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기계’ 새누리당의 비밀
[표지이야기] ‘차떼기당’ 오명에도 민간인 사찰에도
세월호 참사에도 끄떡없는 새누리당, 그 생명력의 근원은
2012년 12월17일 18대 대선을 이틀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경기도 군포 산본중심상가에서 유세를 시작하자 지지자가 몰려들고 있다. 뉴시스 |
“한국 보수의 특징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기민하고 능수능란하다는 것이다. 진보세력이 선거를 1년이나 6개월 전에 준비한다면 보수세력은 선거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선거 준비로 들어가는 게 제도화돼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여론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자세도 오랜 경험으로 쌓아올린 새누리당의 노하우다. 최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사태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듯, 애초 문 후보자를 감싸던 새누리당 지도부는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급락하자 며칠 만에 ‘자진 사퇴 압박’으로 태도를 바꿨다. 상황에 따라 유불리를 따져 기민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유권자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는 것도 새누리당의 주요 전략 가운데 하나다. 새누리당 안의 개혁세력이 주로 이런 역할을 해왔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김영삼 총재를 필두로 한 민주화 세력이 이런 역할을 한 것을 시작으로, 새누리당은 이재오·김문수·손학규 등 독재에 저항했던 인물을 당내에 수혈했다. 이후에는 남경필·원희룡 등 소장파 의원들이 중심이 돼 미래연대, 새정치수요모임 등을 꾸리고 당내 개혁을 이끌었다. 2004년 ‘차떼기당’의 위기에서 당을 살려낸 ‘천막당사’도 이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이들은 보수당에 실망한 유권자에게 ‘혁신’이라는 희망을 심어줬다. 물론 이러한 개혁세력에 대한 기대가 실현되지는 않았다. 개혁파들의 시도가 보수당의 맨얼굴에 ‘화장’이라는 덧칠만 한 채 주류의 기득권을 공고화해주는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로 당선된 원희룡 당선자는 이런 지적에 대해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새삼스런 질문도 아니고 변명할 이유도 없다. 제주와 관련된 정치적 사안의 실행을 통해 책임과 성과를 갖고 얘기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서복경 교수는 “한나라당 안에 소장파들이 등장하면서 합리적인 보수에 대한 지향들이 생겨났다. 이들의 시도는 진지했다. 그러나 이후 이들의 독자적 노선이 실패로 끝나면서 결국 ‘페인트모션’이 돼버렸다”고 분석했다. 따지고 보면 보수세력의 상징이 된 박근혜 대통령도 보수당이 갖추고 있는 독점적 자원, 선거 승리 전략, 여론 동원 능력 등 다양한 자원을 최대치로 활용하고 거기에 더해 페인트모션까지 충실히 이행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생긴 지역 분열 이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이들은 크게 지역·세대·이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얘기하면 영남 지역, 50대 이상의 연령층, 보수적 이념을 가진 유권자가 새누리당의 지지층이다. 이 가운데 여전히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지역이다. 우리나라는 ‘영남은 여당, 호남은 야당’이라는 지역 분열 현상이 아직도 극심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삼국시대에 그 기원을 둔다는 이론도 있고 권위주의 시대의 지역 불균형적 산업화에 기인한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박상훈 대표는 공동 저서인 <어떤 민주주의인가>에서 이에 대해 “민주화 이행기에 만들어진 정치적 대표 체제(정당)의 여러 제약 조건 때문에 생겨난 정치적인 문제”라고 봤다. 편향된 지역 구도가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에 생긴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민주화 이전인 제12대 총선(1985년)에는 여당인 민정당이 경북·경남·전라 등의 지역에서 40~50%의 비슷한 의석 점유율을 보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지역별로 서로 다른 정당들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정당이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제13대 총선(1988년)에서 민정당의 경북 지역 의석 점유율은 86.2%, 통일민주당(김영삼계)의 경남 지역 의석 점유율은 62.2%, 평화민주당(김대중계)의 전라도 지역 의석 점유율은 97.9%로 나타났다. 이후 민정당과 통일민주당이 민자당으로 합당하면서 경북·경남은 모두 보수당인 민자당이 높은 의석 점유율을 차지하게 됐고 이런 구도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이념 지형이 과거에는 진보 30, 중도 40, 보수 30이었다면 최근에는 진보 25, 중도 35, 보수 40으로 변화했다. 진보를 상징했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를 이어나갈 인물이 없다는 점과 통합진보당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선거 때마다 지역 구도로 특징지어지는 표의 지리적 분절성이 나타나는 것은 지역주의와 같이 ‘문화적 균열’이나 ‘지역 간 대립’ 때문이 아니라, 지역을 가로지르는 정책적 요구가 정치적으로 표출되고 집약될 수 있는 투표 결정 상황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한 지역 안의 유권자는 계층과 이념에 따른 ‘정치적 선호’를 각각 가지고 있지만, 현재의 한국 정당이 이런 계층과 이념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권자가 각자의 선호도에 따른 정당을 선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지역 정당에 투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 정당이 지역을 대표하는 대신 계층과 이념을 대표하면서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구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호남보다 인구가 더 많은 영남은 대표 정당인 새누리당에 더 많은 표가 쏠리게 되는 결과가 반복된다는 얘기다. 386세대가 보여주는 ‘연령효과’ 새누리당 지지층은 지역적으로는 영남이라면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이다. ‘세대별 특성’은 2002년 대선을 기점으로 한국 유권자의 투표 현상을 설명하는 결정적 요소로 떠올랐다. 특히 2012년 대선에서는 50대 이상의 보수화 현상과 이들의 응집력이 더욱 강화됐다.
2007년 12월19일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2년 4월11일 총선에서 승리한 뒤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여의도 당사 종합상황실에 웃으며 입장하고 있다(오른쪽).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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