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되면 비극의 나라 된다"
현실이 된 '최태민 의붓아들' 조순제의 경고

[조순제 녹취록 전문 심층분석①] 녹취록,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서 제작

17.01.05 14:05l최종 업데이트 17.01.05 14:24l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 조씨는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대한구국선교단,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새마음병원 등 박근혜 대통령 관련 단체에서 실무를 맡았다. 박 대통령과 함께 영남대학교의 이사였으며, 이 학교의 자금을 관리하던 영남투자금융의 전무도 겸임했다.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 조씨는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대한구국선교단,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새마음병원 등 박근혜 대통령 관련 단체에서 실무를 맡았다. 박 대통령과 함께 영남대학교의 이사였으며, 이 학교의 자금을 관리하던 영남투자금융의 전무도 겸임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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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의 국정논단을 수사하고 있는 특검이 <조순제 녹취록>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언론들도 <조순제 녹취록>을 계속 거론하고 있다. 10년전인 2007년에 작성된 이 녹취록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조순제씨가 박근혜와 최태민의 "미스테리한 관계"를 증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몰고간 박근혜-최순실 관계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데 이 녹취록은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오마이TV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녹취록 전문의 모습을 공개하고 이를 심층분석 한다.

녹취록은 표지 포함 A4용지 22쪽 분량으로 표지에는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이라고 적혀 있다. 이 녹취록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작성됐다. 녹취록엔 3인이 등장하는데, 주로 이명박 후보 캠프 관계자 1인이 묻고 조순제씨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나머지 한 명은 조순제씨의 친구로 보인다.

조순제는 누구길래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 관계자가 이 사람의 증언을 확보하려고 했을까?

조순제는 1940년생으로 최태민의 의붓아들이다. 최태민은 결혼을 다섯 번 했는데 1955년 임선이와 다섯 번째 결혼을 한다. 이 때 임선이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데리고 왔는데 그 아들이 바로 조순제다. 최순실과는 아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가 같다.

임선이는 최태민과 결혼 후 세 딸 최순득(1952년), 최순실(1956년), 최순천(1958년)을 낳는다. 최순실이 태어나던 해 조순제는 16세였다. 최태민이 박근혜와 대한구국선교단 등의 활동을 시작한 1975년 조순제는 30대 중반으로 '구국선교단 홍보실장'으로 일하면서 박근혜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구국선교단에서 영남대까지, 목격자 조순제

조순제는 이후 육영재단 운영에도 관여했고, 박근혜가 영남대 이사장이던 시절 대학운영을 좌지우지하는 4인방 중 한사람으로 재정을 총괄했다. 그는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최태민-박근혜 관계를 지켜봤고, 최순실-박근혜 관계의 시작도 지켜봤다.

조순제는 2007년 8월 13일 당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에게 '박근혜 문제'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이자 대한구국선교단, 대한구국봉사단, 대한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의 홍보실장, 새마음병원의 사무처장이었으며 박근혜 전 대표와 이들 단체를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그 직전 조순제는 이명박 후보 캠프 관계자와 사전동의 속에서 이 녹취록을 남겼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2007년 12월20일 숨졌다. 사인은 지병(폐암)으로 알려졌지만 시점이 참 묘하다.

그렇다면 왜 조순제는 이명박 후보측에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폭로했던 것일까? 이 녹취록에는 그의 의도가 분명하게 여러 곳에 반복적으로 담겨 있다.

박근혜는 "자신의 능력이 전무"하고, 최태민과 "고기와 물의 관계"일 정도로 "이해 안 가는 인생스토리가 많은" 사람이므로 그가 대통령이 되면 "비극의 나라"가 된다고 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10년 전에 예견한 듯한 발언들이다.

