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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국민 절반이 반대하는 새누리당도 해산하라

[게릴라칼럼] 법무부의 허접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논리

13.11.06 14:50l최종 업데이트 13.11.06 15:25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농담인 줄 알았다. 얼마 전,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청구를 준비한다면서 "민중주권은 '일하는 사람'인 '민중'만 주권을 가지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개념이므로,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했을 때, '급했구나' 정도의 생각만 스쳤다.

지난해 대선TV 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에게 꼼짝없이 갖은 수모를 당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후에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대표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생뚱맞은 것이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온갖 혐의의 수사와 소위 '내란예비음모' 사건은 그런 예측의 현실화였다. 우익단체의 '정당 해산 청구'에 발맞춰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든 것 역시 예정된 수순이다.

그런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박근혜 정부는 11월 5일, 국무회의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정부의 정당해산의 논리는 '그래도 뭔가 있겠거니' 싶었던 예상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공포감이 엄습할 정도다. 이런 '허접한' 논리로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을 청구하다니.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논리가 어느 듣도 보도 못한 우익단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엄연히 이 나라의 최고 수뇌부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종편 여론조사가 정당해산 청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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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장관, 통합진보당 해산안 발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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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배경을 설명하면서 논란이 많은 'RO'조직을 또 꺼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이석기 의원이 연루된 '내란예비음모' 재판에서 RO관련 혐의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검찰은 RO 건과 관련해 기소조차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로 기소할 정도로 수사가 진척된 것은 아니지만, 수사가 진행 중이고 추후 별건으로 기소할 수도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정당해산 청구 배경에는 "RO의 내란음모로 활동의 위헌성이 소명되었음"이라는 표현이 적시되어 있다. 증명해야 할 혐의를 기소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당해산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착수한 배경으로 제시한 것이다.

청구 이유 또한 가관이다. 해산심판청구 청원 현황과 여론조사 결과란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단체는 '국민행동본부','국가정상화 추진위원회',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탈북단체' 등 대표적인 극우단체다. 여론조사 결과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TV조선과 JTBC 등 종편과 조중동과 비슷한 성향의 <문화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여론조사 결과 정당해산 찬성이 62~66% 정도가 나왔으므로 정당해산의 "국민적 공감대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국민 뜻을 참으로 잘 받드는 정부가 아닐 수 없다. 국정원과 군, 국가보훈처 등 온갖 국가기관이 개입된 대선개입사건 처리는 국민이 원하지 않아서 그리 뜨끈미지근한 건가? 진보언론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60%대를 넘기면, 자진 하야라도 할 생각인 건가?

민중주권이 사회전복 논리라니...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문자해독 능력과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운 왜곡된 사고방식이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일성의 사상을 도입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 대남혁명전략과 내용이 동일하고, 통합진보당의 모든 자유민주체제 위해(危害) 활동의 이념적 기초"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한번 법무부의 논리를 톺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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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해외 출장 중 정당해산청구서에 찍힌 국새와 대통령 서명 오늘(5일)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대리한 국무회의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청구를 심의하였다. 국무회의 이후, 바로 헌법재판소에 접수한 정당해산청구서엔 국새와 대통령 서명이 기재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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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강령 전문에는 "통합진보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경제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구절이 있다. 또한 강령 해설집에는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들을 당의 기둥으로 삼는다. 소수 특권 세력은 통합진보당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바로 이점에서 다른 정당들과는 분명히 차별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는 정치경제적 특권 세력들이 정권에서 완전히 물러나고"(강조는 법무부)라는 표현이 있다.

법무부의 친절한 해설이 없다면 이것이 어떻게 정당해산청구 사유가 되는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법무부는 이 내용이 "민중주권 주장은 노동자, 농민, 근로 인테리에게 주권이 있고, 민중이 정치권력의 중심이 되는 북한의 인민주권과 동일"하다고 '분석'한다. 또한,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이 "일하는 사람인 민중만 주권을 가지는 사회를 추구하므로,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라고도 해석했다.

정치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큼 국어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논리전개가 점프를 넘어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지 않다. 그렇더라도, 국민주권과 인민주권의 헌법학적 차이에 대에서는 간략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헌법학에서 국민주권원리는 '투표하는 유권자와 당선되는 대표자 간의 위임관계는 자유 관계'라고 보는 것이 핵심이다. 즉, 당선된 대표자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의사에 종속(기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위임관계에 있으며,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국가 전체의 대표로써 활동한다. 반면, 인민주권의 원리는 대표자는 자신을 뽑은 유권자와 명령위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를 벗어나면 유권자로부터 통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헌법은 46조 2항에서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여 자유위임 원칙에 기초한 국민주권론을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에게는 투표를 제안할 권리도, 국회의원을 소환할 권리도, 입법과정에 개입할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국민주권론의 한계다.

