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침몰] 과연 선장만이 살인자인가
[기자의창]
사고 둘째 날, 현장에 가장 먼저 닿아야 할 사건기자로는 뒤늦게 진도항으로 내려가는 버스. 단정히 기름을 바른 머리에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앞자리에 앉아 전화를 겁니다.
"거 내 덕분에 해경에서 배도 나오고 했으면 알아서 모셔야지! 그 정도 해서 그나마 애 친구들이라도 구했으면 눈치챌 거 아니오! 고럼 고럼, 나 아니면 아직도 배 한 척 못 나갈 것을. 내 당장 차 돌리려다 상황이 절박하니까 그래도 전화하는 줄 아쇼".
사건 초기 진도항에는 사기꾼, 협잡꾼, 도둑, 폭력배가 난무했다고 합니다.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자신이 구조 전문가라거나 정부 고위층과 연이 닿았다는 식으로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며 피해 가족들을 유혹합니다.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목숨값을 내놓으라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횡행한 거죠.
답답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보면 SNS에는 온갖 음모론이 나돌았습니다. 반대로 피해 가족들이 이성을 잃고 헛소문에 휘둘려 구조대까지 죽일 셈이냐는 비난도 보입니다.
혼란스러운 진도항에 도착한 첫날, 저는 가족들이 근거 없는 헛소문에 휘둘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22일 제가 만난 실종자 어머니는 "부모들이 오보에 놀아난다는 식으로 보도해요. 정부는 정말 잘하는데 부모들이 조바심이 난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290명 넘게 갇혀있었는데 한 명도 못 구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구조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구조한다고 발표한 걸 그대로 받아서 방송에서는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고 거짓보도 했어요"고 절규했습니다.
대체 왜 가족들은 이제 아무도 믿지 못한다고 말할까요?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횡행하는 불신의 첫 단추는 사고가 일어난 상황부터 시작합니다. 승객을 지켜야 할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오히려 300여 명을 바닷속으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폐쇄된 객실에서 구명조끼를 입는 바람에 부력을 못 이겨 물 아래로 들어가지 못해 출입구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구조대원에게 유리창을 두들기던 아이들이 바닷속에 잠긴 지 벌써 9일째입니다.
둘째로는 초동대처를 맡은 해양경찰청입니다. 부실한 대응을 고스란히 담은 VTS, 신고 시각과 출동 시각을 놓고 제기되는 온갖 의혹 등 해경의 초동대응이 의심스럽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도 표류하던 생존자를 건져낸 것 외에는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가라앉는 배를 바라볼 뿐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셋째로 부끄럽지만 언론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오보는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수치스러운 낙인이 될 겁니다.
첫 선내 진입을 놓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이 벌였던 갈팡질팡 엇박자는 허탈해서 웃음이 날 지경입니다.
하지만 언론도 같이 춤을 추며 아무런 의심 없이 속보를 가장한 오보를 내보냈습니다. 양산된 언론의 거짓말에 피해 가족들만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도 부끄러웠습니다. 실제로 현장 구조작업과 동떨어졌다는 가족들의 말을 뒤로 한 채 매일 발표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의 브리핑 수치를 바쁘다는 핑계로 베껴 쓴 기억이 납니다.
거짓말에 편승해 쓴 기사를 책임자에게 확인받았다는 핑계로 도망친 적은 없나 돌아봅니다. 모든 의혹을 사실에 견주어 검증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거짓말의 컨베이어 벨트였습니다.
지금 구조본부의 무능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헤아리기도 힘든 피해규모는 물론, 내놓는 자료마다 믿을 수 없는 주먹구구 수준입니다.
그 외에도 사고가 일어난 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으로 꼽힌 이틀 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에는 매우 의심스러운 지점은 곳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사고대책본부의 태도는 악덕 배달음식점이 전화를 받으면 주문도 한 적 없는데 "벌써 출발했다"고 답하는 딱 그 수준으로 보입니다.
제발 지금이라도 잠수사 500여명씩 투입한다는 겉치레는 집어치우고 실제로 입수한 잠수사 수만 발표하기를 촉구합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이번 사고는 SNS와 인터넷의 집단지성이 얼마나 무용지물일 수 있나 보여주는 사고였습니다.