조순제의 경고 "100% 꼭두각시... 대통령 되면 안 돼"

 1977년 1월 19일 열린 새마을 국민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에 나선 최태민 총재.
 1977년 1월 19일 열린 새마을 국민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에 나선 최태민 총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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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박근혜는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며, 측근의 꼭두각시일뿐이기 때문에 한 나라를 책임질 국정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박근혜와) 업무를 하면서 지내보면 완벽한 꼭두각시예요. 지금은 능력이 좀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완벽하게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능력이 없는 것이 뭘 하겠다고 설치느냐 말이야."(1쪽)

"완전히 100% 꼭두각시였습니다. 진짜 100% 꼭두각시. 업무에 대한 것도 결국 전부 나하고 쏙닥거리면 그게 한 자 한 획도 없이 그대로 되버리는 거야. 완벽한 꼭두각시였거든."(2쪽)

"100% 꼭두각시예요. 처음에 (한나라당) 당대표 한다고 설칠 적에 누구하고 만나서 무슨 얘기 어떻게 할지 거꾸로 나에게 물어볼 판이었으니까."(20쪽)

둘째, 조순제는 녹취록에서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를 "이해 안 가는 스토리"라고 열거하면서 그런 박근혜가 되면 나라를 "미스터리로 끌고가는" 거라고 예견했다.  

"그게 참 묘해. 이해 안 가는 인생살이가 많아. 박근혜는 이해 안 가는 스토리가 많은 거야. 그러니깐 이게 나라 맡으면 어떻게 되겠어. 진짜 미스터리로 끌고가는 거야."(19쪽)

셋째, 조순제는 박근혜가 부정한 일을 지시해놓고 "잘못되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밥 먹듯이"한다면서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사례로 영남대 부정관리 사태를 들었다.

"어떤 경향이 또 있냐하면 결과적으로 잘못되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완전 밥 먹듯이 쉽게... 예를 들어서 영대 관계만 해도 그렇잖아... 지도자가 되려면 어느정도 자기가 수긍할 건하고 그래야지. 김OO 총장이... 무리한 짓 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강요하고 억지로 할 수 없이 응해와 갔는데 잘못되니까 전부 몽땅 넘겨 불고 덤탱이 씌우니깐..."(2쪽)     

넷째, 그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비극의 나라"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이 박근혜를 이겨야 한다고 조순제씨는 말한다.

"엠비(이명박)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국가관으로....나라 안 잃으려고 하는 소리야... 우선 나는 저거(박근혜)는 안 되겠다 이거야."(16쪽)
"엠비 재켜놓고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은 한 방에 가버려. 진짜 한 방에 가벼려... 그러면 참 험악한 비극의 나라가..."(2쪽)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해 있다. 2016.10.29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해 있다. 2016.10.29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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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조순제씨는 2007년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참여정부와 민주당이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고 이것이 폭로될 경우 '박근혜 후보의 승리'는 힘들다고 보았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시절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파악한 박근혜-최태민 관계 자료를 민주당 후보(당시 정동영)쪽에서 입수해 활용할 것을 걱정했다.

"김재규가 수단 방법 안가리고 원래 하던 건데 모든 걸 다 수집하려고 발악을 했을 거 아니야. 그 자료가 과연 이 패거리들이 가지고 있느냐 안가지고 있느냐... 그게 불안하다 그거죠. 내 느낌으로는 가지고 있다고 봐야하는 거
예요. 그렇다면은 본 게임 가서 불어버리면 게임이 안돼요. 바로 끝나버려요...제대로 가지고 있다면 폭발력이 대단할 걸요."(3쪽)

그러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박근혜 검증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끝났고, 그로부터 5년 후인 2012년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과정에서도 조순제 녹취록에 담긴 박근혜 의혹들은 제대로 검증되지 못했다. 그 결과 박근혜는 50% 이상의 지지로 2012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대한민국은 조순제씨의 예언대로 "비극의 나라"가 되었다.  

☞ 이어지는 기사 : [심층분석②]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물과 고기"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물과 고기"

[조순제 녹취록 전문 심층분석②] 조순제 "단둘이 골방에 들어가 3시간"

17.01.05 14:06l최종 업데이트 17.01.05 14:06l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논단을 수사하고 있는 특검이 <조순제 녹취록>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언론들도 <조순제 녹취록>을 계속 거론하고 있다. 10년전인 2007년에 작성된 이 녹취록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조순제씨가 박근혜와 최태민의 "미스터리한 관계"를 증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몰고간 박근혜-최순실 관계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데 이 녹취록은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오마이TV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녹취록 전문의 모습을 공개하고 이를 심층분석 한다. [편집자말]
☞ 이전기사 : [심층분석①] 조순제 "박근혜 대통령 되면 비극의 나라 된다"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해 있다. 2016.10.29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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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에서 조순제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가 "고기와 물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 둘은 "간첩 점조직 하듯이" 만났다고 한다.

