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이 경찰 병력과 취재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일 저녁 안지훈(34)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택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티브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박 전 대통령의 개인사 때문인지 연민의 감정이 조금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사라졌다고 했다. 안씨는 “자택에 도착해 웃는 얼굴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너무나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집 앞에 친박 의원들이 모여 환영하는 모습을 보니, 임기를 잘 마친 대통령이거나 탄압받고 있는 지도자 같은 느낌이었다. 가엾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틀 만에 청와대를 나온 박 전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승복 내지 통합 메시지를 기대했던 시민들은 쇼크와 허탈감을 토로하고 있다.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파면시키자고 국민 스스로 광장에 나설 수밖에 없게 했던 ‘국정농단’에 대한 사과는커녕, 정면으로 ‘불복’ 선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정지영(56)씨는 밤잠을 설쳤다. 정씨는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공짜밥을 먹여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 불행하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오더라”고 말했다. 그는 “본인 말대로 빠른 시일 안에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특검도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나는 결백하다’고 생각한다면 빨리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국의 지도자였던 이에게 최소한의 책임감을 기대했던 박서경(43)씨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박씨는 “‘어른이 아니구나. 초등학생만큼도 못하구나’ 싶었다. 몇 달 동안 사회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웠다. 최소한 국민들에게 사과는 해야 하지 않느냐”며 “본인 때문에 10일 돌아가신 분들도 있는데 용서를 구하는 게 예의 아닌가. 끝까지 분열을 일으키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범죄자 중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나. 예정대로 빨리 검찰 조사를 받아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말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일제히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이제 박 전 대통령은 ‘민간인’이자 13건의 혐의가 있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에 반드시 응해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해야 할 것”이라며 “검찰 역시 그 어떤 정치적, 정무적 고려 없이 즉각적이고 단호한 수사로 국민 앞에 낱낱이 진실을 규명하고 그 죄를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에서 “진실은 청와대가 아니라 검찰에서 밝히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억울하다면 지금이라도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해서 진실을 소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도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는 법에 따라서 법대로 진행해야 된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상무위원회에서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신속히 소환하고, 계좌추적과 청와대 압수수색 등 수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비대위 회의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탄핵 사건을 뒤로하고 국정안정과 국민통합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박수진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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