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위부터 서청원, 조원진,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 아래왼쪽부터 최경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21] 11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호텔에 행사차 들른 남경필 경기지사는 우연히 뜻밖의 모임을 목격했다.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조원진 최고위원과 정갑윤,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의원 등 8~9명의 핵심 친박 의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 지사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핵심 친박계가 정국 대책을 논의하고 이를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작전회의라는 걸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친박 9인회’로 불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장육부’(최순실)와 ‘생살’(문고리 3인방)이 사라진 공백을 이들이 메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새누리당 주변에 파다했다.
그런데 이들 친박 9인회가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의 1차 대국민 담화 발표 뒤 본격적으로 모여 ‘반격’을 준비해왔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모임 참석자인 조원진 최고위원은 <한겨레21>과 전화 인터뷰에서 “본격적으로 모인 것은 한 달 전쯤이다. 매일 모인다”고 말했다. 조 최고위원은 또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 최경환, 유기준, 윤상현 의원이 고정 멤버다. (모임의) 결론은 이정현 대표를 통해 청와대에 전달한다”고 말했다.
즉 적어도 10월25일 이후 매일 이들 9인회가 모여 정국 대처 방안을 의논하고, 이를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에 전달한다는 것이다.
9인회의 축인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은 지난 4월 총선 공천을 앞두고 서 의원의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김성회 전 의원을 윽박질러 이를 철회하게 한 전력이 있다. 총선 패배 뒤엔 당 혁신을 정면 가로막기도 했다.
친박 9인회의 영향력은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과 핵심 친박들은 탄핵 추진력을 약화하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담화 전날인 11월28일 모임을 열어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를 전제로 국회에서 향후 정치 일정을 합의해주면 따르겠다고 하는 것이 최선의 수습안이다. 질서 있는 퇴진을 해야 한다”고 뜻을 모으고 이를 허원제 정무수석을 통해 전달했다. 탄핵이 이뤄지면 박 대통령과 함께 공범으로 몰려 정치적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여야 협상을 명분으로 탄핵 무력화에 나선 것이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 담화 내용에서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친박 9인회의 결론과 판박이였다.
이어 새누리당은 12월1일 4월까지 대통령 퇴진, 6월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정했다. 탄핵 동참을 공언했던 비박계가 이에 동참하면서 국회의 탄핵 동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친박 9인회 제안→박 대통령 수용→야당 자중지란→탄핵 불투명까지 친박 9인회의 구상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친박 패권주의를 일삼아온 이들의 ‘조언’은 정략적 술수에만 치우쳐 박 대통령의 민심 역주행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비박계인 하태경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친박 핵심들의 조언은 자신들의 당내 기득권 유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 혼란만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