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박 대통령 ‘수첩 인사’부터 전대미문의 ‘권력 암투’까지
정국 강타한 ‘국정 개입 의혹’…과연 진실은 밝혀질까?
[더(the) 친절한 기자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파문’이 일주일째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일보>의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 보도가 나온 지난달 28일 이후 주요 신문들이 1면부터 5~6면(신문사에선 이를 종합면이라고 부릅니다)까지 이 이슈로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안이 무겁다는 얘깁니다. <세계일보> 보도 이후, <중앙일보>의 정윤회씨 인터뷰, <조선일보>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인터뷰가 이어졌고, 급기야 <한겨레>가 지난 3일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한 구체적인 사례 및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단독 보도를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우선 많은 뉴스들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만 스무 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정씨가 국정에 개입한 것이 확인되면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겨레>는 그래서 ‘더(the) 친절한 기자들’을 통해 이번 파문의 전말을 A부터 Z까지 찬찬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 2탄과 3탄을 이어가면서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이 기사 url만 가지고 계시면 업데이트된 요약정리를 계속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시작합니다. 꽉 잡으세요.
딸 승마경기 관전하는 정윤회 부부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 출신인 정윤회(왼쪽)씨와 전 부인 최순실씨가 지난해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딸이 출전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첫 보도는 이 ‘문고리 3인방’의 움직임을 담은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입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했습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회사로 치면 ‘감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친인척 등 측근 관리를 비롯해, 부처 공무원을 감찰하는 등 정권에 악재가 될 만한 것들을 사전에 검토하는 일을 했습니다. 공직 후보자의 인사 검증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몫입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박관천 경정이 작성했다는 이 보고서는,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보좌진 그룹 10여 명을 ‘십상시’라고 일컬으며 이들이 실세라고 지목했습니다. 보고서는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 내부 문서를 정윤회 씨를 비롯한 외부 인물에게 전달했다는 내용,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정윤회 씨가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 등을 찌라시에 흘리는 등으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 세계일보 기사 바로가기). 무엇보다 이 보도의 의미는, 세간에 ‘비선 실세’라는 소문이 퍼져 있던 정윤회 씨가 직접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청와대의 공식 문서를 통해 사실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의혹이 그저 사실 여부 판단이 힘든 사람들의 ‘말’로 전해진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문서를 통해 청와대에 공식 보고까지 된 사실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이전의 의혹 단계보다 훨씬 커진 셈입니다. 언론이 <세계일보>의 보도 이후 각종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건 우선 그런 까닭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말보다 공식 문서를 신뢰합니다. 언론을 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편중된 말을 쏟아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공식 문서는 작성한 내용이 거짓일 경우 제도적인 책임을 묻게 됩니다. 사실 관계 검증이 더 철저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고리 3인방은 누구인가 3인방은 모두 대통령 비서실에 소속된 비서관들인데요.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공식 입문한 이후 줄곧 측근에서 보좌해 온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입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맏형 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인사와 살림살이(재무)를 총괄합니다. 이재만 비서관이 원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최근 이재만 비서관을 사칭한 인사 청탁 사건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개인정보유출에 관여했던 사람도 이재만 비서관 지휘 아래 있는 총무비서관실 소속의 행정관이어서 논란이 된 바 있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 채동욱 ‘혼외 의심 아들’ 정보 유출 개입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5일 오전 ‘정윤회 국정개입 문서’ 유출 사건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는 길에 기자들 질문에 답하다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그런데 <세계일보>의 보도를 보면, ‘3인방’이 직책상으로 상사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을 꾀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구상에 ‘외부 세력’이자 민간인인 정윤회씨가 개입돼 있다는 것입니다. 정씨는 1998년 당시 박근혜 의원의 개인비서실장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3인방을 비롯한 보좌진 체계를 잡은 뒤 2007년 공식적인 직책에서는 물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즉각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동향 (파악 차원에서) 보고받았던 것”이라며 보고서에 거론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았습니다. 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그러니까 청와대의 첫 반응은 위에서 말씀드린 ‘공식 문서 신뢰성’을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또 문서의 내용보다 청와대 공식 문서가 유출된 것에 더 초점을 두는 식으로 프레임 전환을 꾀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중앙일보>는 청와대가 첫 반응을 내놓은 이튿날인 12월 1일, <세계일보>에서 ‘비선에서 국정을 뒤흔든 인물’로 보도된 정윤회씨의 반박 인터뷰를 보도하며 청와대의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정씨는 “7년간 야인으로 살며 3명의 비서관과 연락하지 않았다. (7년 동안 연락이 없으니 되레 비서관 3명에게) 인간적으로 섭섭했지만 이해한다”며 <세계일보>의 보도를 정면 반박했습니다. 