별다른 근거도 없는 의혹은 어느새 정부에 감시받는 진실로 취급받습니다. 다행히 합리적인 반박이 제기돼도 '카더라' 의혹은 리트윗이나 공유하기 등 기능으로 몇 번이고 돌림노래로 돌아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합리적인 지적도 도매금으로 음모론이 됐습니다. 이런 음모론을 퍼 나르는 분들, 실종자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다시 한 번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 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어떤 분은 세월호 선장을 '살인자'라고 부릅니다. 과연 선장만이 살인자일까요? 아직도 100여명을 바다에 묻어두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거 내 덕분에 해경에서 배도 나오고 했으면 알아서 모셔야지! 그 정도 해서 그나마 애 친구들이라도 구했으면 눈치챌 거 아니오! 고럼 고럼, 나 아니면 아직도 배 한 척 못 나갈 것을. 내 당장 차 돌리려다 상황이 절박하니까 그래도 전화하는 줄 아쇼".
사건 초기 진도항에는 사기꾼, 협잡꾼, 도둑, 폭력배가 난무했다고 합니다.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자신이 구조 전문가라거나 정부 고위층과 연이 닿았다는 식으로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며 피해 가족들을 유혹합니다.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목숨값을 내놓으라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횡행한 거죠.
답답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보면 SNS에는 온갖 음모론이 나돌았습니다. 반대로 피해 가족들이 이성을 잃고 헛소문에 휘둘려 구조대까지 죽일 셈이냐는 비난도 보입니다.
혼란스러운 진도항에 도착한 첫날, 저는 가족들이 근거 없는 헛소문에 휘둘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22일 제가 만난 실종자 어머니는 "부모들이 오보에 놀아난다는 식으로 보도해요. 정부는 정말 잘하는데 부모들이 조바심이 난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290명 넘게 갇혀있었는데 한 명도 못 구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구조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구조한다고 발표한 걸 그대로 받아서 방송에서는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고 거짓보도 했어요"고 절규했습니다.
대체 왜 가족들은 이제 아무도 믿지 못한다고 말할까요?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횡행하는 불신의 첫 단추는 사고가 일어난 상황부터 시작합니다. 승객을 지켜야 할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오히려 300여 명을 바닷속으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폐쇄된 객실에서 구명조끼를 입는 바람에 부력을 못 이겨 물 아래로 들어가지 못해 출입구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구조대원에게 유리창을 두들기던 아이들이 바닷속에 잠긴 지 벌써 9일째입니다.
둘째로는 초동대처를 맡은 해양경찰청입니다. 부실한 대응을 고스란히 담은 VTS, 신고 시각과 출동 시각을 놓고 제기되는 온갖 의혹 등 해경의 초동대응이 의심스럽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도 표류하던 생존자를 건져낸 것 외에는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가라앉는 배를 바라볼 뿐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셋째로 부끄럽지만 언론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오보는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수치스러운 낙인이 될 겁니다.
첫 선내 진입을 놓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이 벌였던 갈팡질팡 엇박자는 허탈해서 웃음이 날 지경입니다.
하지만 언론도 같이 춤을 추며 아무런 의심 없이 속보를 가장한 오보를 내보냈습니다. 양산된 언론의 거짓말에 피해 가족들만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도 부끄러웠습니다. 실제로 현장 구조작업과 동떨어졌다는 가족들의 말을 뒤로 한 채 매일 발표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의 브리핑 수치를 바쁘다는 핑계로 베껴 쓴 기억이 납니다.
거짓말에 편승해 쓴 기사를 책임자에게 확인받았다는 핑계로 도망친 적은 없나 돌아봅니다. 모든 의혹을 사실에 견주어 검증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거짓말의 컨베이어 벨트였습니다.
지금 구조본부의 무능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헤아리기도 힘든 피해규모는 물론, 내놓는 자료마다 믿을 수 없는 주먹구구 수준입니다.
그 외에도 사고가 일어난 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으로 꼽힌 이틀 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에는 매우 의심스러운 지점은 곳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사고대책본부의 태도는 악덕 배달음식점이 전화를 받으면 주문도 한 적 없는데 "벌써 출발했다"고 답하는 딱 그 수준으로 보입니다.
제발 지금이라도 잠수사 500여명씩 투입한다는 겉치레는 집어치우고 실제로 입수한 잠수사 수만 발표하기를 촉구합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이번 사고는 SNS와 인터넷의 집단지성이 얼마나 무용지물일 수 있나 보여주는 사고였습니다.
별다른 근거도 없는 의혹은 어느새 정부에 감시받는 진실로 취급받습니다. 다행히 합리적인 반박이 제기돼도 '카더라' 의혹은 리트윗이나 공유하기 등 기능으로 몇 번이고 돌림노래로 돌아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합리적인 지적도 도매금으로 음모론이 됐습니다. 이런 음모론을 퍼 나르는 분들, 실종자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다시 한 번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 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어떤 분은 세월호 선장을 '살인자'라고 부릅니다. 과연 선장만이 살인자일까요? 아직도 100여명을 바다에 묻어두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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