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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낮은데도 왜 토해낼까?
박근혜 정부의 세가지 거짓말
15.01.21 11:06
최종 업데이트 15.01.21 11:06▲ 최경환 부총리 '연말정산' 긴급 회견 연말정산 관련 '13월의 세금폭탄'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 권우성 |
20일 오전과 오후 박근혜 정부의 '경제'를 이끄는 두 사람이 연쇄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전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긴급 브리핑을 했고, 오후에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예정에도 없던 브리핑을 자청했다. 모두 같은 사안 '2014년도 귀속분 연말정산' 때문이었다. 지난 15일 국세청에서 연말정산 환급금 조회 사이트를 오픈한 지 불과 5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최 장관은 솔직하지 않았다. 긴급 브리핑에 나선 그는 '연말정산 대란'과 관련해 두 가지를 언급했다. 그 중 하나는 '간이세액표' 효과였다. 간이세액표란 매달 급여와 인적공제 항목만을 가지고 원천징수하는 금액을 산출하는 표다. 최 장관이 언급한 간이세액표 조정이란 예전에는 '매월 많이 떼고 (그렇기 때문에) 연말정산에서 많이 돌려줬다'면 개정 후엔 '매월 적게 떼고 (그렇기 때문에) 연말정산에서 돌려줄 게 적다'고 한 것이다.
말은 맞다. 간이세액표가 '매월 적게 떼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그런데 변경한 시점이 2012년 9월이라면 과연 최 장관 말이 타당한가. 대선을 불과 몇 달 앞둔 2012년 9월, 이명박 정부는 '가처분 소득을 증가해서 내수를 살린다'는 이유로 연도 중 간이세액표를 변경하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정부는 이 개정을 통해 원천징수율을 연도 중 10% 줄인 바 있다.
'유리지갑들의 분노'는 무엇에서 연유하는가
▲ 공제 축소로 환급액 늘어 각종 공제 축소, 폐지 등으로 샐러리맨들의 환급액이 축소 혹은 토해내야 하는 상황을 보도한 <동아일보> 1월 21일자 2면 | |
ⓒ 동아일보pdf |
최 장관이 언급한 간이세액표 변경은 2013년 귀속분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됐다. 그렇다면 1년 전 연말정산 당시 '2013년 귀속분' 때에는 어떠했는가? 지금보다 더 심했다. 그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2조 토해내는 연말정산… 소비위축 부메랑 되나"(동아일보 2014년 3월 3일자 1면)였다.
그러나 1년 전에는 지금과 같은 '조세저항' 수준의 민심이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월급쟁이들이 간이세액표 변경 효과, 즉 '적게 떼고 적게 돌려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해 연말정산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유리지갑들의 분노'는 도대체 무엇에서 연유하는가? 이 대목이 핵심이고,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에 묻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간이세액표는 2012년 9월 이후 2014년 2월에 한 차례 더 변경됐다. 원천징수율이 다시 한 번 조정됐지만 직전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고소득자의 경우는 원천징수를 더 했다. 즉, 더 걷어갔기 때문에 환급금액이 커야 정상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해 유리지갑들의 분노가 큰 데에는 다른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 주위에서 환급금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직장인들의 목소리가 SNS를 타고 공유되고 있다. 웃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보다 적은 환급금을 받거나 오히려 토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기업 과장인 A(40)씨의 연봉은 5500만 원. 다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그또한 올해 환급액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는 "주변에서 지난해보다 더 돌려받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며 "환급액이 수십 만 원 이상 줄어든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월급쟁이들은 지난해 자신이 체험한 것과 현재를 비교한다. 간이세액표는 지난 2012년 9월 크게 변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비교할 때 환급금에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원인이 있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이 긴급 브리핑을 열고 한 발언 역시 도마에 오를 일이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기가 내는 세금과 결정세액에는 하등의 변화가 없다"며 "변화라고 한다면 매월 세금을 많이 떼고 환급을 많이 받는 형식에서 조금 떼고 조금 받는 형식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세액공제 전환'에 '꼼수' 끼워넣은 정부
이번 연말정산 후폭풍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2013년 8월 9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발표한 '정부 세제 개편안'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당시 골자는 공제 축소와 '소득공제→세액공제 전환'이었다. 당시 정부는 저소득자는 세부담이 경감하고, 고소득자는 세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핵심은 '전체적으로는 증세가 아니다'였다.
