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스의 신문 읽기와 세상 이야기

▲  새누리당이 내건 누리과정 예산 현수막 밑에 정의당에 내건 현수막이 걸려있다.
ⓒ 정의당트위터	관련사진보기

1월 26일부터 새누리당은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현수막을 서울, 경기, 광주, 전북, 강원 등 5개 지역에 내걸었습니다.

정의당은 새누리당이 '교육감님, 정부에서 보내준 누리과정 예산 어디에 쓰셨나요?'라는 현수막 밑에 '대통령님이 약속하신 누리과정 예산 안 줬다 전해라~'는 현수막을 달았습니다. 정의당의 이 현수막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댓글 같은 현수막에 '사이다'(답답했던 게 사이다를 마신 듯이 시원하게 해결됐다는 의미)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타 정당 현수막을 반박하는 현수막을 '현수막 디스'라고 합니다. 흔히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이 내건 현수막 밑에, 야당들이 그 내용을 반박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이 '대한민국 부정하는 역사교과서 바로잡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꿉니다'라고 대응했습니다.

역시 지난해 추석 때 새누리당이 '취업 결혼 걱정 없는 한가위 노동개혁'이라고 하자 노동당은 '가위 눌리는 청년 한가위, 저 달도 해고하라!'면서 명절 때 더 힘든 청년에 대해 이야기하며,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개혁을 비꼬기도 했습니다.

2013년 5월엔 새누리당이 '돈이 도는 경제 민주화'라고 하자, 진보신당은 '갑들끼리만 돈이 도는 경제민주화?'.'추징금도 못 받아 내면서 경제민주화?'.'대법원도 인정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등의 현수막을 통해 말뿐인 경제민주화를 비판했습니다.

2012년 대선이 끝나고 부정선거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주장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대선불복은 국민모독'이라는 현수막을 걸었고, 정의당은 '대선개입은 국민모독'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새누리당이 '벌써 1년, 이제 승복할 때'라고 하자 통합진보당은 '벌써 1년, 이제 진실을 밝힐 때', 정의당은 '벌써 1년, 이제 책임질 때!'라며 새누리당에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  새누리당 현수막을 반박하는 다른 정당의 현수막들
ⓒ 임병도	관련사진보기

이렇듯 '현수막 디스'는 현수막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단순히 '시원하다'는 감정을 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현수막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과연 어떤 근거와 전략으로 현수막을 활용할지 치밀한 계산이 있어야 합니다.

'사이다' 현수막만으로는 한계 있어... 홍보에 잘 활용해야

▲  누리과정 현수막에 대한 새누리당의 보도 자료
ⓒ 새누리당	관련사진보기

새누리당은 현수막을 내걸 때마다 철저하게 왜 현수막을 거는지 그 배경과 근거 자료를 배포합니다. 주장이 빈약하거나 억지 논리가 있을 때도 있지만, 다른 정당에 비해 치밀한 시스템을 가진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야당을 보면 자신들이 내건 현수막의 배경과 근거를 아예 설명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수막을 내걸면 됐지, 굳이 그것에 대한 자료를 모아 놓거나 홈페이지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현수막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관련 글: 새누리당은 어떻게 승리하나 ① 선거 현수막)

특히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노인 층에게 현수막은 굉장히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가격대비 효과가 높은 선거도구입니다.

매번 현수막 문구와 배경을 기록하고 이것을 활용해 선거와 정당 홍보에 이용하는 정당과 단기간에 속이 시원한 문구만으로 승부하는 정당, 누가 장기적으로 유리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정당은 '시스템'으로 움직여, 그 어떤 인물이 들어와도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의 정당 시스템만큼은 다른 정당에 비해 훨씬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당장 톡 쏘는 시원한 사이다 한 잔과 계속 물이 나오는 정수기, 사람들은 무엇을 갖고 싶을까요? 톡 쏘는 사이다도 가끔은 먹어야 하지만 계속 물이 나오는 정수기를 구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