- (1979년) 10.26 나자마자 박(근혜)후보가 신당동(으로) 이사 가지 않습니까? 그때도 최태민과 관계가 있었습니까?
"있다고 봐야죠. 계속 있었습니다. 그 관계는 뭐 우리가 아는 말로 간첩 점조직 하듯이, 둘의 관계는 끊임없이 뭐 고기가 땅에 있으면 물만 보면 찾아가듯이 딱 그런 관계예요." (14쪽)

조순제는 박근혜가 역삼동에 있는 최태민의 집으로도 찾아왔다고 말했다. 단층 기와집이었단다.

"찾아오고 하게 되면요. 사람들 다 피하게 하고 눈에 안 띄게, 온다는 연락이 오면 다 피하고 눈의 띄면 그건 거북하니깐 나도 마당에 있다가 집 뒤로 피해 준다고. 그러면 방에 쏙 들어가면 나오고 다 그랬어요. 그 시절에." (14쪽)

조순제는 박근혜-최태민 두 사람이 "그 골방에서 단 둘이 3시간, 4시간 있었다"고 말했다.

"3시간 4시간 안 나오고 둘이 있는데, 그 골방이 한 요만할 거야. 이 방이 좀 좁고 길어. 한 두 평... 둘이 들어갔다하면 3시간, 4시간 있는데 밥은 문간에 갖다 놓으면 영감쟁이(최태민)가 들고 들어 가서 저그끼리 먹고." (14쪽)

녹취록에서 조순제는 질문자가 "역삼동 집은 박근혜가 한 달에 몇 번이나 찾아왔나?"라고 묻자 "뭐, 자주 왔어요"라고 답한다.

조순제는 박근혜-최태민의 이런 관계를 최태민의 아내와 딸 등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감수"했다고 한다.

"엄청난 대통령 딸이지... 엄청난 돈에 감수하는 거지."(14쪽)

조순제는 최태민이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그래서 박근혜의 소유가 된 '돈뭉치'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덕분에 전까지 가난하게 살았던 최태민씨 식구들이 "엄청난 돈"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감수'했다고 말한다.

박근혜와 최태민이 처음 만난 것은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숨진 뒤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최태민이 1975년 박근혜의 위세를 등에 업고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면서 대중 앞에 서기 시작한다. 이것이 1978년 새마음봉사단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최태민 총재-박근혜 명예총재로 관계를 이어간다.

녹취록에서 조순제는 이때를 "돈 천지"였다면서 이 돈을 박근혜가 시켜서 최태민이 다 관리했다고 말한다.

"그땐 돈 천지지...아 돈 많았어. 우리나라 재벌들이 다 냈어요."(18쪽)
- 그때 구국선교단 돈 관리는 누가 했습니까?
"돈은 철저히 최(태민)가 다 관리했습니다. (박)근혜가 그렇게 시키고, 절대 누구 맡기지 말라고."(18쪽)

박근혜는 왜 최태민에게 돈 관리를 시켰을까?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 조씨는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대한구국선교단,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새마음병원 등 박근혜 대통령 관련 단체에서 실무를 맡았다. 박 대통령과 함께 영남대학교의 이사였으며, 이 학교의 자금을 관리하던 영남투자금융의 전무도 겸임했다.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 조씨는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대한구국선교단,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새마음병원 등 박근혜 대통령 관련 단체에서 실무를 맡았다. 박 대통령과 함께 영남대학교의 이사였으며, 이 학교의 자금을 관리하던 영남투자금융의 전무도 겸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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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가 안되는 것이 박(근혜)이 그 많은 돈을 전부 (최태민 쪽으로) 글로 줬단 말이야?
"아 그러니까 불가사의다 전부.... 진짜 불가사의다, 불가사의다."(7쪽)

불가사의를 반복하던 조순제는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설명을 해본다.

"(박근혜가) 누구한테 믿고 할 때도 없고. JP(김종필)하고 등졌지요... 당황하기도 하고, 능력도 안되고, 경험도 없고. 사회경험이 전무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조순제는 "끝없이 험악한 둘의 관계"를 언급한다.

