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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06 국정원, 어미 죽이는 살모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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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종교인들의 시국발언, 어떻게 볼 것인가'에 참석해 토론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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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은 어미를 죽이는 살모사가 될 수 있다. 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였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지금의 국정원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그런 집단을 보듬으려고 할까? 멀리하고 털어버려야 한다."

    성염(72) 전 주(駐) 교황청 한국대사의 말이다. 이는 종교계의 퇴진 요구를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일침이다. 지금은 국정원을 보듬고 있지만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전망이기도 하다.

    성 전 대사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003년 바티칸 교황청의 한국대사로 부임했다. 바티칸에는 80여 개국에서 온 대사들이 전 세계 12억 명에 이르는 신부와 사제, 신도들을 연결하고 있다. 대사는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교황청의 메시지를 모국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성 전 대사는 4년간 바티칸에서 근무한 뒤 2007년에 한국에 돌아와 경남 함양에 터를 잡았다.

    그는 지난 3일 대한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주최한 '종교인의 시국발언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천주교 원로로 참석한 바 있다.

    5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는 박 대통령을 두고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단칼에 죽일 수 있게) 국민들이 한 모가지였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며 "대통령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지 협박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을 종북으로 내모는 박 대통령에게서 로마시대의 악명 높은 황제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사제단의 퇴진 요구는 교리에 따른 것"

    국정원을 비롯해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이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원 등의) 덕을 본 적 없다"는 말로 외면하고 있다. 이에 종교계 일부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4일에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공식적으로 퇴진을 주장, 파문이 일었다.

    사제단은 입장문을 통해 "종교계의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통과 독선,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일관하는 공포정치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이 모든 것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남이 명예로운 일"이라고 밝혔다.

    성 전 대사는 사제단의 사회 참여는 천주교의 교리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사회적인 윤리 감각을 갖고 있는 가톨릭 사제들은 엄청난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며 "이들에게 과도한 정치 개입이라는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됐던 박창신 사제단 전주교구의 강론에 대해서 성 전 대사는 "요한바오로 2세가 말한 '인간과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경탄'을 잘 실천했다"며 "강론에서 열거한 용산 철거민, 쌍용 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등에서 약자 편에 서서 종교적 언어로 호소했다"고 평가했다. 박 신부를 종북 사제로 몰아간 정부, 여당과 보수단체들을 향해서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이기에 종북과 사제는 양립할 수 없는 언어"라며 "현 정부가 그런 언어로 몰아 세우니까 (사제들이) 어떻게 용납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성염 전 주 교황청 한국 대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종교 부정하는 공산당과 사제는 양립할 수 없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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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은 22일 밤 7시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를 열었다. 사진은 미사를 마친 후 사제들과 신도들이 거리행진을 벌이는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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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사제단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겠단다. 천주교계의 원로로서 입장문 어떻게 봤나?
    "입장문은 지난달 15일 이용훈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의 발표에 뒤 이은 조치다. 사제단 자체의 돌발적인 행동은 아니다. 당시 이 위원장은 제32회 인권주일(12월 8일)을 앞두고 국가권력의 대선 개입을 문제 삼았다. 국가정보원, 경찰 등 국가 기관은 시민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대선이 이 기관들의 불법 개입하에 이루어졌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신부들은 그동안 관권 부정선거를 조사하고 결단 있는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오히려 선거개입을 조사하려 든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몰아냈다. 댓글이 계속 드러나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또 퇴진 요구하면 '종북'으로 내몰았다. 직무유기다. 사제들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천주교 외에도 앞서 기독교, 원불교, 천도교 등 종교인들의 박근혜 퇴진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를 한편에서는 과도한 정치 개입이라고 주장한다.
    "천주교가 사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기본 교리 때문이다. 5세기 가톨릭의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을 '사사로운 사랑'과 '사회적 사랑'으로 구분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 형태의 모든 사랑은 사사로운 사랑이다. 그것을 넘어서려는 게 사회적인 사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회적인 사랑만 하느님의 나라에 속한다고 했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사회적 사랑이란 곧 정치'라고 했다. 교황청은 이런 가르침에 따라 전 세계 그리스도인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의 주교회의가 따르고 사제단이 따른다.

