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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청와대, 누구 탓인지 모르겠습니까?

등록 : 2014.12.15 16:53수정 : 2014.12.15 17:05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말레이시아 총리를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은총’ 독점하려는 패들끼리 드잡이
주인까지 뛰어들어 진흙탕 싸움
경찰 자살로 비화하자 이젠 ‘모르쇠’
검찰에 떠넘기지 말고
집안일 스스로 정리하길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86

사건이 자꾸 커지고 있습니다. ‘비선 조직’의 국정 개입 논란에서 그칠 사건이, 청와대의 ‘감찰 문건 유출 조작’ 의혹 사건 및 최아무개 경위 의문의 자살 사건으로 비화했습니다. 당신이 사건의 성격을 문서유출 국기문란 사건으로 뒤틀면서 벌어진 일이 이제는 청와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집안에서 일어난 일, 집안에서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집사는 문간 뒤에 숨어 버렸습니다. 하긴 저의 퇴진 공작이 벌어질 때 이를 알고도 한마디 말도 못한 주제였으니, 그 판에 낄 수는 없겠죠. 그럼 주인장이라도 나서서 머슴들을 징치해야 하는데, 진흙탕에 뛰어들어 함께 드잡이하는 형국입니다. 이제 저 머슴들이 이판사판 웃통까지 벗어젖히고 드잡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청와대의 몰골이라니….

서로 약점 물고 이판사판 싸움하는 머슴들

싸움의 시작은 주인의 은총을 독점하려는 다툼에서 시작했습니다. 한편엔 오랫동안 주인의 눈과 귀를 잡고 있던 패가 있습니다. 문고리 3인방, 십상시 따위로 불리는 패입니다. 다른 편에는 주인장의 동생 패들이 있습니다. 최근 앞패에 의해 날조된 느낌이 드는 이른바 ‘7인 모임’ 따위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앞패는 뒤패를 견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찰하고 감찰했으며, 그 결과가 A4 용지 100여장에 이르는 감찰 문건으로 나왔습니다. 뒤패도 이에 질세라 앞패의 국정 농단 의혹 문건을 만들었습니다.

두 패는 서로의 문건을 이용해 상대를 대통령의 눈에서 벗어나도록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잡고 있는 건 앞패였습니다. 뒤패는 싸움에서 번번이 밀렸습니다. 앞패의 패거리짓을 감찰하다가 오히려 청와대에서 쫓겨난 바 되었습니다. 그만큼 앞패의 권세는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뒤패에는 대통령과 피를 나눈 동생이 있습니다. 당장은 피붙이를 멀리하는 것 같아도 결국 인간적 의리보다는 혈연을 선택하는 게 우리 정치의 생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들의 응집력은 만만치 않습니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못한다고 합니다. 피도 의리도 나누지 않은 두 패가 권력을 놓고 싸우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양쪽엔 모두 약점이 있습니다. 한쪽은 독점적 권세를 확대하고 사유화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약점이고, 다른 쪽은 혈연을 빌미로 권세를 나누려는 과정에서 생긴 약점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감찰 문건은 두 패가 서로의 약점들을 모아 만든 것이었습니다. 미행하고 사찰해 얻은 것들입니다. 지금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건 이들 사이의 결정적 한판입니다.

아무리 실세들이라 해도 당신의 ‘반사체’

청와대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이 진돗개들을 가리켜 “청와대의 실세”라고 농담을 했다. 청와대 제공
이들은 반사체입니다. 유일한 발광체인 대통령 주변을 돌면서 그 빛을 받아 권세를 누리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발광체인 대통령이 정확하게 알고 바르게 판단하면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다툼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런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약점 많은 한쪽 패에 가담해 그들을 일방적으로 두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움을 키워버렸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쳇말로 돈도 명예도 장래도 사회적 지위와 자산도 모두 잃어버릴 판인데 어떻게 앉아서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앞패들이 범한 무리수도 도를 넘었습니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문서유출 국기문란 사건으로 사건 성격을 뒤트는 데 성공은 했지만, 뒤패를 그 주범으로 몰아가려는 과정에서 동티가 난 것입니다. ‘양천 라인’ 혹은 ‘7인 모임’ 따위의 정체불명의 조직을 지어내 경쟁자들을 일망타진하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서울 경찰청 정보관을 회유했다는 의혹과 함께 최 경위가 자살하는 사건이 빚어졌습니다.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서, 수사 결과까지 미리 짜맞추려 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이렇게 일파만파 문제가 커지자, 대통령은 엉거주춤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사람까지 죽었으니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은 터인데도 이젠 모르쇠입니다.

사람까지 죽은 사달의 출발점은 당신

부연하지만 이 모든 사달의 시작은 측근의 국정 농단 의혹에는 눈을 감은 채 문서유출을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한 데서 출발합니다. 문서 내용을 찌라시 수준이라고 하면서 기밀 유출로 규정하는 자가당착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문서유출 사실을 청와대는 이미 4월에 인지했습니다. 그때는 어영부영 덮었습니다. 그리고 6월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유출된 문건 뭉텅이를 문고리 3인방 중 한 사람에게 전달했습니다. 대통령에게 보고해 이 문건들을 빨리 회수하고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유야무야 덮었습니다.

그러던 청와대와 대통령이 지난 11월말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이 보도되자 국기문란이라며 파르르 떨었습니다. 문건 내용에 따라 국기문란 여부가 결정되는 건가요? 박지만씨 문건 유출은 괜찮고, 측근들 관련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면 측근들이 곧 대한민국이라는 건지, 그들을 흔드는 것이 대한민국의 기틀을 흔드는 건가요? 박 대통령이 가끔 자신을 국가 혹은 국민과 동일시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측근들까지 국가와 동일시하는 건 망발을 넘어 망조입니다.

권위·정당성·신뢰가 모두 무너지고 있다

지금 청와대 안에서 벌어지는 건 대통령의 은총을 독점하기 위한 저질 권력투쟁입니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무능으로 비서들이나 측근들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정리해야 합니다. 그걸 왜 검찰에 맡기느냐고 검사들의 입이 댓 발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진돗개라면 짖기라도 하지, 찍소리 못하고 청와대 하수구 청소부 구실이나 하고 있으니,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판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이 과정에서 이 나라는 구석구석 무너지고 있습니다. 국가기관은 권위를 잃고, 권력은 정당성을 잃고, 공직자는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 책임은 사태 파악도 못하고, 파악할 의지도 없고, 안다 해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은 난장판을 방치하는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그런 대통령을 뽑은 국민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따질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대통령의 잘잘못부터 따진 뒤 할 일입니다.

오늘 비서관들 앉혀 놓고 ‘종북 타령’을 하셨더군요. 믿을 것이라곤 일부 찌라시 언론이 왜곡한 ‘종북’ 논란밖에 없으니 참으로 처량합니다. 국민 신세는 더 처량합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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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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