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52]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에 정국 꼬여
야당, 청문보고서 채택 오락가락 행보

인사청문회법 9조3항 ‘국회의장 직권상정’ 가능
각 당 자유투표땐 임명동의 투표결과 예측불가
가결땐 임명, 부결땐 대통령이 재지명하면 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6월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6월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헌법재판소는 1987년 개헌으로 탄생한 헌법기관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듯이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그런 헌법재판소 소장이 6개월 가까이 공백 상태입니다. 박한철 전임 헌재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와중인 1월31일 퇴임한 뒤 지금까지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정미 재판관이 권한대행을 하다가 3월13일 퇴임했고 뒤를 이어 김이수 재판관이 권한대행을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열흘 뒤인 5월19일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했습니다. 국회에 ‘헌법재판소장(김이수)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인사청문회는 6월7일과 8일 이틀 동안 열렸습니다. 그러나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지금까지 심사 보고서나 인사청문경과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 투표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금태섭·김성수·박주민·정춘숙 의원, 자유한국당의 유기준·김도읍·곽상도·백승주·이채익 의원, 국민의당 이상돈·김경진 의원, 바른정당 오시환 의원 등 모두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의 유기준 의원입니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유기준 위원장이 자유한국당의 당론에 따라 심사 및 인사청문경과 보고서 채택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당론으로 찬성,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당론으로 반대입니다. 국민의당은 찬성이나 반대 당론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국회 의석은 더불어민주당 120석, 자유한국당 107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 정의당 6석, 새누리당 1석, 무소속 5석입니다. 국민의당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습니다.

대치 상황에 잠시 변화가 생긴 것은 이른바 ‘제보 조작’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제보 조작에 대한 검찰 수사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거친 발언으로 국민의당과 정부·여당의 관계가 악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의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 가세해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를 본회의 투표에서 부결시키기로 야 3당의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유기준 위원장은 지난 12일 김이수 후보자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겠다며 14일 오전 전체회의 소집을 각 정당에 통보했습니다. 세 정당 의원들이 본회의 표결에서 일제히 반대표를 던지면 임명동의안은 당연히 부결됩니다.

그러나 야 3당의 정치적 합의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상황이 다시 달라졌습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3일 낮 국민의당을 찾아가 추미애 대표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국민의당이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복귀하기로 전격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은 국민의당 의원 40명 가운데 절반만 찬성해도 본회의에서 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서는 부결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후보자 인준절차에 야당의 참여를 호소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후보자 인준절차에 야당의 참여를 호소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다급해진 자유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는 13일 오후 유기준 위원장에게 “14일 오전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무조건 취소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유기준 위원장은 14일 오전 9시 각 정당 간사들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전체회의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국민의당과 정부·여당의 사이가 잠시 악화했다가 다시 회복되면서, 유기준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심사 보고서 및 인사청문경과 보고서를 채택하기로 했다가 다시 취소하는 등 오락가락 한 것입니다. 화가 난 민주당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들이 14일 오전 국회 기자실에 나타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 합의, 일방적으로 파기한 야당을 규탄한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마친지 36일이나 지났지만, 야당은 아직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있다. 야당은 36일만인 오늘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던 심사결과보고서 채택 회의도 돌연 취소했다. 회의 개최 1시간을 앞두고 일방적인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이렇다 할 이유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국회에서의 협치를 포기하는 행동이며 상대 국회의원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청문 보고서 채택은 후보자에 대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와 국민을 대표해 청문회에 참여한 국회의원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다. 청문 결과에 대한 이견이 있다면 보고서 내용에 반영하면 된다. 그러나 야당은 청문 보고서 채택부터 반대하며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민 기본권과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박근혜 전 대통령 궐위와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헌법재판소에 업무가 몰리고, 재판관 충원이 늦어졌다. 지금도 헌법재판소에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 시급히 다뤄야 할 사건들이 쌓여 있다. 야당은 독립기관인 헌재까지도 문재인 대통령 발목잡기에 도구로 삼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오늘 오후라도 당장 청문특위 전체회의를 열어 합의대로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야당은 요지부동입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결시킬 자신이 있는 상황에서는 보고서 채택과 본회의 투표를 추진했다가 부결시킬 자신이 없어지자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논리도 명분도 없는 오락가락 정치 행태입니다.

헌법재판소장 궐위 상태는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일까요? 야당이 반대하면 본회의 투표를 영원히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사청문회법 9조 3항은 “위원회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임명동의안 등에 대한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의장은 이를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심사는 지금 누가 봐도 정당한 이유 없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얼마든지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부의해서 안건으로 상정하고 투표를 진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례도 있습니다. 2015년 1월 제출된 박상옥 대법관 임명동의안에 대해 당시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100일만인 5월6일 이 조항을 발동해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했습니다. 여당 단독으로 투표가 진행됐고 임명동의안은 가결됐습니다.

여야는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오는 7월18일에 열기로 한 상태입니다. 18일 본회의에서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함께 박정화·조재연 대법관 임명동의안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두 사람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적격’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도 정세균 국회의장의 결단으로 본회의에 직권으로 회부 및 상정해서 투표를 진행하면 됩니다. 국민의당이 투표에 참여하면 ‘과반수 참석’ 투표 요건은 충족됩니다.

정세균 국회의장(가운데)과 여야 4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만나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려고 각각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철 국민의당,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 의장, 정우택 자유한국당,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세균 국회의장(가운데)과 여야 4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만나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려고 각각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철 국민의당,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 의장, 정우택 자유한국당,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모든 정당이 투표에 참여하면 투표 결과는 어느 쪽이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의당 의원 중에는 호남 출신인 데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소수의견을 많이 낸 김이수 후보자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의원 120명 중에 반대 의사를 가진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제 분명하게 결론을 내려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가결되면 김이수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이 되는 것입니다. 부결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헌재소장 후보자를 다시 지명하면 됩니다. 어느 쪽이든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어떻게든 9조 3항을 발동하지 않고 여야 합의를 통해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인사에 관한 사항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협치 분위기를 국회의장이 깨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법률에 정당한 근거 조항이 있는데도 야당의 몽니를 언제까지나 인내하겠다는 것은 적절한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겁한 꼼수 정치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당당한 승부와 깨끗한 승복을 통해 전진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닙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