    국민의 선거권을 유린하고 국정원의 대선 개입으로 집권한 대통령이라면 정의로운 통치자가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라고 했다. '정의를 상실한 공권력은 사법적 권한이 없다'는 말도 했다. 사회적인 윤리 감각을 갖고 있는 가톨릭이 엄청난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과도한 정치개입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 사제단은 논란이 된 박창신 신부의 강론을 지지했다. 어떻게 보셨나?
    "성당, 예배당, 법당은 성역이어야 한다. 종교인들이 이곳에서 주고받는 언어는 종교의 언어다. 박창신 신부는 천주교 사제로서 요한바오로 2세가 말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경탄이 곧 그리스도교다'라는 가르침을 실천했다. 강론에서 열거한 사건들, 용산 철거민, 쌍용 자동차 정리해고, 밀양 송전탑 등에서 약자 편에 서서 종교적 언어로 호소했다. 박 신부의 말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한 마디도 그런 호소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연평도, 천안함 발언만을 가지고 성토했다. 그게 도대체 뭐냐?"

    - 하지만 그 발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새누리당과 보수단체가 박 신부를 종북으로 몰았다. 이는 곧 천주교 전체에 대한 종북 몰이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지난 현대사에서 우리나라 권력자들은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빨갱이', '용공', '종북좌파'로 몰았다. 하지만 '종북'과 '사제'는 양립할 수 없는 언어다. 종교를 인정하지 않은 공산당이다. '공산당=사제'는 북한에서도 웃을 일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그런 언어로 몰아세웠다. 그걸 어떻게 용납할 수 있나.

    예수가 문둥병(한센병) 환자를 낫게 한 적 있다. 문둥이를 만졌다는 이유로 부정탔다고 몰았고 그래서 사람들 사는 마을에 못 들어갔다. 사제들은 지난 역사에서 문둥이라고 욕먹고 손가락질 당해온 사람들을 품어줬다. 문둥이 냄새가 나는 것을 자기들의 임무로 생각하고 있다. 사제단은 이번 입장문에서 그것이 자기들의 '기쁨이며 당위'라고 말했다. 문둥병도 서러운데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을 돕다가 '문둥이'라고 몰린다고 해서 사제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교황은 사제가 밖에 나가 손에 흙 묻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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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22일 밤 7시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를 연 가운데, 사제들이 미사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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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슷한 시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손에 흙 묻히는 교회 되라"고 권고하며 사회참여를 독려했다. 대한민국의 사제를 위해서 한 말 같았다.
    "지난달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펴낸 첫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이라는 문서에서 '새로운 복음선교'란 곧 '가난한 자를 편드는 정의 구현'이라고 못 박았다. 또 현대 교회를 '밖으로 나가는 교회'로 정의했다. 밖으로 나가면 당연히 손에 흙이 묻는다. 하지만 얌전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 낫다고 교황은 서슴없이 말했다.

    가톨릭에서 성직자가 공직을 맡거나 선출직에 뽑히거나 노조, 정당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다만 자기 교구장인 주교가 허락하면 그것도 사제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송기인 신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박 신부처럼 기도회에서 회개하기를 촉구하는 것을 정치 개입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양심상의 의무다."

    - 예수는 정치범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이 시국에서 천주교 신부와 수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손 놓고 있겠다는 것은 사랑을 포기하는 직무유기라고 했다. 종교가 정치를 하면 종교가 때가 탈까 걱정하겠지만 정치로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을 구하는 일은 얌전하게 성당 안에 남아 있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종북 신부'라는 욕설을 들으면서 그것이 자기들에게 '기쁨이며 당위'라고 하는 사제들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 개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제들은 끝까지 종교적인 언어를 썼다. 간곡한 타이름이지 증오의 포고가 아니었다. 국민이 여성 대통령 뽑았을 때는 여성스러운 시선과 말씨, 국민의 아픔을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는 어머니다움을 기대하지 않았겠나. 하지만 박 대통령은 말끝마다 '묵과하지 않겠다'로 국민들에게 협박하고 있다. 칼리굴라 황제가 '(단칼에 죽일 수 있게) 로마 국민들이 한 모가지였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지 국민에게 협박하는 사람, 여왕이나 황제일 수 없다.

    덧붙이자면 국정원은 어미를 죽인 살모사가 될 수 있다. 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였나?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지금의 국정원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그런 집단을 보듬으려고 할까? 멀리하고 털어버려야 한다."

    한겨레 신문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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