모여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댓글 공작에서 이런 의미의 폭동이 발생했는가?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은 그의 후기 저작에서 인간의 언어는 객관적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상하는 불변의 의미를 지니기보다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다양한 필요와 목적을 위해 수행되는 '삶의 양식'(form of life)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이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에서 언어는 인간의 삶의 한 측면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삶의 다른 측면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진화한다.
각종 IT기기나 인터넷이 보편화된 현대인에게 '문서'(document)라는 명사는 더 이상 종이로 된 사각형의 서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과거 '전쟁'은 요란한 총성이나 포성 속에서 살육이 행해지는 국가간의 무력충돌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총포도 살육도 없이)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상에서 상대의 정보체계를 교란, 통제, 파괴하는 사이버전 역시 '전쟁'이라는 단어의 의미의 일부가 됐다. 이처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에서 삶의 양식에서의 변화는 언제나 언어에서의 의미 변화를 동반한다.
언어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의미 변화는 법적인 문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령 어떤 내국인이 중국 정부와 공모하여 대한민국 국방부의 전산망을 공격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그를 외환유치죄(적국과 통모하여 대한민국과의 전쟁을 일으키는 죄)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할까? 필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비록 국방부의 전산망을 공격하는 것이 전통적 의미에서의 '전쟁', 즉 총성이나 포성 속에서 살육이 자행되는 종류의 전쟁은 아니지만 말이다.
'폭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댓글 알바를 동원한 사이버 공작은 다음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토론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현저하게 파괴'하는 사이버 폭동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에서 돈을 받고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린 댓글 알바의 목적은 애초 타인과의 대화나 토론이 아니었다. 그들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떠도는 좀비 같은 단어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인간의 생각을 담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생각의 간극을 매개하는 담화 행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영혼이 없는 좀비 언어가 인터넷 공간을 도배하면서 인간의 언어 행세를 하였지만, 온라인의 특성 때문에 그런 좀비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부터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담화 참여자들 사이의 신뢰와 존중이 필수적인 토론과 숙의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만무했다. 마치 조현명(schizophrenia) 환자들이 존재하는 자의 목소리와 존재하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일상이 혼돈으로 빠져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병박·박근혜 시절 인터넷 상의 토론은 인간의 언어와 좀비 언어의 혼재 속에서 곧장 이전투구와 상호비방으로 빠져들기 일쑤였다.
이렇게 댓글 부대에 의해 인터넷 상의 공론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던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안녕과 질서를 현저히 파괴하는 집단적 행위를 사이버 폭동이라고 정의한다면 댓글 공작은 그 정의에 가장 적확한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폭동'은 폭도들이 불법적으로 공공 또는 개인 재산의 파괴함으로써 지역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삶의 양식이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된 현대인들에게 '폭동'이라는 말의 의미도 '전쟁'이라는 말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삶의 양식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의미가 변화할 때 댓글 공작에 의한 인터넷 공론장의 침탈은 '사이버 폭동'이라는 말로 가장 잘 규정될 수 있다. 이는 내란죄의 두 번째 조건 역시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가 이번 댓글 공작 사건에 어느 법을 적용할지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자니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상식적 관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자는 필자의 제안이 아주 부조리해 보이진 않는다. 그에 대한 법전문가들의 진지한 검토를 요청하는 바이다.
사실 그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국가 기관에 의한 온·오프라인 여론 조작이 이뤄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언론에 의해 수차례 꼬리가 잡힌 적이 있지만 그것의 전체 규모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의 조사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것만으로도 대규모의 조직적 댓글 공작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긴 힘들 듯하다. 그리고 만일 그런 공작이 있었다면 그것은 명백한 '국기 문란 사건'이다. 실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제외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사건을 국민에 봉사해야 할 국가 기관을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킨 반국가·반국민 사건으로 규정하며 관련자를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일제히 성토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은 '친위쿠데타'
▲ 원세훈, '국정원 대선개입' 파기환송심 공판 출석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0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
ⓒ 권우성 |
이처럼 댓글 공작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단죄가 헌법이나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나 이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경우 그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댓글 공작이 갖는 국기문란적 성격에 비춰 엄중한 처벌이 요구됨에도 그에 대한 법적 장치의 미비로 자칫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댓글 공작이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고 국헌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내란죄로 처벌하지 못할 이유가 딱히 없어 보인다. 물론 특정 범죄활동에 어떤 법을 적용할지는 법조계 인사들이 필자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들의 의견이 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상식인의 관점에서 댓글 공작에 내란죄를 적용하는 것이 그리 불합리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2012년도 대선 국면에서의 댓글 공작이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의 정치적 흥정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건 '친위쿠데타'다. 그 경우 댓글 공작은 내란죄와 같은 중요범죄로 반드시 단죄돼야 할 것이다.
형법 제87조의 내란죄는 국헌문란(國憲紊亂)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이다. 이 말은 내란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 즉 (1)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하는 (2) 폭동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댓글 공작 사건의 경우, 그 규모나 성격 면에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댓글공작이 국헌문란인가? 그렇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15년 4월 20일 오후 낙동강 강정고령보 방문 당시 모습. | |
ⓒ 조정훈 |
형법 제91조는 국헌문란을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럼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댓글 공작이 이런 의미에서의 국헌문란인가?