그러나 우리 지방자치제도는 지역 주민에게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할 권리,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을 소환할 권리, 주민투표를 제안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지방자치 제도가 국민주권론적 원리가 아니라 인민주권론적 원리에 따라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핵심은 국민주권은 자유민주주의이고, 인민주권은 북한 사회주의라고 단순히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 정치공동체의 주권행사 원리를 어떻게 규정할 지에 대해 선택가능한 문제다.

게다가 국민주권론에 입각한 공동체에서도 정당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을 '편파적으로' 대변하는 데 있다. 국민주권론은 다양한 갈등이 정당으로 대표되고, 의회 내에서 이런 다양한 갈등들이 서로 충돌하고 논쟁하고 타협하도록 보장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들을 당의 기둥"으로 삼거나, "소수 특권 세력은 통합진보당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뭐가 문제기에 법무부가 굵은 글씨로 처리해 가며 위헌정당을 들먹이는가?

"정치경제적 특권 세력들이 정권에서 완전히 물러나고"라는 표현도 그렇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특권이란 "어떤 신분이나 지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별한 권리나 이익"을 말한다. 그렇다면 법무부는 정치경제적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정권에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국회에서 한창 기이한 논리로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역시 북한 추종이라 주장할 텐가?

저급한 법무부의 해석 수준

이런 식으로 강령을 분석하는 저급한 수준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통합진보당 강령 해설집에 있는 "소수 특권 계급의 정치경제적 특권들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비타협적으로 싸워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수호한다"라는 구절도 "민중이 소수의 특권계급과 비타협적으로 싸워 정치적 특권뿐만 아니라 경제적 특권까지도 빼앗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결국 북한식 '사회주의적 형태의 경제질서' 도입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쯤 되면 법무부가 북한헌법을 찬양하는 이적행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정치적·경제적 특권을 없앤다는 것이 북한 사회주의적 형태의 경제질서라고? 법무부에서는 실제로 북한에서 '정치적·경제적 특권'이 없다고 믿는다는 것인지, 정치적·경제적 특권을 없애면 안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이런 내용을 북한헌법의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북한헌법 20조), "나라의 모든 자연부원·철도·항공운수·체신기관과 중요 공장·항만·은행은 국가만이 소유한다"(북한헌법 21)는 내용과 연결시키니, 그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 조기 구축", "주한미군 철수", "종속적 한미 동맹체제 해체"라는 강령 내용이 종북이라는 논리는 고리타분한 레퍼토리니 일단 넘어가자. 다만, 이런 주장을 토론의 대상으로조차 삼지 못하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임한다면 바로 그게 코미디다.

법무부는 "대표적 반민주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반민주 제도와 악법을 폐지하고, 국정원, 기무사 등 특수권력기관의 시민생활 침해, 사찰행위를 전면 금지하며, 민주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강령 구절에도 딴지를 건다.

이 구절의 분석 결과,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 우리사회 체제를 변혁하려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물론 법무부가 국가보안법을 우리(?) "체제 유지를 위한 제도와 법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보안법 뒤에 붙인 '등'이다. 법무부는 각종 반민주 제도와 악법의 폐지, 국정원, 기무사 등 특수권력기관의 시민생활 침해, 사찰행위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체제 부정"으로 적시한다.

이쯤 되면 정부가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등이 총동원된 여론조작, 사찰행위, 시민생활 침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위법 행위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라는 강령을 "우리사회 체제 내의 개혁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것으로 체제 유지 수단인 제도와 법을 전면 폐지"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런 인식이라면 그들이 그렇게 유지하려고 하는 '체제'가 과연 누구의 체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을 제외한 세력의 체제? 정치적·경제적 특권을 소유한 소수세력만의 체제?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체제라면, 이것을 바로 잡자는 주장이 북의 "대남혁명의 일환"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민주주의 최저선이 붕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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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대해 '제2의 긴급조치, 반 민주적 진보당 해산기도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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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이런 법무부의 논리가. 물론 통합진보당의 강령 내용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또한, 강령은 좋아도 통합진보당은 싫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강령 내용이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방향이며, 북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해석과 판단은 자유이며, 논쟁하고 토론되어야 할 사안들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최고 수뇌부가, 권력을 가진 이들이, 통합진보당 강령의 표현대로라면 '소수의 특권세력들'이 논리적 정합성도 떨어지는 자의적 판단으로 하나의 정당을 마음대로 해산한다면, 그것 자체가 우리 민주주의의 최저선을 붕괴시키는 일이다. 상상해 보라. 특권 폐지가 사회 전복으로 규정되는 사회를,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당이 가차 없이 제거되는 사회를.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자유없는 자유주의가, 민주 없는 민주주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정당에게만 해당되는 일인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일인가?

오마이뉴스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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