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권하는 한국 기업에 상처받아” 일본 골프지존 안선주 스토리<1>
일본에서 한국인 최초로 상금왕에 올랐던 안선주. 2010년 일본여자골프에 진출, 지금까지 16승을 거뒀다.(사진=KLPGA 제공) |
LPGA US오픈에서 미셀 위가 우승하고, 한국에선 김효주가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거머쥐며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일본에서 활약 중인 안선주(27)의 우승은 단신으로 처리되는 게 현실이다. 안선주가 6월 15일, 일본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산토리 레이디스오픈에서 우승, 올 시즌 3승을 달성했지만, 대부분의 미디어에선 짤막한 뉴스로만 보도되었을 뿐, 어디에서도 그의 우승은 조명받지 못했다.
안선주는 지난 2010년 미국 LPGA 대신 일본으로 건너가 첫 해부터 상금왕, 신인왕, 다승왕, 최저타수상 등 4관왕에 올랐고, 2011년에도 연속 상금왕을 차지하며 일본 여자골프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 투어에서 한국인이 상금왕에 오른 건 안선주가 최초이고, 외국인이 상금왕을 차지한 것도 1991년 대만 선수에 이어 19년 만의 일이었다. 안선주는 이듬해에도 4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해마다 우승을 차지하며 승수를 올린 안선주는 지난 15일 산토리 레이디스오픈 우승을 포함해 일본에서만 모두 16승을 거두는 쾌거를 이뤘다. 상금이 5억엔을 돌파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이도 JLPGA 사상 최단 기간에 이룬 5억엔 돌파였다.
안선주가 한국을 떠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그를 가장 힘들고 아프게 했던 부분이 외모 비하였다. 국내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고, 어느 기업에선 ‘성형수술을 받으면 생각해 보겠다’란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일본으로 건너간 안선주는 독기를 품고 골프 연습에 매진, 첫 해부터 일본 골프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현재 안선주를 후원하는 스폰서는 5개 기업. 그런데 모두 일본 회사들이다. 적어도 일본에선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았고, 일본 골프계의 톱 플레이어에게 후원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회사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한다.
안선주에 대한 기사는 두 차례로 나눠 게재한다. 1편은 골퍼 안선주를 만든 아버지 안병길 씨(57)와의 인터뷰이고, 2편은 안선주 인터뷰이다.
테니스 선수에서 골프로 전향
“처음 골프채를 잡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고, 정식으로 골프를 배우게 한 건 중1 때부터였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보니 골프를 시키는 건 부담이 컸지만 골프를 하고 싶어 하는 딸아이의 의욕을 꺾기가 어려웠다.”
안선주는 골프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테니스 선수였다. 그러나 발이 느리다보니 테크닉 싸움에서 번번이 패하게 됐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테니스를 접게 되었다고 한다.
“집이 있는 경기도 광주에는 골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재미삼아 친구들과 골프장을 들락거렸는데, 그때 선주가 날 따라갔다가 골프를 처음 접하게 됐고, 자신도 한번 쳐보겠다고 하기에 내가 쓰던 골프채를 쥐어 줬더니 그립 잡는 법도 모른 채 그냥 휘둘렀다. 그런 선주를 본 친구들이 선주의 운동 감각이 남다르다며 골프를 시켜보라고 권유하더라. 이미 테니스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선주가 다시 운동하는 건 반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 레슨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6학년을 보냈다.”
당시 안선주의 골프 스승은 연습장 일반 회원들이었다고 한다. 안선주의 스윙과 비거리를 보면서 재목감으로 판단한 회원들은 서로 안선주의 골프 선생을 자처하며 그립 잡는 법부터 스윙하는 폼 교정까지 친절하게 레슨을 시켜줬다는 것.
“일반 회원들의 레슨을 받고 선주의 폼이 달라졌고, 공 맞히는 타점과 임팩트가 아주 정확해졌다. 중 1때 골프아카데미의 한 코치가 찾아와선 선주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더라. 난 형편이 어려워서 뒷바라지할 능력이 없다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주가 골프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딸이 간절히 하고 싶다고 애원하니까 더 이상 반대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코치에게 보냈는데, 그가 바로 정태호 프로였다.”
