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정치부로 발령나 새누리당을 출입하게 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처음 봤는데, 기자든 의원이든 당직자든 닥치는 대로 ‘야, 니(너)’라고 부르며 반말을 하는 모습에 뜨악했다. 주위에서 “저 사람 원래 저래”라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도 의아했다. 얼마 뒤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단 오찬 자리에서 김 대표에게 명함을 건네며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십분 정도 지났을까. 김 대표가 다짜고짜 반말로 나를 불렀다. “한겨레 이경미, 일루(이리로) 와.” 자기 근처 자리가 비었으니 다른 테이블에 있던 내게 그 자리로 오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처음 만난 기자에게 반말부터 하는 게 기분이 나빴다. 다른 말로 둘러대며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김 대표는 계속 ‘이 기자’라는 호칭 대신에 이름을 불렀다.
11월9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상 조문을 갔다가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우연히 김무성 대표와 합석하게 됐다. 김 대표의 반말투에 대해 에두르지 않고 얘기했다.
“이름 부르지 마세요.”
“니는 왜 이름 부르는 걸 싫어하냐.”
“‘이 기자’라고 하세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니 아버지도 니한테 이름 부를 거 아니냐.”
어이가 없어 답했다.
“대표님이 제 아버지는 아니잖아요.”
그는 못마땅한 듯 다른 화제로 돌렸다가 불쑥 내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자신이 반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나는 친해진 다음에 반말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답했다. 그는 또 못마땅한 듯 한 번 더 나이를 강조했다. “내가 니 아버지 나이는 될 끼다.”
내가 너무 까칠한 건지, 김무성 대표가 지나친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김 대표의 이런 면모가 ‘무대’(김무성 대장의 줄임말)란 별명을 만들어냈을 수 있다. 거대한 체구, 느릿한 걸음걸이와 함께 그의 거침없는 말투도 ‘보스 기질 있는 정치인’ 또는 ‘통큰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거대한 체구, 느릿한 걸음걸이, 거침없는 말투…
보스·통큰 정치인 이미지 만들어냈는지 몰라도
나이 어리고 지위 낮은 사람에게 신경질·하대
유승민 사퇴 권고·안심번호 공천제 뒤집기 보면
청와대 눈치보며 ‘가늘고 길게’ 가는 전략인듯
결전의 시기 오면 박대통령에 맞설 용맹 보일까
‘무대’란 별명을 듣고 그의 풍채나 스타일로 보나 ‘용맹한 장수’ 타입이 아닐까 생각했다. 용맹, ‘용감하고 사나움’이란 뜻이다. 두 달가량 지켜본 결과, 사나운 건 맞는 것 같다. 기자들이 가끔 불편한 질문을 하면 “뭐 그리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노”라면서 말허리를 끊어버린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질문을 하면 “어디서 그런 엉터리 정보를 듣고 왔노”라며 신경질적 반응을 내보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만 사납게 대하는 거다.
그런데 ‘용감’이란 단어 앞에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비박 투톱’ 동지이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에 ‘배신자’로 찍혀 축출당할 때 김무성 대표는 대장다운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왕이 신하에게 내린 사약을 전달하듯 유 의원에게 ‘원내대표직 사퇴 권고’를 추인한 의총 결과를 직접 전달한 사람이 바로 김 대표였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합의한 ‘안심번호 공천제’를 청와대가 비판하자 김 대표는 “청와대 관계자가 당 대표를 모욕하면 되겠는가. 오늘까지만 참겠다”고 했지만 그 뒤엔 사실상 청와대에 머리를 조아렸다. 여러 행사장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만큼 개혁적인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누구보다 박 대통령의 개혁 추진에 앞장섰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와 친분이 있는 한 의원은 “그가 저돌적인 리더는 아니고, 보기보다 신중하다”고 평하지만, “김 대표가 가진 게 많아서 소심하다”는 얘기도 많다.
물론, ‘대장’으로서의 ‘포용적 리더십’은 그의 최대 장점이다. 최근에 보여준 조문정치에서 그의 정치력을 새삼 확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때 서울대병원 빈소에서 그를 며칠 내내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서거 당일 아침부터 한달음에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5일간 중요 업무를 빼고는 줄곧 빈소를 지켰다. 상주를 자처하며 진짜 상주 김현철씨와 함께 서서 조문객을 맞았고, 손님을 직접 안내하기도 했으며, 장례식 결정 과정에도 깊이 관여했다. 자신을 비판했든, 정치적으로 적대적이든 그는 누구에게나 살갑게 대하며 악수를 청했다. 앞서 유승민 의원의 상가에서도 김 대표는 비박, 친박 가리지 않고 테이블을 옮겨다니며 조문 온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상주를 대신해 조문객을 맞는 호상(護喪) 같았다. 그가 앉은 자리에서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디서, 누굴 만나든 쌓인 앙금을 툴툴 털어내고 다시 살갑게 악수할 수 있는 사람, 고성이 오가는 다툼 뒤에도 절충이 이뤄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우르고 조율해내는 리더십. 김무성의 최대 장점이다. 김무성 대표의 한 측근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념의 정치인이라면 김 대표는 현실 정치인”이라며 “박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밀어붙이지만 김 대표는 어찌됐든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걸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신사적인 의정활동을 한 의원들에게 주는 백봉신사상을 받은 김 대표가 5개 평가 항목 가운데 ‘정치적 리더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소통능력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의 리더십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무대뽀 리더십’만으론 부족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먼저 스스로의 언행에 엄정해져야 한다. 그는 공사 구분을 본인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위가 마약 투약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도 그는 “부모가 자식은 못 이긴다”는 말로 스르르 넘어갔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김해 김씨 종친 행사에 참석해 “정치인 한 사람으로서 평생 멸사봉공 자세를 잊지 않은 김유신 장군을 꼭 닮고 싶다”고 말했을 때, 와닿지 않았다.
그에게 닥친 또다른 리더십 시험대는 ‘청와대’다. 김 대표를 견제하는 청와대 쪽 분위기는 예사롭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자기 할 일을 안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한 말은 김 대표를 겨냥한 측면도 있다. 김 대표는 ‘친박’들과 힘겨루기도 하고 박 대통령에게 충성심도 내보이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단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며 ‘가늘고 길게’ 가자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무너지는 날이 오면 김 대표는 과연 ‘때’를 기다리며 비루함을 감수하고 발톱을 감췄던 맹수의 용맹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