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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콘크리트 지지율, 진보당 해산으로 반등될까

[분석] 박근혜 대통령 집권 후 3차례 위기... 그때마다 불어온 동남풍

14.12.21 21:01l최종 업데이트 14.12.21 21:01l
집권 2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3차례에 걸쳐 커다란 개인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그것이 국가적 위기로 승화되면서 박 대통령은 위기상황을 극복했다.

국가기관이 등장하면 늘 상황은 급반전됐다. 박 대통령이 위기에 처해 있다가 어느 샌가 공세적 입장이 되고는 했다. 국가기관이 등장하는 시점은 우연이라 하기엔 그 시점이 너무나 절묘했고, 치밀하게 계획된 정권의 각본이라 하기엔 그 대담성이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첫 번째 위기] 검찰의 '원세훈' 기소, 국정원 등장해 '대화록 공개'로 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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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결과 13년 6월 14일 채동욱 검찰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원세훈 전 원장 등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동아일보> 13년 6월 15일자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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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4일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선거법 등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대선 당시에 국정원, 경찰 등이 나서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또 다른 국가기관인 검찰에서 확인해준 것이다.

대학생 및 천주교 등에서 잇따라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법연수원생들도 대검찰청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연수원생들이 검찰의 수사 사안에 의견을 낸 것은 처음이었다. 거리에는 '촛불'이 등장했다. 검찰의 수사결과는 자연스레 박근혜 당선의 정당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민주당도 대규모 당원 집회 등을 개최하고 '선거 원천무효 투쟁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 국정원 선거개입과 경찰의 수사은폐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처를 요구하고 나섰다. 주말 촛불시위의 규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졌다. 2009년 광우병 촛불사태를 떠올릴 정도였다.

상황이 긴박하게 진행되던 순간에 국정원이 전격 등장했다. 국정원은 놀라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6월 24일 남재준 국정원장이 전격적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다. 언론의 표현처럼 '군사작전'하듯이 전격적으로 공개된 정상회담 회의록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 특유의 거침 없는 화법을 인용하는 보수언론의 활약으로 마치 'NLL 포기발언'이 있었던 것처럼 처음 상황이 전개됐다.

국정원에서 대화록을 공개한 다음날, 모든 언론이 머리기사로 '노 대통령 괴물NLL 바꿔야'라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국무회의를 주재한 박 대통령은 "우리의 NLL, 북방한계선도 수많은 젊은이가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NLL 포기발언'으로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려 시도했다.

남재준의 카드는 절묘했다. 민주당은 '불공정 대선'이라는 공세를 폄과 동시에 'NLL' 관련해서는 수세적 입장을 취했다. 특히 '사초 실종'으로 명명되어진 대화록 삭제건이 발생하면서는 더더욱 방어적 입장을 보였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적어도 일방의 싸움에서 주고 받는 싸움으로 게임의 룰이 바뀐 계기가 된 것이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것은 남 전 원장이 대화록을 공개한 지 다섯 달이 지난 2013년 11월이었다. 검찰은 세 가지를 발표했다. 노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회의록 초본을 삭제했음을 밝혔고, 수정본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았음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 위기] 권은희 '불공정 대선' 증언, 국정원 등장 '이석기 사건' 응수

지난해 8월 19일 진행된 국회 국가정보원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권 과장은 며칠 전 같은 자리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권 과장은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녀 댓글수사' 실무담당자였다.

권 과장은 현직 경찰 간부의 신분으로 출석했음에도 대선 당시를 언급함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지난 2012년 12월 16일 오후 11시에 전격적으로 발표된 '국정원 댓글 수사결과'에 대해서도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2012년 12월 16일 오후 11시 이례적으로 경찰에서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그 다음날인 17일 조중동 1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국정원 직원 컴퓨터에 문재인 비방 댓글 없다'는 내용이었다. 상황은 '국정원녀 불법감금'을 주장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선거는 그렇게 끝이 났다.

2013년 8월 말의 상황은 박 대통령에게 커다란 위기였다. 권 과장 증언 직후인 8월 22일 민주당 소속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의원들이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 "3·15부정선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야당이 '3·15부정선거'라는 표현까지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전달할 정도였다.

이뿐 아니었다. 거리에는 연일 촛불이 켜졌다. 권 과장 발언이 있은 직후인 8월 23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3만 여명이 참석해 촛불을 들었다. 검찰 수사도, 국회 국정조사도 밝혀내지 못했다면서 '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야당은 장외투쟁을 확대할 방침을 세웠고, 9월 정기국회 보이콧까지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극한 대립의 상황이었다.

