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네이버와 다음 뉴스 서비스의 정치 편향 여부를 따지고 나섰다. 새누리당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여당에 대한 부정적 콘텐츠가 야당보다 많았다. 그러나 보고서의 데이터 조사방법이 상식 밖이었다.

새누리당… 포털만 길들이면 내년 총선은 OK?

‘포털과의 전쟁’ 앞장서는 여의도연구원

새누리당의 자신감이 도를 넘었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완승을 점치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가운데, 아예 ‘쐐기’를 박겠다는 태도다. 쐐기의 이름은 ‘포털 길들이기’다. 국내 여론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네이버와 다음을 손보겠다고 나섰다.

9월3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한 편의 보고서가 공개됐다. ‘포털 모바일뉴스(네이버·다음) 메인 화면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40여 쪽짜리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네이버와 다음의 모바일 사이트 첫 화면을 분석한 결과 정부·여당에 대한 부정적 콘텐츠가 야당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파장은 컸다. 사건 초기부터 여당의 포털 길들이기 논란이 불거졌지만, 실제로 포털 뉴스가 정부·여당에 비판적인지도 관심거리였다. 특히 국내 뉴스 검색 점유율의 84%를 차지하는 네이버가 정부·여당에 불리한 기사를 다음보다 많이 배치한다는 내용이 뜻밖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6월 새누리당과 정부에 부정적인 기사는 네이버 671건, 다음 505건인 반면 야당에 부정적인 기사는 네이버 55건, 다음 61건으로 나타났다. 다음이 야당 편향적인 데 비해 네이버는 여당 편향적이라는 기존 통념을 깨는 보고서였다.

그런데 보고서 내용은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6개월 동안 5만여 건의 빅데이터를 분석했다고 주장했지만, 분석의 대상이 상식 밖이었다. 모바일 뉴스 첫 화면에 나오는 ‘제목’만을 대상으로 긍정·부정·중립을 판단했다. 긍정·부정·중립을 가를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 결과 ‘박 대통령, 러시아 승전 행사 참석할까… 청와대 고심’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공판, 조응천 혐의 부인’ 따위 기사가 정부·여당에 부정적인 콘텐츠로 분류되었다. 단지 제목에 ‘고심’ ‘부인’ 같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 기사로 분류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빅데이터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보고서(위)를 작성한 서강대 최형우 교수는 빅데이터 전문가가 아닌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였다.  
ⓒ시사IN 이명익
보고서(위)를 작성한 서강대 최형우 교수는 빅데이터 전문가가 아닌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였다.
 

보고서는 언론 본연의 정부 비판 기능에 대한 이해조차 없었다. 보고서는 정부와 여당을 한 묶음으로 봤다. ‘청와대·정부 부처+새누리당 대 야당’의 구도를 만들고 분석에 들어갔다. 경찰·검찰이 속해 있는 정부·여당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고, 부정적 기사의 숫자도 따라 늘어난다. 이 결과 여당·정부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1029건인 반면, 야당에 부정적 기사는 147건이라고 밝혔다. ‘헛다리 짚은 경찰…크림빵 아빠 초동수사 부실’ 같은 기사를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기사로 분류했다.

여기서 여야 정당만 떼어놓고 분석하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네이버의 경우 여당에 부정적인 기사가 전체 343건 중 80건(23.3%), 야당에 부정적인 기사가 235건 중 55건(23.4%)이었다. 여야 비판 기사 비중이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다음도 여당(19.1%), 야당(19.6%) 비판 기사 비중이 비슷했다. 여야 정당 기사만 놓고 보면 양대 포털은 오히려 상당한 ‘기계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 말미에 이런 내용이 버젓이 실려 있음에도 새누리당은 포털 뉴스가 야당에 편향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쯤 되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보다 뉴스에 더 많이 등장했다는 대목은 ‘애교’에 가깝다. 보고서 조사 기간은 올해 1~6월이었고,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선출된 때가 올해 2월8일이었다. 언론사에서 문재인 대표 기사를 많이 생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신문법 조항 만든 당사자들이 적반하장

과거 여러 차례 논란이 불거졌던 ‘제목 편집 문제’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보고서는 네이버 콘텐츠 중 12.9%, 다음 콘텐츠 중 4.8%의 제목이 편집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예시로 든 것 대다수가 ‘제목이 긴’ 경우였다. 제목 글자 수 제약을 받는 포털 뉴스의 특성상 뒷부분을 말줄임표 처리한 경우였다. 언론사가 시차를 두고 제목을 바꾼 경우도 ‘제목 편집 행위’라고 적시했다. 난센스다.