"거기에다 또 우리 속된말로 뭐 끝없이 험악한 둘의 관계다 하니까니 (돈이) 몽창 굴러왔다고 봐야지. 그건 관리차원도 있고 복합적인 여러 요인이 있겠지."(8쪽)   

최태민은 어떤 힘을 가졌기에 박근혜를 관리 혹은 지배 할 수 있었을까? 조순제 녹취록을 보면, 최태민의 양아들이자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조순제마저도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줄 만한 내용을 전해주지 못한다. 그도 "참 묘하다" "미스터리다"라는 표현을 쓴다. 녹취록에는이런 문답이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하다.

-최태민이란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아...대단하죠. 여자에 대해서는... 뭐..." (17쪽)

분명한 것은 박근혜가 첫 만남부터 최태민에게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최태민은 1975년 2월께 엄마를 잃고 외롭게 청와대에 있던 박근혜에게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세 차례에 걸쳐 보낸 끝에 그해 3월 6일 처음 만났다.

그런데 그로부터 1달 보름만인 4월 29일 최태민은 박근혜의 후원으로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든다. 박근혜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최태민에게 믿음을 주었을까? 주한미대사관이 2007년 7월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는 그 첫 만남 이후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지배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 미스터리는 최태민의 시대가 가고 최순실의 시대가 와서도 이어졌다. 최태민은 1994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 후 '박근혜 관리'의 주체는 최태민에서 그의 딸 최순실로 승계된다. 최순실은 도대체 어떤 힘을 가졌기에 박근혜를 관리할 수 있었을까?

박관천 경정의 말대로라면, 최순실은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을 누르고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가 되었을까? 답은 최태민이 가졌던 것을 최순실이 이어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다 보여주지 못하지만 조순제 녹취록은 그것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 이어지는 기사 : 왜 박정희-김재규-전두환은 박근혜-최태민 관계 단절에 실패했나

 

 

박정희는 왜 박근혜-최태민 관계 단절에 실패했나

[조순제 녹취록 전문 심층분석③] 조순제 "자식 이길 아버지 없다"

17.01.05 14:06l최종 업데이트 17.01.05 14:06l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논단을 수사하고 있는 특검이 <조순제 녹취록>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언론들도 <조순제 녹취록>을 계속 거론하고 있다. 10년전인 2007년에 작성된 이 녹취록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조순제씨가 박근혜와 최태민의 "미스터리한 관계"를 증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몰고간 박근혜-최순실 관계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데 이 녹취록은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오마이TV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녹취록 전문의 모습을 공개하고 이를 심층분석 한다. [편집자말]
☞ 이전기사 :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물과 고기"

 1976년 8월 21일 대한구국여성봉사단은 이 여고생 10명을 장학생으로 선발, 봉사단 본부에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 남성이 최태민씨.
 1976년 8월 21일 대한구국여성봉사단은 이 여고생 10명을 장학생으로 선발, 봉사단 본부에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 남성이 최태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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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제는 녹취록에서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간첩 점조직"식으로 만나는 "물과 고기"의 관계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참 묘하다" "불가사의하다" "미스터리하다"라고 말했다.

물 최태민과 고기 박근혜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라는 판단하에 이 둘을 격리시키려는 시도가 당대 정권의 최고실력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심지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격리 시도도 실패했다.

둘을 떼어내려는 첫 번째 노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해 이뤄졌다.

조순제는 녹취록에서 10·26 전에 "김재규가 수단방법 안 가리고 (최태민의) 모든 걸 다 수집"했다고 말했다.

"(김재규의 중앙정보부가 도청을 했는지) 깊은 사무실에서 얘기했는데 1분만에 와서 말조심하라고 충고할 정도라면 다른 건 뭐..."(4쪽)

그래서 김재규와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결사적"이었다고 한다.

"박근혜와 최태민은 김재규를 결사적으로 씹었다, 저걸 두면 큰일 나..."(4쪽)

김재규 사형집행 후에도 계속된 '박근혜-최태민' 관계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 조씨는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대한구국선교단,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새마음병원 등 박근혜 대통령 관련 단체에서 실무를 맡았다. 박 대통령과 함께 영남대학교의 이사였으며, 이 학교의 자금을 관리하던 영남투자금융의 전무도 겸임했다.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 조씨는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대한구국선교단,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새마음병원 등 박근혜 대통령 관련 단체에서 실무를 맡았다. 박 대통령과 함께 영남대학교의 이사였으며, 이 학교의 자금을 관리하던 영남투자금융의 전무도 겸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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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조사한 박근혜-최태민 관계는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보고가 되었고,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친히 딸을 불러놓고 조사를 했다. 이름하여 친국(親鞫)이 진행된 것이다.

