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지록위마 놀이 즐기십니까

등록 : 2013.11.18 14:20 수정 : 2013.11.18 14:20

 

지난 10월25일 서울 도곡동 서울나들목교회에서 열린 ‘제1회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예배’. 설교자는 이날 “하나님도 독재를 했으니 우리도 독재가 필요하다”는 말로 교계 안팎의 우려와 비웃음을 샀다.한겨레 류우종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32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발언’ 한적 없는데
대화록 유출해 선거이용…국민 상대 ‘지록위마’

 
고은 시인의 <만인보> ‘(소학교) 2학년 담임선생’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가네무라 선생…, 조선 사람인데, 조선말 한 마디 쓰지 않고, 빠가야로, 빠가야로, 하루도 빼놓지 않는…, 아이들한테 손찌검은 없어도, 걸핏하면 벌주어, 2학년 교실 복도에는, 두손 들고 서 있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일제 병탄기 일본인들은 물론, 그 부역자들도 ‘조센진 빠가야로’라는 욕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가네무라 선생처럼 말이죠. 정확한 우리 말 발음으로는 ‘바카야로’이죠. 병탄의 주역이었던 이토오 히로부미가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맞아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뱉은 말도 ‘(조센진) 바카야로’였다고 당시 일본 신문들은 전했습니다.

바카야로는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이 한국인을 경멸하는 가장 심한 욕설로 남아 있습니다. 말뜻은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바카(馬鹿) 곧 말과 사슴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 곧 ‘바보자식’ 정도의 뜻이고, 중국 진나라 때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에서 유래했다고도 하죠. 욕설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 바카야로 만큼 경멸적인 표현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과 짝을 이루는 형용사가 바로 ‘오로(愚)카나’(어리석은)입니다. 아베 일본 수상이 했다는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일뿐”이라는 말은 표현만 누그러트렸지, 내용은 ‘조센진 빠가야로’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베뿐 아니라 일본 보수 우익 정객들의 한국관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핏속엔 일제 때 군도 차고 거들먹거리며 조선인을 향해 침과 함께 뱉었던 ‘조센진 빠가야로’의 기억이 흐르고 있나 봅니다. 물론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펄펄 뛰고는 있지만, 일본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매체 <주간문춘>이 낭설을 퍼트리진 않았을 겁니다.

그 기사를 보면 이런 말도 했다죠.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곁에 ‘간신’이 있기 때문이고 그 필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다.” 그러고보니 아베가 모욕한 것은 한국 전체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말이 나온 맥락도 꼬일대로 꼬인 한일관계, 아베 수상이 손을 내밀어도 본척만척 하는 한국 대통령의 태도였으니까요. 족벌 언론들로부터 외교 천재로 칭송받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부가 직접적인 모욕의 대상이었으니, 속이 상해도 많이 상했을 겁니다.

그러나 요즘 이 정권 관계자들이 짓을 보면 지록위마의 고사를 떠올리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환관 조고가 어린 황제 호해를 상대로 그랬듯이 국민을 상대로 농락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남유진 구미시장은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날 그를 ‘반신반인’ ‘하늘이 내렸다’고 신격화했습니다. 지난달 26일 그가 피살당한 날 추모식에선 구미 출신의 심학봉 의원이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급입니다. 이런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그의 생가는 지금 성역화되고 있습니다. 북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 생일을 태양절이라 하여 경축하듯이 구미에선 그의 생일날 탄신제라 하여 경축 행사를 벌입니다. 동상도 북한에서 많이 보는 그런 형태입니다. ‘따라 할 게 따로 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도 그럴 겁니다. 일왕을 살아 있는 신 곧 천황으로 모시는 것이야 수천년 내려온 전통입니다만, 여대생 옆에 끼고 술 마시다가 부하에게 피살당한 사람을 신격화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소롭겠습니까. 게다가 그는 국권을 강탈한 일본 천황에게 혈서로써 충성맹세를 했던 사람이었으니 더더욱 그렇겠죠. 그런 사람의 딸이 일본과 맞서는 것으로 인기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그 짧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도 박정희 추모예배가 있었습니다. 둘째 딸 박근령씨도 유족 대표로 참석했으니, 나름 공식성을 띤 행사였습니다. 십자가가 있던 단상 정면에는 그의 대형 초상화가 걸렸었죠. 이 자리에서 목사들은 그를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서 이루어낸 분, 곧 메시아인 양 칭송했습니다. 거의 예수님과 동급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 개신교에선 3위일체가 아니라 4위일체를 모셔야 할 판입니다.

지록위마는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상대를 능멸하는 걸 두고 쓰는 말입니다. 사실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우기는 일이 ‘박정희 신격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정부가 들어선 뒤 청와대·국정원·검찰·새누리당 등 권력자들은 즐겨 국민들에게 그런 일을 했습니다. 엊그제 검찰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문제는 대표적입니다. 처음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을 북쪽에 넘겼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피로써 지킨 북방한계선’을 포기한 놈이라는 것이었죠. 정상회담 배석자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자, ‘대화록이 공개되면 다 드러난다’고 했던 건 대통령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눈에 불을 키고 찾아보았지만 그런 내용이 없었습니다. 포기 운운한 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습니다. 그걸 갖고 김무성 의원 등이 선거 때부터 지금까지 울궈먹었으니, 국민들더러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게다가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선 공작을 20대 여성 감금 사건이라고 호도했던 것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대화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1급 비밀로 지정된 대화록이 유출돼 선거에 악용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문제 제기가 있자, 사초 실종을 주장하며 국민의 눈을 속이려 했습니다. 검찰도 여기에 동원됐죠. 대화록은 저희들이 갖고 장난쳤는데, 어떻게 대화록이 실종됐다는 것인지, 진실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대화록은 물론 녹음 파일까지 국정원에 잘 보관돼 있습니다. 검찰은 궁색해지자, 초본을 없앤 것을 두고 대통령기록물 폐기라고 하여 관계자들을 기소했습니다. 초본의 잘못을 바로잡아 정본을 만들었으면, 당연히 초본은 없애야 합니다. 배석자가 잘못 듣거나 잘못 기록한 것을 왜 남겨둬야 하지요? 지록위마에 혹세무민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짓을 하는 걸 보고, 혹은 그런 짓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보고, ‘馬鹿(바카)’란 말이 나오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신장개업한 상가 앞에 자주 등장하는 풍선 인형이 있습니다. 바람을 불어넣는대로 뒤죽박죽 제멋대로 춤을 추며 행인의 시선을 끄는 인형이죠. 국정원, 검찰, 새누리당, 청와대가 그런 해괴한 춤을 추었던 게 아닌지 싶습니다. 거기에 친정부 언론이 맹렬하게 호객을 하고, 바람을 잡았지요. 그런 상황이 오늘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조금은 시정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마련된 자리에서 한 말씀이 국무회의에서 매냥 하던 말들이더군요. 이런 말을 덧붙이셨더군요. “정치권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미래를 열어가는 길에 나서달라” “정치권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때 국민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결국 정치권, 특히 야당이 문제였더군요. 여전히 지록위마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들 특히 그들이 대표하는 국민은 결코 마록이 아닙니다.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한겨레 신문

 

Posted by 어니엘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