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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가 국가정보원을 죽였다!
[기자의 눈] 에드가 후버의 죽음, 그리고 국정원의 삶
미국의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는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연방수사국)와 동격이다. 후버는 FBI를 만들었고, 스스로 수장이 됐으며, 48년 동안 영지에서 군림했다. 8명의 대통령과 수십 명의 법무장관이 그와 함께 일을 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그들은 후버를 '거쳐'갔다.
후버가 FBI를 창설한 목적은 공산주의자와 무법자(갱)를 단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권력은, 강해질수록 그 자체로 괴물이 된다. 초기 FBI가 누렸던 치외법권이 부정되고,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미국 중앙정보국)에 의해 견제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던 후버는 유력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생활을 무차별 도청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제이 에드가>는 후버의 심리 상태를 자연주의적으로 해석한 훌륭한 영화다. 후버로 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떤 훌륭한 사람이라도, 부패는 있다"고 영화 속에서 읊조린다.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택한 불법 감시가, 그 자체로 존재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감시 대상자의 약점을 캐는 것, 그것은 후버의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자양분이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제이 에드가>는 후버의 심리 상태를 자연주의적으로 해석한 훌륭한 영화다. 후버로 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떤 훌륭한 사람이라도, 부패는 있다"고 영화 속에서 읊조린다.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택한 불법 감시가, 그 자체로 존재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감시 대상자의 약점을 캐는 것, 그것은 후버의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자양분이 된다.
이 영화에서 반전이 있다면, 후버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믿었다는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나타난다. 즉, 영화 속에서 그는 자신의 행동이 불법임을 인지하고,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을 치열하게 겪으며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애국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또 자신의 행동을 선으로 포장하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하고, 정치인을 이용하는 더러운 악인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는 믿었다. 스스로 현상을 해석하고, 거기에 권위를 부여했다. 잘못을 덮기 위해 고뇌하거나, 잘못에 대해 변명을 하지 않았다. 믿음이었다. 후버는 자신의 삶을 역사라 여겼고, 자신의 삶을 선이라 여겼다. 이는 '과대망상증'이나, 허언증에 걸린 정신질환자의 모습에 근접할 것이다. 이를테면, 국정원이 간첩 사건 증거를 조작해 놓고, "진짜 간첩이 맞다"며 억울해하는 모습과 닮았다.
증거가 조작된 것은 사소한 일이다. 다만 간첩을 놓친 게 억울할 뿐이다. 후버와 같은 위인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한 인간형이다. 그에게는 신념이지만, 관객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이 그런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발생하는 집단 망상증 말이다. 조직은 유기적인 것이어서(특히 국정원과 같은 '리바이어던'은 더욱더) 인간과 같은 질병을 종종 앓는다.
국정원은 스스로 기회를 찼고…朴 대통령은 오얏나무서 갓끈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은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미 정치 개입 부분은 법원이 인정했다. (정치 개입은 맞고 선거 개입은 아니라는 논리에 대한 반박은 글에서 논외로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15일 국무회의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사과하며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또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뼈를 깎으라 했다. 그때 개혁을 했어야 했다. 누적된 국정원의 문제점들을 일소하고, 원세훈 체제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롭게 태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메스를 쥐여준다고 스스로 환부를 도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환자는 그 메스를 타인을 공격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애초 '셀프 개혁'은 불가능했다.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이탈리아 '해킹팀'의 내부 이메일 자료 등을 보면,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전 원장 시절부터 현재까지, 누군가에 대한 해킹을 통해 '감시 체제'를 구축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누군가'가 내국인일 확률은 매우 높다. 영장 없는 내국인 감시는 불법이다. 국정원 스스로 정리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정황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셀프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을 방문했다. '셀프 개혁 완성'을 사실상 천명한 행위와 다름없었다. 청와대는 "이병호 원장 체제 이후 개혁에 들어간 국정원의 사기 진작을 위한 방문"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특히 야권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조직을 다잡는 행위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원세훈 체제와 단절을 선언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중앙정보부' 체제와 단절을 선언하지도 못한 것 같다. 일례로, 국정원이 해킹툴을 구매하며 사용했던 명칭은, 이 기관이 자신의 뿌리를 어디에 상정하고 있는지 잘 말해준다. 5163부대라는 명칭이 21세기에 살아있다는 것은, 놀랍다. 5.16 쿠데타는 국민 대다수에게 악몽이다.