'골프대디'로 힘든 인생을 살아왔던 안선주 아버지 안병길 씨. 그는 자신의 딸이 골프가 아닌 여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사진=이영미) |
골프 배운 지 10개월 만에 첫 우승
안선주는 정태호 프로 밑에서 배우는 다른 골프 지망생들과 함께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런데 태국으로 떠난 지 얼마 안 돼 안선주의 아버지 안병길 씨는 정태호 프로의 전화를 받게 된다. 안선주의 골프 타수가 70대에 접어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정 프로의 전화를 받고 불 같이 화를 냈다. 골프 배운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70대에 접어 들었다고 거짓말을 하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골프가 그렇게 쉬운 종목이냐면서. 정 프로는 한국 들어가면 직접 확인해 보시라고 하더라. 태국에서 2개월을 훈련하고 집으로 온 선주가 이듬해 3월에 있는 잡지사 주최 골프대회에 참가를 하겠다고 해서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런데 시합 날짜가 다가오니까 선주가 갑자기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겁이 난다고 했다. 골프 칠 자신이 없다는 얘기도 하면서. 황당했지만, 선주에게 신청서를 접수했으니, 그만두더라도 이번 대회에만 참가해보고 그만두라고 설득했다.”
골프를 시작한지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에는 박인비, 박희영, 최나연 등이 모두 출전을 했고, 안선주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대회에서 79타를 치며 정태호 프로가 말한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였다. 생애 첫 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둔 안선주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골프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취소하고 계속 연습을 거듭했고, 그 해 8월 세종배총장대회에 참가했다가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다. 중학교 2학년인 학생이 골프를 정식으로 배운지 10개월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고, 다음 대회에선 처음으로 언더파를 기록하기도 했다.
“선주가 성적을 내는 걸 보면서 온전히 기뻐할 수 없었다. 계속 돈이 들어가는 탓에 레슨도, 연습도 제대로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주는 시합 날이 잡히면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당일 대회장에 도착, 바로 출전을 했다. 다른 선수들은 2,3주 전부터 대회장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계속 그 코스에서 연습을 하며 기량을 점검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우린 시합 당일에 현장에 도착, 연습 라운딩 없이 바로 대회에 나간 것이다.”
2부투어 상금왕 획득 후 프로 진출
2004년인 고2 때, 안선주는 하이트컵 여자오픈에서 아마추어 신분으로 연장까지 갔다가 준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우승자는 동갑내기 박희영. 그런데 박희영은 그 대회 우승으로 인해 곧장 KLPGA 정규투어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우린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가 되려면 시드전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대회 우승으로 곧장 프로에 갈 수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무지함 때문에 선주가 고생 많이 했다. 결국 선주는 2부 투어를 뛰었고, 5개 대회 밖에 없는 2부 투어에서 1,2,3,차전을 모두 우승했다. 4,5차전은 몸에 혹이 생기는 바람에 그걸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들락날락하다 컨디션이 엉망이 됐지만 결국엔 경기에 출전, 상금왕까지 오른 후 곧장 병원에 입원, 다음날 바로 수술을 감행했다.”
미LPGA 퀄리파잉스쿨 예선서 우승, 그러나…
프로 입문 후 7승을 거머쥔 안선주는 신지애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비슷한 외모로 인해 신지애와 안선주를 헷갈리는 골프 팬들이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는 골프게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신지애가 LPGA에 진출했을 때 안선주도 신지애의 뒤를 이어 미LPGA의 문을 두드렸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LPGA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던 것. 안선주는 최종라운드에서 단 한 번의 역전도 허용하지 않으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고, 당시 같이 퀄리파잉스쿨에 나선 미셀 위는 공동 4위의 성적으로 안선주와 함께 본선 진출 자격을 획득했다.
“예선전을 1위로 통과하고 기분 좋게 본선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가 선주의 고질적인 다리 부상이 재발되는 바람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다보니 연습은 물론 일상 생활도 힘든 지경이었다.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주에게 선택하라고 했는데, 선주는 방에 들어가 2시간가량 고민하더니 쿨하게 포기를 하더라. 당시 LPGA 사무국에선 우리가 파이널 대회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난리가 났었다. 자신들이 도울 테니 시합에는 꼭 나와 달라며 간청을 거듭했다. 그러나 선주는 시합에 나갈 몸 상태가 아니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했다. 예선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LPGA에서도 선주가 시드 받을 것을 당연시했고, 이듬해부터 LPGA에서 투어 생활을 할 것으로 믿었는데, 부상으로 마지막 남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돌아오는 상황이 참담했던 것이다.”