바로 이 무렵, 또 다시 국정원이 벼락같이 등장했다. 8월 28일 국정원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10여명의 사무실,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국정원은 이 지하조직의 이름이 '아르오(RO)'라고 밝혔다.

이후 모든 것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9월 4일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고 다음날인 9월 5일 이 의원은 구속됐다. 다음날인 9월 6일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검토 T.F'를 구성했다. 11월 5일 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헌정사상 최초로 정당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것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일간지에서는 8월 28일 사건 발생 직후부터 무려 열흘 가까이 이석기 사건을 1면 기사로 보도하는 등 사안을 확대하는데 일조했다. '국정원 죄가 이석기 죄보다 크다'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일갈하자, '노숙을 오래 해서 그런 거냐'고 보수언론은 비꼬았다.

'3·15부정선거'를 언급하며 목청을 높였던 야당은 국회로 돌아왔고, 거리의 촛불은 서서히 꺼져갔다. 박 대통령의 위기는 그렇게 극복되어 갔다.

[세 번째 위기] '비선 실세 의혹'에 지지율 폭락, 헌법재판소 '진보당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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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망연자실한 이정희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선고에서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의 찬성 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또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막론하고 소속 의원 5명 전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결정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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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 동안 찾아온 세 번의 위기 중 두 번의 경우는 앞서 살펴보았다. 세 번째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에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비선 실세'에 대한 관심은 박 대통령이 직접 등장해 2회에 걸쳐 '찌라시' '국기문란' 등으로 사건을 규정하면서 파문이 커져갔다.

대통령이 등장해 사건을 규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직 문화체육부 장관, 전직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 이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언론에 등장해 '비선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심지어 조응천 전 비서관은 "유출된 문건의 신빙성은 60% 이상"이라며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강한 확신을 보이기도 했다.

정윤회씨가 검찰에 출석하며 '불장난' 운운하면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과 대질심문을 요청했다. 박지만씨도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문고리 권력'인 이재만 총무비서관도 밝은 표정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대어들이 검찰을 다녀간 뒤, 검찰에서는 '문건 유포자'라면서 최모 경위, 한모 경위 두 명을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기각됐고, 최모 경위는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는 유서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한모 경위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JTBC는 한모 경위와 인터뷰를 했다면서 '청와대에서 한 경위를 회유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청와대 문건에서 시작된 파문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너무 많다. 등장인물도 화려했다. 권력자들은 언론 지면과 커다랗게 인터뷰를 했고, 정작 피해를 입고 사라진 사람들은 최모, 한모 두 경위뿐이었다. 문건 작성 및 유포자로 지명된 박관천 전 행정관 역시 "내가 입을 열면…"이라고 말하며 구속됐다.

'궁중 비사'가 3주 가까이 진행되면서 박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로 급락했다. 12월 20일 언론에서는 일제히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의 논설고문은 칼럼을 통해 "대통령 지지율이 내려앉을 만큼 내려앉았다고, 어쩌면 더 꺼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할 필요가 없다"며 "높은 지지도를 해야 할 일 밀고 나가는 국정 추진력으로 유용(有用)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라고 비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갤럽> 조사결과 취임 후 최저인 37% 지지율을 기록하던 그 순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 등장하는 '동남풍'이 박 대통령에게 불어온 셈이다.

12월 19일 헌법재판소 9명의 재판관 중 8명이 정당해산 심판 청구에 대해 '인용' 의견을 밝힘으로써 진보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이고 그 이유 중 상당부분이 '북한과의 연계성'이 주장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사상의 대공습이 이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개인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돌파해온 박 대통령,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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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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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 동안 박 대통령은 늘 위기였다. 선거 정당성에 대한 도전이 취임 초부터 제기됐다. 위기가 고조될 때면 국정원을 필두로 국가기관이 등장했고 곧이어 초유의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정상회담 문건'이 공개됐다. '내란음모' 등 오래 전 사용연한이 지난 단어들이 다시금 부활했다.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이 '위헌'의 멍에를 지고 '정당해산'됐다. 지난 2년 동안 박 대통령 개인에서 비롯된 위기가 국가 차원의 위기로 확대되면서 박 대통령은 위기를 돌파해 왔다.

이번에도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상황은 애매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진보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의 종북몰이를 대대적으로 감행할 것이다. '야권연대'의 원죄가 부각되면서 새정치연합은 이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현재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지율은 최저다. 레임덕 수준인 30%로 내려왔다. 비선 실세, 문고리 권력 등이 회자되면서 국민들이 박 대통령을 보는 시선도 전에 없이 싸늘하다. 유일한 업적이 이번 '진보당 해산'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과연 박 대통령은 개인의 위기를 또 한 차례 국가기관의 도움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반전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는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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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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