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100일과 박근혜 1년, 이렇게 달랐다
[장윤선의 톡톡! 정치카페] 잘 짜여진 80분짜리 드라마, 감동 없어
14.01.07 08:35
최종 업데이트 14.01.07 08:35▲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
ⓒ 청와대 |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오전 취임 후 첫 번째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임기 내내 불통논란에 휩싸였던 박 대통령이 집권 2년 차를 맞이하면서 새해엔 뭔가 일신하는 차원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첫 번째 자리라는 의미도 컸습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주로 해외순방 중 외신기자들과는 만났지만 국내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국내언론과 만나지 않은 것을 비판했습니다. 해외언론은 만나면서 국내언론은 안 만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죠.
특히 지난 1년은 사실상 '정치적 내전' 상태라 불릴 정도로 정치권은 극한 대립을 이어갔습니다. 야당은 1년 내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요구했지만, 그는 매번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습니다. 특검으로 부정선거 의혹사건의 전모를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금도 매우 높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따라서 국민들은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무척 궁금해 했습니다. 국민행복시대? 100% 대한민국?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 인사문제?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입장? 그에 따른 특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사건의 청와대 연루의혹? 군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의혹? 국정원 개혁법안? 무엇 하나 속 시원한 답변은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그저 예정된 순서에 따라 기조발제 형태로 국정운영 구상을 밝혔고 이어진 질의응답 과정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정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대통령의 입에 현재 실행중인 정책이 착착 달라붙어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고, 대통령이 쓰는 일상적 용어 같다는 인상도 못 받았습니다. 용어 사용이 매우 서툴고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TV 화면에 비친 박 대통령은 단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동안 눈을 떼지 않아 준비된 원고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진보언론 기자들에게 질문권은 왜 없었나
▲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 청와대 |
노무현 정부 때를 제외하면 대개의 청와대 기자회견은 기자단 안에서 미리 질문도 정하고 질문을 던질 기자도 정합니다. 이번에 A사 기자가 했다면 다음엔 B사 기자가 하고, 그것도 방송사·신문사·인터넷·통신 등등으로 나눠서 했을 것이고, 특히나 이번에는 종편들까지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들어왔으니 그들도 한몫 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청와대 측에 질문을 미리 보내고 답변도 준비하도록 했겠지요.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잘 짜여진 80분간의 드라마였던 것일까요? 현장에서 돌발 질문은 없었고 매끈하게 잘 마무리가 됐습니다. 왜 진보언론 기자들은 질문 안 했느냐 비판도 많았으나 인터넷의 경우 기자단 간사인 뉴데일리 기자에게 질문권이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체 질의응답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역시 역사교과서 문제, 불통논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등에 대한 입장이었습니다.
첫 번째 역사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갖고 있나 의문이 생겼습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정확히 확인했다면 최소한 '이념논란으로 번지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문제가 어떤 이념 논쟁으로 번지는 것이 참 안타깝다"며 "우리의 미래세대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사실에 근거한, 그리고 균형 잡힌 그런 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이 배워야 하고 좌든 우든 이념적 편향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교과서였다면 채택 취소 사태가 들불처럼 번졌을까요? 최소한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접근이 대통령에게 되지 않고 있구나 느꼈습니다.
둘째 소통문제입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소통이냐, 그건 소통이 아니"라며 "그동안 불법으로 떼 쓰면 적당히 받아들이곤 했는데 이런 비정상적인 관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소통이 안 돼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른바 '박근혜식 소통론'을 제기합니다. 그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전제조건은 모두가 법을 존중하고 그 법을 지키고 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고 집행되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불법 행동은 법과 원칙에 따라 아주 엄정하게 대응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그는 "지난번 국회 시정연설에서 여야가 충분히 합의점을 찾아준다면 그것을 국민의 뜻으로 알고 다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며 "다행히 여야가 논의 끝에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에 합의했고 또 국가정보원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그런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차단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이제 소모적 논쟁을 접고 함께 미래로 나갔으면 한다"며 "새해도 시작한 만큼 여야 모두가 경제를 살리고 민생경기회복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국민들도 이런 모습을 가장 보고 싶어하지 않겠냐. 특검은 재판 중인 사안이라 대통령으로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일방적입니다. 기존 입장의 반복입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는 소통이 아니라 정부의 말을 믿고 따르라는 강요만 있을 뿐입니다.
대화 강조하는 노무현식 소통 vs. 정부만 따르라는 박근혜식 소통
▲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당시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2년 차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트위터 등 SNS 공간에서는 또 하나의 대통령 기자회견 VOD가 돌았습니다. 2003년 6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동영상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 대통령처럼 국정운영 기조를 설명하고 곧장 질의응답에 들어갔습니다. 기자들은 대통령에게 자유로운 질문을 던졌고 춘추관 현장에는 대통령의 답변에 이어 질문을 이어가려는 기자들 다수는 손을 번쩍 번쩍 들며 질문권을 따내려 경쟁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저와 정부의 잘못도 적지 않았음을 인정한다"며 "앞으로 취임 6개월쯤엔 약속한 사항들을 가시적으로 이뤄내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서민생활 안정, 부동산 가격 폭등 반드시 잡겠다 등등의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취임 첫 해 자신과 참여정부의 잘못도 적지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대목은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대조적입니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화와 협력의 원칙이 절대로 중요하다"며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며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무엇보다 11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기자실이 내외신에 전면 개방된 개방형 등록제 실시 첫날에 이뤄져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자회견 진행도 사전에 질문자를 배정하지 않고 이해성 당시 홍보수석 비서관이 즉석에서 기자들의 이름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당연히 질문권을 따내려는 기자들의 신경전이 치열했지요.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기명 전 후원회장의 경기도 용인 땅 개발 의혹 문제가 거론되자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가 뭐냐"며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도 노무현과 가까우면 문제가 되는 것이냐"고 개탄하기도 했지요.
자유로운 대화와 소통이 있는 기자회견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자유로운 기자회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우리의 우방인 미국을 비교대상으로 삼아보지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이미 SNS에서 화제입니다. 첫 임기 4년간 무려 78번이나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백악관 기자실과 청와대 기자실이 똑같은 분위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회견 전에 질문을 미리 주고 답변을 준비하도록 하는 그런 '짜여진 각본에 의해 쓰여지는 드라마'는 없다는 것입니다. 50년간 백악관에 출입하며 무려 10명의 대통령을 겪은 헬렌 토마스 기자는 '불편한 질문'을 여과없이 던져서 대통령을 당혹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석유 때문이냐, 이스라엘 때문이냐"라고 물어 부시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노무현정부 시절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짜여진 각본에 따라 정해진 질문만 던지고 정해진 답변만 합니다. 아무런 자율성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들은 셈이고, 국민들이 듣고 싶은 얘기는 듣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된 겁니다.
이걸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언론은 성역이 없다고 배웠습니다. 누구에게든 그 사람이 대통령이든 왕이든 거지든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누구든 묻고 싶은 바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시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한 듯 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잘못 말했다가 찍힐까 두려워 말을 함부로 내뱉지도 않는 정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탈권위를 외쳤던 노무현 식 정치, 이제 더 이상 한국정치에는 상정할 수 없는 그림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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