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찍은 남자2·5호와 여자3호는 ‘변심’을 택했다

등록 : 2013.12.17 20:36 수정 : 2013.12.18 10:25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당선 1년]
수도권 50대 8명 심층 좌담

“무능해졌다” “세일즈 외교만 치중”
8명 중 3명 지지 철회, 1명 판단 유보

여전히 지지표 보내는 이들
전두환 재산 환수 등 후한 점수
“소신과 강단으로 국정 운영”

‘100% 대한민국’을 내걸고 치른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51.6%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야권 후보를 지지한 나머지 48%를 보듬는 ‘국민대통합’을 천명했다. 19일로 대통령 당선 1년이 되지만, 우리 사회는 타협이 존재하지 않는 극한의 정치실종, 원심력만 존재하는 분열의 1년을 목도하고 있다.

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라는 수도권 50대 지지층에서도 박근혜 정부 1년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렸다. <한겨레>는 수도권에 사는 50대 남녀 8명을 대상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표적집단 심층좌담(FGD)을 실시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2시간15분 동안 진행된 심층좌담을 통해 단순 여론조사에서는 좀체 확인할 수 없는 민심의 속내가 드러났다.

표적집단 선정과 좌담 진행은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대표 임상렬)에서 맡았다. 지난 13일 저녁 리서치플러스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은 공정한 의견을 듣기 위해 언론사 주관 조사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개인 신상 보호를 위해 참석자들은 모두 익명으로 적는다.


핵폭탄이 터져도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던 ‘박근혜 지지층’에도 균열은 생기고 있었다. 50대 지지층을 붙잡아줬던 ‘박근혜’라는 구심력은 여전히 강했지만, 일부 고리는 약해지거나 이미 끊어져 있었다. 심층좌담에 참여한 8명 가운데 3명은 불과 1년 사이에 박 대통령 지지를 접었고, 1명은 판단 유보를 선언했다.

전업주부인 여자3호(53)는 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너무 좋아서 사흘 낮밤을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 찍었을 때보다 좀 무능해졌다”고 생각한다. “찍을 때는 그게 아니었는데 서민들 사이에서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흐리멍텅하다.” 그래서 여자3호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1년 전 대선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박 대통령을 찍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강한 줄 알았다”는 남자2호(51)는 지난 1년을 보고 남은 임기 4년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다. 지금 한창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인데 선거개입 문제 등 과거에 발목이 묶여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빨리 털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개혁이나 비전 제시, 공약 실천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괜히 찍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발회사 임원인 남자2호의 실망감은 ‘이도 저도 아니다’는 여자3호의 박한 평가와 겹쳐졌다. “주변 얘기 들어보면 세무조사 압박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와닿는 게 하나도 없다.”

‘지지 철회’는 남자5호(56)의 입에서도 나왔다. “국정원 사건 등이 불거졌을 때 야당과 소통하면서 ‘이런 부분은 이렇다. 잘해보자’ 이런 정도는 해야 하는데, ‘너는 짖어라, 나는 아니다’ 식으로 계속 담을 쌓고 있으니 나라가 돌아가는 게 뭔가? 국내 정치가 어떻든 그냥 외국 나가서 세일즈외교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비쳐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뢰를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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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여전히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일부 매끄럽지 못한 국정운영을 인정하면서도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디자인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여자2호(50)는 “생각했던 것보다 잘한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도 딱 밀고 나가서 찾아내지 않나. 주변에서 공격을 해도 자기 신념대로 잘하고 있다”고 후한 점수를 줬다. 박 대통령이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소신과 강단’이 국정운영에서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여자2호는 열렬한 박 대통령 지지자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위해 정치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을 수입해 와야 한다는 말들을 할 정도로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박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래픽사무실을 운영하는 남자1호(53)는 “어떤 정치적 이슈가 논란의 정점을 찍을 때 대통령이 한마디라도 설명을 해줬으면 한다. 그래야 신뢰를 갖게 된다”고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이제 전체 임기의 20%가 지났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 국정 성적표에 참석자들 중 두번째로 높은 80점을 매겼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지지율을 깎아먹는 ‘불통 이미지’가 대통령의 책임이 아니라고 했다. 남자1호는 “불통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박 대통령은 원래 입이 무거운 스타일이다. 대통령은 일을 하고 있는데 언론플레이, 홍보를 잘 못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포퓰리즘도 약간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내막은 그게 아닌데, 강경보수 ‘인의 장막’ 때문에 대통령이 그렇게 비쳐진다”고도 했다. 김기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이른바 ‘올드보이’가 박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매개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시야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업을 하는 남자3호(51)는 “불통인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됐겠느냐. 내부에서는 누구보다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자3호는 “막연한 기대지만 분명히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나을 것이다. 좀더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던 개인택시 기사 남자4호(50)는 “불통 이미지는 과거 대통령이 어릴 때부터 걸어왔던 삶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주위 말에 귀 막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강경보수가 아니다”고 감쌌다.

여자1호(53)는 “작은 직장도 새로 가면 최소한 업무파악 기간이 있다. 더군다나 한 국가의 지도자다. 임기가 이제 5분의 1이 채 안 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직접 듣는 의사소통은 아쉽다”며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유보했다. “대통령이 강직하고 소신이 있다고 하는데, 긍정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그게 바로 불통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수준이 얼마나 높으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하는 걸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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