필자는 그렇다고 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필자의 제안은 댓글 공작을 바로 이 헌법 1조 1항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범죄행위로 보자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이론에 따라 동등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의 존재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라는 점을 인정할 때 댓글 공작은 바로 그런 공론장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댓글 공작 사건은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인 비리로 흔히 언급되는 사대강 사업이나 자원 외교와는 차원이 다른 범죄다. 그것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뿌리째 위협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여러 연구자들이 주목한 바와 같이, 포털에서의 뉴스 댓글이나 다음의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공간은 민주주의적 공론장으로서의 잠재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여론 형성에 있어서 그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민주적 숙의가 이뤄져야 할 이런 공론장을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댓글 알바를 고용해 훼손했던 것이다. 이는 철저한 정보통제로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북한 정권의 여론 조작 행태와 방법만 다를 뿐 그 동기와 목적은 사실상 동일하다.
이처럼 국가기관이 앞장 서서 조직적으로,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공론장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댓글 공작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했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국헌문란 행위로 간주돼야 할 것이다. 이는 내란죄의 첫 번째 조건이 만족된다는 것을 뜻한다.
댓글공작은 폭동이었나... 그렇다 '사이버 폭동'이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2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
댓글 공작 사건에 내란죄를 적용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아마도 그 두 번째 조건, 즉 '폭동'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일 것이다. 내란죄 적용에 반대하는 이들은 비록 댓글 공작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긴 했지만 폭동은 없지 않았느냐고 항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달리 생각할 여지가 많다.
폭동이란 무엇인가? 관련 문헌에서는 '폭동은 다중(多衆)이 결합하여 폭동·협박을 행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적어도 한 지방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할 정도의 규모여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댓글 공작에서 이런 의미의 폭동이 발생했는가?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은 그의 후기 저작에서 인간의 언어는 객관적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상하는 불변의 의미를 지니기보다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다양한 필요와 목적을 위해 수행되는 '삶의 양식'(form of life)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이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에서 언어는 인간의 삶의 한 측면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삶의 다른 측면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진화한다.
각종 IT기기나 인터넷이 보편화된 현대인에게 '문서'(document)라는 명사는 더 이상 종이로 된 사각형의 서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과거 '전쟁'은 요란한 총성이나 포성 속에서 살육이 행해지는 국가간의 무력충돌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총포도 살육도 없이)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상에서 상대의 정보체계를 교란, 통제, 파괴하는 사이버전 역시 '전쟁'이라는 단어의 의미의 일부가 됐다. 이처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에서 삶의 양식에서의 변화는 언제나 언어에서의 의미 변화를 동반한다.
언어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의미 변화는 법적인 문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령 어떤 내국인이 중국 정부와 공모하여 대한민국 국방부의 전산망을 공격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그를 외환유치죄(적국과 통모하여 대한민국과의 전쟁을 일으키는 죄)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할까? 필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비록 국방부의 전산망을 공격하는 것이 전통적 의미에서의 '전쟁', 즉 총성이나 포성 속에서 살육이 자행되는 종류의 전쟁은 아니지만 말이다.
'폭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댓글 알바를 동원한 사이버 공작은 다음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토론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현저하게 파괴'하는 사이버 폭동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에서 돈을 받고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린 댓글 알바의 목적은 애초 타인과의 대화나 토론이 아니었다. 그들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떠도는 좀비 같은 단어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인간의 생각을 담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생각의 간극을 매개하는 담화 행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영혼이 없는 좀비 언어가 인터넷 공간을 도배하면서 인간의 언어 행세를 하였지만, 온라인의 특성 때문에 그런 좀비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부터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담화 참여자들 사이의 신뢰와 존중이 필수적인 토론과 숙의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만무했다. 마치 조현명(schizophrenia) 환자들이 존재하는 자의 목소리와 존재하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일상이 혼돈으로 빠져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병박·박근혜 시절 인터넷 상의 토론은 인간의 언어와 좀비 언어의 혼재 속에서 곧장 이전투구와 상호비방으로 빠져들기 일쑤였다.
이렇게 댓글 부대에 의해 인터넷 상의 공론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던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안녕과 질서를 현저히 파괴하는 집단적 행위를 사이버 폭동이라고 정의한다면 댓글 공작은 그 정의에 가장 적확한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폭동'은 폭도들이 불법적으로 공공 또는 개인 재산의 파괴함으로써 지역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삶의 양식이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된 현대인들에게 '폭동'이라는 말의 의미도 '전쟁'이라는 말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삶의 양식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의미가 변화할 때 댓글 공작에 의한 인터넷 공론장의 침탈은 '사이버 폭동'이라는 말로 가장 잘 규정될 수 있다. 이는 내란죄의 두 번째 조건 역시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가 이번 댓글 공작 사건에 어느 법을 적용할지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자니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상식적 관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자는 필자의 제안이 아주 부조리해 보이진 않는다. 그에 대한 법전문가들의 진지한 검토를 요청하는 바이다.
▲ 지난 2004년 10월 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원세훈 행정1부시장. |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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