"(박 대통령이 배석한 중앙정보부 백관현 국장한테) 증거를 내놔 했는데 하나도 못 내놔. 자료 내놨다가는 근혜가 맞아죽고, 또 그 사람들 바보가 아닙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거든요. 박통(박정희 대통령)하는 것 보니까 전부 지네(중앙정보부 등 최태민 견제세력)만 다치거든요. 그러니깐 근혜쪽 붙은 사건은 전부 피하는 겁니다."(12쪽)

이렇게 해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조사도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를 단절시키지 못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데, 나중에 군사재판정에서 항소이유서를 통해 대통령 살해의 한 배경으로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들었다. 다음은 김재규의 항소이유서 중 관련 대목이다.  

"피고인(김재규)은 1975년 5월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있는 최태민이라는 자가 사이비 목사이며 자칭 태자마마라고 하고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이 있는데다 여자들과의 추문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일을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더니 박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그런 것까지 하냐?' 하면서 반문 하길래 피고인으로서는 처음에 대통령의 태도를 보고 놀랐으며, 대통령은 큰딸인 박근혜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근혜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여 대통령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조사 후에 최태민이란 자를 총재직에서 물러나게는 했으나 그후 알고보니 근혜가 총재가 되고 그 배후에서 여전히 최태민이 여성봉사단을 조종하면서 이권개입을 하는 등 부당한 짓을 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김 피고인의 '큰 영애도 구국여성봉사단에서 손떼는 게 좋습니다. 회계장부도 똑똑히 하게 해야 합니다'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도 있어서, 대통령 주변의 비위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하고 또 대통령 자신도 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0.26으로 저 세상으로 떠났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도 사형집행되었으나 박근혜-최태민 관계는 계속됐다.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전두환 대통령도 집권 초 한때 최태민을 강원도 군부대로 보내 박근혜와 분리를 시도했지만 그 후 흐지부지됐다. 조순제의 말이다.

"박통 죽고나서 전두환이가 근혜는 절대 안 건드려. 신성시하고."
"그 친구들이 무슨 재산관계니 이런 거 조사한 건 없어요. 그때 조사를 했으면 많이 나왔겠지." (13쪽)

조순제 "전두환이 준 6억, 스위스 은행 50억"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해 있다. 2016.10.29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5년 6월 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씨가 참석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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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제 녹취록에는 '전두환이 10.26 후 박근혜에게 준 6억원'(15쪽), '스위스 은행에 50억'(8쪽) 등 뭉칫돈 이야기가 거론된다. 조순제는 녹취록에서 그 돈들의 향방에 대해 이런 암시를 한다.

"전부 기집애들이(최태민의 딸들) 다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분산시키고 왔다갔다 정신이 없어요."(9쪽)

이 돈들의 실체와 그 후 행방에 대해 전두환 정권은 물론 그 후 어떤 정권에서도 조사된 적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두 민주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김재규의 항소이유서 표현대로 박근혜-최태민 가(家)의 검은 관계에 대해 "아무도 문제삼지 못하는" 시절이 계속 이어졌다. 누군 알지 못해서, 누군 믿기지 않아서, 누군 두려워서, 또 누군 다 지난 옛일이라면서.

박근혜-최태민에서 박근혜-최순실로 이어지는 불가사의한 검은관계가 그동안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가 쌓아온 적폐를 상징한다. 박근혜-최태민의 잘못된 만남이 시작된 지 40여년이 지나서야,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 촛불을 들고 나서야, 그 촛불민심이 박영수 특검을 만들고 나서야, 박근혜-최태민(최신실) 은닉재산 의혹이 본격적으로 파헤쳐지고 있다. 특검은 금융감독원에 최순실씨의 재산형성 의혹과 관련된 인사 40여명의 재산내역 조회를 요청해둔 상태다.

김재규도 못하고, 박정희도 못하고, 전두환도 못한 것을 촛불민심의 명령을 받은 특검이 파헤치고 있다.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오마이뉴스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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