국정원의 전신,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이가 박정희라 하더라도, 5월 16일 새벽 3시를 기리는 국민은 지금 거의 없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5.16 (…)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대선 전에 인정했다. 지난 20일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에 대한 '국정원 직원 일동'의 보도 자료는 54년 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5.16 쿠데타 지지 행진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녹색당 논평).
국정원의 전신,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이가 박정희라 하더라도, 5월 16일 새벽 3시를 기리는 국민은 지금 거의 없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5.16 (…)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대선 전에 인정했다. 지난 20일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에 대한 '국정원 직원 일동'의 보도 자료는 54년 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5.16 쿠데타 지지 행진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녹색당 논평).
낡은 믿음이 권력을 유지한 채 54년간 지속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 국정원은 박근혜 정권 출범 이래 계속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동력을 소진시키는 것은 오히려 국정원이다.
총선 대선 시비 사전 방지 위해서라도 여야는 국정원 개혁에 팔 걷어야
"개혁은 어렵습니다. 기득권 집단은 반발하고 성과를 내기까지 그 과정에서 더더욱 진통과 난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고 특히 미래세대에 빚을 남기게 돼서 그들이 감당해야 될 몫이 너무 힘들고 고통의 반복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몸에 고질병이 있으면 이건 치유해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망가져 버립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도 우리 몸과 같이 생각을 하면서 고쳐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놔두면 회복할 길이 없어집니다"
박 대통령이 22일 국무회의에서 '4대 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내놓은 발언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이 발언을 국정원에 대입해야 한다.
최근 들어 언론지상에 "국정원은 불법을 하는 것이 용인된다"는 말들이 난무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합법적 수사권을 가진 조직에 불법을 허용한다는 것은, 그 조직이 수사권을 남용할 기회를 열어놓는 것과 같다. 국정원 개혁은 대공 수사 분야를 검경에 넘기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미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을 거치면서 시민사회와 야당이 줄곧 주장해왔던 것이다.
새누리당은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에서 또다시 '불법 선거' 괴담 시비에 얽히지 않으려면, 이번 해킹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정치 개입으로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또 갇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해킹 사찰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국민은 2016년, 2017년에 '정상적인' 선거를 보고 싶다.
후버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강변했던 게 아니라, 정당하다는 것을 믿었다. CIA가 창설되면서 후버는 많은 권한을 잃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믿음을 더 강화했다. 자신의 '애국' 행위에 대한 일종의 보상 심리가 맞물리며, 그는 흑인 인권 운동가와 정치인 등을 무차별로 도청해, 더러운 정보를 틀어쥐었다.
말년의 후버는 미국 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명분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리를 캤고, 불법 행위를 통해 얻은 정보를 언론사에 제보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외면했다. 이미 시대는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버는 쓸쓸히 죽었고, 후버의 유산은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이어졌다. 정권은 몰락했다. 2015년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역사다.
말년의 후버는 미국 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명분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리를 캤고, 불법 행위를 통해 얻은 정보를 언론사에 제보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외면했다. 이미 시대는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버는 쓸쓸히 죽었고, 후버의 유산은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이어졌다. 정권은 몰락했다. 2015년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역사다.
중앙정보부를 만든 독재자 박정희도 비명횡사했고, 중정도 해체됐다. 안전기획부를 만든 독재자 전두환도 역사의 단죄를 받았고, 안기부도 해체됐다. 지금 국가정보원은 또 누구와 함께 역사의 단죄를 받을 작정인가?
(에드가 후버에 대한 평가는 영화 <제이 에드가>에 묘사된 해석을 상당 부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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