현행 신문법(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보자. 제10조(인터넷뉴스서비스 사업자의 준수사항) 2항은 ‘인터넷뉴스서비스 사업자는 기사의 제목·내용 등을 수정하려는 경우 해당 기사를 공급한 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기사를 공급한 언론사가 기사를 바꿀 경우 즉시 반영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포털사가 제목을 임의로 수정하는 것을 아예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발의해 201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법률이다. 한 포털사 관계자는 “이미 법적으로 정리된 제목 편집 문제를 또 들고나오는 것을 보면서 좀 섬뜩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무성 대표는 9월9일 최고위원회에서 “포털은 제목까지 수정하는 등 사실상 새로운 유형의 언론으로서 기존 언론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라며 포털 뉴스의 중립성을 문제 삼았다. 신문법 조항을 알고도 그랬다면 악의적이고, 몰랐다면 보고서 작성자를 문책해야 할 일이다.

다음카카오의 경우 이번 논란이 더욱 난처하다. 다음은 지난 6월 새로운 모바일 서비스 하나를 선보였다. ‘루빅스’(RUBICS:Real-time User Behavior-based Interactive Content recommender System)라는 서비스다. 이용자의 선호도를 파악해 사용자 개인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자동 추천하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사용자의 관심사에 따라 스마트폰에 뜨는 뉴스 화면이 저마다 달라지는 것이다. 다음으로서는 뉴스 편집권을 ‘사용자 개인’에게 돌려줬다고 주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런 마당에 새누리당이 네이버와 함께 다음의 뉴스 편집 행태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다음 뉴스펀딩에 대한 법적 조치도 권고하고 나섰다. 뉴스펀딩이 뉴스의 생산에 간여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9월3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이날 새누리당은 ‘포털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하고 포털의 정치 편향을 문제 삼았다.  
ⓒ연합뉴스
9월3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이날 새누리당은 ‘포털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하고 포털의 정치 편향을 문제 삼았다.
 

‘포털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새누리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연일 포털의 정치 편향을 문제 삼으며 네이버와 다음의 CEO를 국정감사장에 출석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 언론 환경을 만들기기 위한 ‘미디어 쟁탈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보고서의 조사 시점이 올 1월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이미 1년여 전부터 포털 길들이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좀 더 신중히 다루지 않겠느냐”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한 진성호 전 새누리당 의원은 “네이버는 평정됐고 다음을 손봐야 한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진성호 의원의 공개 사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후 정부·여당의 포털 장악 공세는 꾸준하게 이어졌다. 2009년 포털사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두고 김상헌 NHN 대표 등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국정감사에서도 포털의 정치적 중립 문제가 불거져 네이버와 다음 CEO가 국회에 불려나간 바 있다. 당시 새누리당은 “포털사가 경제위기 기사를 게재해 여당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시점만 달라졌을 뿐, 거의 연례행사처럼 ‘포털 흔들기’가 이어져온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의 여론 장악 시나리오가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2009년 미디어법으로 종편을 탄생시킨 데 이어 올해 포털 장악으로 방점을 찍으려 한다는 것이다. 부실 보고서 논란으로 스타일은 구겼지만, 효과는 톡톡히 볼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새누리당에) 민감한 기사는 좀 더 신중하게 다루지 않겠느냐”라는 한 포털 관계자의 말이 모든 것을 웅변한다.

마침 여당에 대형 악재인 김무성 대표 사위의 마약 투약 사건이 불거졌다. 포털사가 자신의 주장대로 ‘어떤 외부 간섭이나 사적 이해관계도 배제’(네이버 뉴스서비스 운영 원칙)할지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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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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