연락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만난 적이 없고,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김 비서실장 경질설을 퍼뜨린 일도 없다는 주장입니다. <중앙일보>의 보도는 정씨의 육성으로 공식 문서의 내용을 반박하면서 <세계일보> 보도가 가진 파장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김진 정치전문기자가 칼럼까지 쓰면서 청와대와 정윤회 씨의 처지를 대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흘 만에 직접 진화에 나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문이 이는 사안에 이렇게 빨리 나서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은 루머이며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세계일보> 보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시 프레임을 청와대 문건 유출에 맞췄습니다. 비서관 3인방에 대한 ‘무한 신뢰’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후속 보도가 없었다면, 한동안 이 프레임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의 반격 반전은 <조선일보>에서 터져나왔습니다. 12월 1일까지의 <조선일보>는 청와대의 문건 유출 책임론 프레임과 궤를 같이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2월 2일자 ‘정윤회, 지난 4월 이재만과 연락했다’는 제목으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정윤회 씨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월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의 직속 선임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첩보가 맞을 가능성은 6할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내용을 지난 2월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구두 보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아랫사람들이 외부세력과 연계해 비서실장을 음해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고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고를 한 2달 뒤인 지난 4월 10일께 정윤회 씨가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문자메시지도 보냈다고 합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이를 무시하자 다음날에는 이재만 비서관이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며 정씨를 대변하는 말을 전했다는 겁니다. ▷ 관련 기사 : 조응천, 정윤회 정면 반박…“이재만과 4월에도 연락”
조응천 전 비서관의 이 주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7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는 정씨의 말과 달리 3인방이 정윤회씨와 꾸준히 연락해 왔다는 정황을 드러냈습니다. 또 해당 문건 유출은 조응천 전 비서관 자신의 수하였던 박관천 경정이 아닌 3인방과 관련이 있다는 암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문제의 ‘감찰 보고서’는 찌라시성이 아니라 상당한 근거를 가진 보고서라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실제 조응천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고서 유출에 대해서는 "관리 책임자로서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문건 유출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을 직접 부정한 셈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인사 검증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냈습니다. 검증 임무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해야할 일인데 “어떤 때는 한창 검증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인사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 들어 ‘인사 참사’의 책임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3인방에게 있다는 논리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정윤회 씨의 전화를 받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중순 경질됐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에게 보고한 뒤 이뤄진 보복성 인사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일개 비서관 출신으로 어떻게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 주류 권력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 배경은 이번 파문이 계속 이어지면서 차츰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입니다. 줄줄이 좌천된 ‘박지만 회장 측근’들 정치권에서는 그 배경으로 박지만 EG 회장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검찰 출신으로, 과거 박지만 회장의 마약수사 검사로 인연을 맺은 바 있습니다. ‘문고리 3인방’이 친인척 쪽에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는 데 불만을 품은 박지만 회장이 공직기강비서관을 움직여 ‘정윤회 계파’에 대한 저격에 나섰다는 분석입니다. 박지만 회장이 측근인 조응천 전 비서관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위험성을 알려서 김기춘 비서실장을 포섭하고, ‘정윤회 계파’를 저격하면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오히려 이 보고를 ‘청와대를 흔들려는 시도’라고 판단하면서 묵살했고, 오히려 3인방을 공격한 박지만 회장 쪽의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역풍을 맞고 청와대에서 쫓겨났다는 해석이 제기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정윤회 계파’와 ‘박지만 회장 계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처세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수치수여식에서 박지만씨의 육사 동기생인 이재수 기무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수치는 군 장성의 직위와 이름 등이 수놓아진 끈 깃발로,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장성들의 삼정도(장군에게 상징적으로 지급되는 칼)에 달아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런 일련의 인사 흐름을 아래 표로 정리해봤습니다.
표. 경질된 박지만 회장 측근 인사들
1. 청와대
4월, 민정수석실 조응천 비서관 라인 경질 (민정수석실 파견 경정급 경찰관 5명이 7월까지 원대복귀)
5월, 백기승 전 국정홍보비서관 사퇴
2. 국정원
5월, 남재준 국정원장 사임
9월, 1급 간부 Z씨가 인사 일주일 만에 철회 : 청와대 지시로 퇴진 후 국내 정보와 무관 부서로 이동
3. 기무사 군 인사 건
10월, 이재수 전 사령관 전격 교체
4.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안민석 새정치 의원 “김 전 위원장 사퇴가 김 실장과 정윤회씨 사이의 암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정황”)
정윤회(왼쪽)와 박지만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