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서 정말 미안합니다"나이 쉰이 넘은 사람으로서 20대 청춘에게 사과드립니다
13.12.17 14:46
최종 업데이트 13.12.17 14:46▲ '안녕들 하십니까?' 깃발 흔드는 고대생 철도민영화를 비롯한 현 시국을 비판한 고려대 학내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를 읽고 뜻을 모은 학생들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시국촛불집회에 참석해 깃발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
ⓒ 유성호 |
나이 쉰을 넘긴 사람으로서 정말 안녕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늦둥이 자식 둘(10살, 7살)이나 키우면서 살고 있는데, 세상 너무 팍팍해서 갑갑합니다. 돈푼깨나 있고, 나랏일 좀 한다는 사람하고는 말도 안 통하는 세상에서 두 딸을 키우려니 너무 막막합니다. 쉰이 넘은 내가 이러니 세상 즐겁게 살아야 할 20대 청춘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 심정 단맛에 침 꿀꺽 삼키듯 쉽게 이해할 것 같습니다.
강원도 산골마을 고등학생들에게 점심 한끼 주자니까 그럴 돈 없다는 사람,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 국정원 선거개입에 관하여 진실을 알고 싶다는데, 그런 것은 알 필요도 없으니 물어보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는 대통령을 모시고 살려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룻밤인들 안녕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젊은 청춘이었던 10대와 20대에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면서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가방공장에서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때 참 많이 억울했는데요, 그래야 하는 줄만 알고 졸려도 참고 일했습니다. 먼지 자욱한 공장에서 밤늦도록 야간작업을 하고 공장 다락방에서 잠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살아 있어서 '안녕'한 줄만 알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부잣집 아들들 부러워할 염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따뜻하고 맛있는 것 가려서 먹는 사람이고, 나는 기름만 치고 스위치만 누르면 돌아가는 기계인 줄 알았던 시절이었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나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안녕' 그런 단어조차 내 입에는 퍽이나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지금 나는 쉰이 넘은 나이이고, 세상 물정도 알만큼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문단 말석에 이름 석 자 올려놓고 소설도 쓰면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두 딸의 아빠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안녕하지를 못합니다. 두 딸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정말 폭폭합니다. 내가 살아온 세상,돌아보면 지긋지긋한데, 또 그런 세상을 내 두 딸이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세상을 내 두 딸에게 살아가라고 내가 어찌 말하겠습니까.
지긋지긋한 세상, 두 딸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 16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 학내게시판에 붙은 한 벽보. 대학생들의 대자보에 '응답'하는 내용이다. | |
ⓒ 이주영 |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말 내가 살아온 그 지긋지긋한 세상은 두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몇 달 전 정당에 입당하고 당직도 맡았습니다. 미력하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보태고 싶거든요.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할 일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어떻게든 내 딸에게만은 내가 살아온 그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나도 철이 없던 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말 대단한 지도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를 알고부터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깨닫게 되었지요.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며 한 송이 불꽃으로 승화하신 전태일 열사는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20대 후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소설로나마 다시 살려내겠다는 당찬 각오로 공부했고, 긴 시간 공부를 해서 30대 후반에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그러고는 2013년 장편소설 '사람의 얼굴'로 제2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태일문학상을 받고나니 정말 너무 슬프고, 아프기만 합니다. 지금 전태일 열사가 살아계셨다면,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어찌 보고 계실까요.
우리들은 말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귀한 사람 천한 사람 구분 짓지 말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자고. 그리고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권력이나 힘에 저항하자고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돈 없고 빽 없어서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되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이제껏 한 번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던 아니던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늘 한계가 있더군요.
지금 우리가 행복하지도 안녕하지도 못한 것은 왜 일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저녁 만찬 자리에서 여자를 동석시키고 술을 마시다 부하에게 총을 맞아 죽어서 일까요?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쏜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 김재규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무어라 말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이 독재자 박정희를 죽임으로써 대한민국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최소한 20년은 앞당겨졌다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더 몰염치한 자가 또 나타났습니다. 전두환이 총을 들고 국민을 겁박하고 살인도 주저하지 않고 정권을 강탈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했고,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선거권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 선거권을 정말 심하게 훼손하는 부정선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현 정권은 그 진실을 묻고자 가진 술책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안녕하겠는지요.
우리가 어떻게 안녕할 수 있습니까
▲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지지 확산 고대 경영학과 주현우 학생이 교내 게시판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화제인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앞에 서 다른 학생들이 지지 대자보를 들고 서 있다. | |
ⓒ 유성호 |
철도노조원이 바른 생각을 말하고 주장하는데, 권력은 힘으로 사람의 밥그릇을 빼앗고, 전교조를 비롯한 합법적인 노동단체를 겁박하며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힘으로 장악하려고만 합니다. 정말 몰염치한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출역군 운운하면서 어린 소년소녀들을 공장에 몰아넣을 생각만 했지, 그 소년소녀들에게 진정한 교육을 시키고자 노력하지 않은 박정희는 무조건 잘못한 것입니다. 지금 말로나마 아이만 낳으면 국가에서 공부도 시켜주고, 키워주겠다고 공약을 남발하는데, 그게 정답이라면 그 당시 14살 15살 소년소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공장으로 유인한 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박정희는 나쁜 대통령이고, 그런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20년이나 지배했던 것이 지금의 아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때 많은 소년소녀가 공장이 아닌 학교에서 공부를 더 했다면, 적어도 열여섯 살까지 만이라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어 있을까요. 배고픔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배부른 돼지가 되어 자기 밥그릇만 지키려는 한심한 모습보다는 가난하지만 정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따뜻함이 넘쳐나겠지요. 그런 나라에서 살면 우리는 지금 모두 안녕하지 않을까요?
이렇게나마 말하고 나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진실이, 정의가 거짓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고, 미력하나마 좀 더 적극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다 함께 '안녕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라도 같이 진실이 거짓을 이길 수 있도록 용기를 내야할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안녕하지 못한 20대 청춘들에게 쉰 살이 넘은 사람으로서 사과하고 싶습니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종득기자는 민주당 강원도당 공보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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