LPGA 사무국과는 2009년 재도전하겠다고 정리했지만, 막상 다시 도전하려다보니 덜컥 겁이 났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국과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게 안선주와 그의 아버지한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은 비행기 타면 한두 시간 만에 올 수 있고, 생활 문화도 한국과 비슷한 터라 선주가 투어하는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선주가 좋아했다. 아마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혼자 생활하게 된 걸 더 기뻐했을 것이다. 선주가 일본으로 떠난 이후부터 난 투어에 동행하지 않았다. 선주가 홀로서기하는 걸 지켜보고 싶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 없이 혼자 지내니까 연습을 게을리 하던 선주가 독기 품고 연습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내 대회에선 매번 쇼트 게임에 단점을 보였던 애가 일본 투어에선 샌드 세이브 1위에 오를 정도로 쇼트 게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다.”
성형수술을 하면 스폰서가 돼주겠다고? 안선주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비하하는 국내 기업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다.(사진=KLPGA 제공) |
외모로 인해 문전박대 당했던 스폰서 구하기
KLPGA에 데뷔한 안선주의 스폰서는 하이마트였다. 당시 신인 선수치고 최고 금액인 5000만 원을 후원받았고, 그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에 허덕거렸던 안선주와 아버지 안 씨는 스폰서와 상금으로 조금은 여유롭게 투어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하이마트와의 계약이 끝난 이후였다. 하이마트와 재계약하지 못했던 안선주는 이후 자신을 후원해줄 새로운 기업을 찾아 나섰지만, 일본 진출 전까지 그에게 손을 내민 기업은 한 군데도 없었다.
“당시엔 그 이유를 몰랐다. 왜 선주에게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선주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모자나 옷에 스폰서 로고를 붙이고 다니는데, 선주를 지원해주겠다고 하는 기업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듣게 되었다. 선주의 외모 때문에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속이 쓰리다 못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듯 했다. 골프는 얼굴로 치는 게 아니지 않나. 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선주는 그 얘길 들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나. 성형수술을 하고 오면 생각해 보겠다는 회사도 있었다고 하더라. 선주가 일본에 가서 하지 않던 퍼팅 연습을 하고 하루 종일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했던 배경에는 한국에서 겪은 아픔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골프선수는 미스코리아들이 아니다. 실력보다 외모로 평가받는 현실은 해마다 선수들 얼굴을 변화시키게 만든다. 골프장은 패션쇼하는 장이 아니다. 팬들에게 보이는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예쁘지 않은 선수들은 골프 선수 할 자격도 없는 건가?”
모자에 로고 하나 달지 못했던 안선주는 현재 5개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2년 연속 상금왕과 신인왕에 올랐던 성적이 일본의 스폰서들을 줄 세우게 했다. 올시즌도 벌써 3승을 거뒀고, 이런 추세라면 또 다시 상금왕을 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난 내 딸이 대견스러운 게 2006년 프로 입문 후 지금까지 9년 동안 해마다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한 해도 거른 적이 없었다. 우승 한 번 차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데 선주는 슬럼프를 겪으면서도 매해 1승 이상은 거뒀다. 다른 선수들처럼 여유있게 뒷바라지도, 연습도, 레슨도 제대로 못 시켰지만, 선주는 내가 들인 공 이상의 성적으로 날 기쁘게 해줬다. 어느 날 선주가 나한테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었다. ‘아빠도 내가 성형수술을 했으면 좋겠느냐’고. 난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난 내 새끼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어디에 내놔도 안 빠지는 내 새끼이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일본에서 20승을 올리면 안선주는 한국에서 영구 시드권을 받게 된다. KLPGA에서 은퇴 전까지 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앞으로 4승이 남았다. 그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투어 생활을 마치길 바라는 게 아버지의 진심이었다. 안 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외국에서 5년 넘게 살았으면 선주도 할 만큼 한 거다. 일본의 정상급 선수들이 세운 기록들을 선주가 모두 깼다.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고, 목표도 없다. 이젠 친구들, 후배들과 함께 정도 느끼고 부대끼면서 사람답게 골프를 즐겼으면 좋겠다. 선주는 LPGA에 도전할 생각도 했지만, 내가 반대했다. 고생은 일본에서 할 만큼 했다. 빠른 시일 내에 20승을 채운 후 한국으로 돌아와 1,2년 더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했으면 좋겠다. 30세 이후부터는 골퍼가 아닌 여자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골프 대디’로 살아온 안병길 씨의 진한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다. 2편에선 외모 비하 논란을 딛고 일본여자골프계의 정상에 오른 안선주와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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