▲ 1년반 후에 나타난 거위들의 고통? 2013년 8월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소득세법' 개정안을 설명하면서 '거위 깃털을 고통없이 뽑는 창의적 방법'이라 언급했다. 1년 반이 지난 2015년 1월 그 고통이 터져 나왔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3년 8월 10일자 3면 | |
ⓒ 조선일보pdf |
당시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에 대한 여론은 지금과 같이 대단히 부정적이었고 거셌다. 언론에서는 '꼼수 증세'라며 비판했다. 그것이 1년 반 전의 일이었다.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브리핑을 열어 그 유명한 '거위의 털'을 언급했다. 조 전 수석은 "거위 깃털을 고통 없이 뽑는 것처럼 창의적 방법으로 개선안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해 "국민이 거위냐"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조 전 수석이 언급한 '창의적인 방법'은 다름 아닌 '세액공제'로의 전환이었다. 그동안 연말정산의 핵심은 소득공제였다. '총급여'에서 '근로소득공제'를 뺀 '근로소득'에서 각종 '소득공제'를 반영하는 것에서 연말정산은 시작된다. 기존 인적 추가공제,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이 소득공제 항목에서 세액공제 항목으로 전환된 것이다.
방향성만 놓고 본다면 '세액공제'로의 전환에는 분명 '재분배' 효과가 존재한다. 기존 소득공제 체제에서는 '소득공제의 역진성(고소득자에게 유리한 구조)'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교육비를 통해 500만 원을 소득공제 받는다면 최저세율(6%) 대상자는 세금이 30만 원 줄지만, 최고세율(38%) 대상자는 190만 원이 줄어든다.
반면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공제항목별로 일정세율을 반영하게 된다. 교육비 세액공제율은 15%. 500만 원의 교육비를 지출했다면 기존 고소득자는 38% 공제받던 개념에서 일괄 15%로 하향 조정됐고, 반면 저소득층의 환급액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세액공제는 저소득자에게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의 '꼼수'가 개입된다. 저소득자에게 유리한 구조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이번과 같은 유리지갑들의 분노는 미미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소득공제'를 축소함과 동시에 그 밖의 다른 공제항목도 전격 하향 조정해 버렸다. 근로소득공제 축소, 자녀출생·다자녀공제 등을 폐지했다. 고소득자는 '세액공제 전환'이라는 펀치를 한방 맞고, 각종 축소·폐지로 또 다시 강력한 펀치를 맞게 됐다. 저소득자 입장에서 세액공제는 좋은 취지지만, 다른 축소로 인해 그 효과가 상쇄됐다. 그렇다면 질문은 남는다. 이는 명백한 증세 아닌가?
연말정산 대란을 '홍보부족'이라 생각하는 대통령?
박근혜 정부는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증세는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던 경제수석의 '창의적 방법의 개선안'도 증세가 없음을 강조하면서 나온 발언이다. 그런데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직장인들의 반응은 상당히 격앙돼 있다. 정부도 이를 인지했기에 하루 사이에 주무부처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이 긴급 브리핑을 연 것일 테다. 이렇게 두 사람이 진화에 나선 뒤에도 여론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와 새누리당은 21일 오후 긴급회의를 열어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정부 추산 자체로도 소득세를 통해 세수가 9000억 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산이 어느 정도 정확할지는 정산이 완료된 이후에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9000억 원 증가는 증세가 아닌가? 2013년 8월 세제개편 당시에 '증세가 맞다'고 언급했더라면 샐러리맨들의 분노가 이 정도까지 치솟진 않았을 것이다. 복지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고 대가 없는 복지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위의 털' 운운하며 1년 반 동안 이 정부는 '증세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것이 영원히 숨길 수 없는 것이었더라면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맞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20일 청와대 국무회의 자리에서까지 박 대통령은 '국민의 이해'를 언급했다. 이는 대통령의 현 연말정산 정국을 바라보는 한 대목인데, 결국 이 사태를 '홍보부족'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노출시켰다.
▲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해 12월 29일 2014년 핵심 국정과제 점검회의 당시 발언하는 모습. | |
ⓒ 청와대 |
20일 오전 대통령의 '홍보' 언급이 나온 지 몇 시간 후에 경제수석이 마이크를 잡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연말정산은 정부와 국민이 '돈'을 주고받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이 정국이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정리해 본다. 지금 연말정산은 2013년 8월 발표된 소득세법이 처음 반영됐다. 결과적으로 정부에서 세수를 확보한 만큼 '유리지갑'들의 박탈감은 매우 커진 상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홍보' 운운하고 이에 장관, 수석이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그러나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증세인데 증세가 아니다'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증세'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있다. 인정하는 순간 '왜 소득세만 손대나'라는 비판이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법인세법'에 대한 압력이 대단히 커질 것이다. 복지를 해야 하고 증세도 해야 한다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지금 박 대통령이 장관, 수석에게 지시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솔직하지 못한 소통이다. 부메랑만 더욱 거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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