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28 16:44수정 : 2014.04.28 16:54
|
23일 오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임시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기념관을 찾은 한 시민이 영정사진을 바라보다가 자리에 주저앉아 울자 장례 도우미가 다독여주고 있다. 안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당신을 구하기 위한 권력기관의 노력만큼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아이들을 구했다면…
당신은 무오류와 신성의 여왕이 아닙니다.
진실한 인간으로 국민의 고통 앞에 서십시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55
일국의 국무총리가 용역계약직도 아닌데, 총리가 표명한 사의를 사고 수습 후에 수리하기로 했다는군요. 계약직 선장이 우왕좌왕하다가 대형 사고를 저질렀는데, 구조와 수습을 책임진 자리에 계약직이 앉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하긴 이제 실종자 가족들이 피끓는 한을 뒤로하고 하나둘 피붙이들을 떠나보내고 있으니, 정부도 누군가는 희생양 삼아 떠나보내야 했겠지요. 무책임하다는 소리가 무서우니, 사퇴 예고란 변칙을 썼을 겁니다. 그런데 누가 ‘단기 계약직 총리’ 말을 들을는지요.
그런 정부의 변칙과 무책임 속에서, 돌아오지 않는 손자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끝내 작별인사를 고했습니다. ‘그곳에선 꿈도 펼치고 행복하거라….’ 그동안 돌아와 같이 공부하자던 선후배와 친구들의 소원지 내용은 이제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두번 다시 이런 나라에 태어나지 마세요” “잘 가거라, 형이 끝까지 싸워 다시는 슬픈 일이 없도록 할게” “우리는 반드시 기억할 거야. 너희들의 비극과 너희들을 그렇게 죽게 한 이들을.” 그렇게 모두는, 도저히 보내지 못할 것 같은 그 사랑들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못난 어른, 못난 정부 때문에 꽃망울이 대궁째 뚝 잘려버린 아이들, 탐욕스런 자본, 무책임한 정부 때문에 수장된 사람들의 원망을 하나둘 놓아주고 있습니다. 30명 정원의 침실에서 마지막까지 서로를 지켜주다 스러져간 48명의 아이들, 식당 의자에 끼여 발버둥치다 숨진 사람, 구명조끼를 서로 매고 삶과 죽음을 같이하려던 학생, 손톱이 까지고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유리창을 긁다가 숨진 사람들, ‘다시는 이런, 탐욕스러울 뿐 무책임한 나라에 태어나지 말라’고 기도하며 잡았던 끈을 놓고 있습니다.
‘탑승 476, 구조 174, 사망 188, 실종 114명’(27일 밤 11시30분 현재). 오늘도 각 매체는 인명 피해 현황을 알립니다. 사고 당일 밤 집계 현황은 이랬습니다. (16일 밤 10시 현재) 승선 462명, 구조 175명, 사망 4명, 생불명 283명. 미개하게도 탑승자 숫자조차 틀린 집계였습니다. 첫날부터 바른 집계는 탑승 476, 구조 174명이었습니다. 이 숫자는 지금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16일 오전 11시20분, 배가 뒤집힌 채 침몰했고, 대한민국의 시계도 그때 정지했습니다. 이후 길고 길었던 침묵의 시간, 그리고 방관의 시간, 무책임의 시간, 면피의 시간, 교활의 시간은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것이었던지, 모든 사람의 가슴에 회한과 자책과 분노의 납덩이를 쌓아놓았습니다.
21일 오전 당신은 특별수석비서관회의란 걸 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다.” “자리 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은 우리 정부에서 반드시 퇴출시키겠다.” “법과 규정을 어기고 매뉴얼을 무시해 사고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 침몰 과정에서 의무를 위반한 사람들, 책임을 방기했거나 불법을 묵인한 사람들, 단계별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
이후 친정부 매체들의 머리기사 등 주요 기사 제목은 이랬습니다. ‘선박 부실 관리한 해수부 마피아 전방위 수사’, ‘청해진 오너 유병언 재산 2400억 추적’(22일 조간),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 6개 비리 혐의 수사’, ‘유병언 계열사 대표 대부분 구원파 신도’, ‘해수부 유병언에 20년째 항로 독점권’(23일), ‘해운조합 관료들 유착 증거 드러나’, ‘유병언 373억 들여 5600억 세모 재건’, ‘유병언 일가 집 종교시설 등 16곳 압수수색 / 계열사 2000억 특혜대출 의혹’(24일), ‘유병언 사진 1장에 5천만원…계열사가 200억대 샀다’, ‘유병언 여의도 9배 땅 보유, 유병언측 미리 하드 지우고 한국 떴다’(25일), ‘유병언 다음주 소환 조사’, ‘유병언 수천억 땅 숨기고 1900억 빚 탕감’, ‘유병언 계열사 돈 200억 넘게 챙겨’(26일), ‘유씨 일가 160억 불법 해외반출 혐의’, ‘관피아를 깨자’(28일치).
권력기관과 친정부 매체들은 희생양 만들기에 혈안이었던 것입니다. 구원파가 희생자를 빼돌리기라도 했습니까, 청해진해운 사주 가족들이 생존자를 숨겨놓기라도 했습니까. 배가 수면 위에 있을 때, 선실로 들어가 사람을 찾아 구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희생양이 될 만한 것을 수색하는 데는 전광석화였습니다. 이들 신문 1면만 보면 세월호 참사는 온전히 유병언씨 일가와 얽힌 비리의 문제였습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특별회의에서 당신이 ‘살인’ 운운한 것을 두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사고 초기 (구조자 수 집계 등) 오보와 느리고 분별력 없는 대응으로 비판받는 정부의 재해 대처에 대한 주의를 돌리기 위한 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신은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이번 사고에 대해 엄정히 수사해 국민들이 의혹을 갖고 있는 부분에 대해 한 점 의혹도 없도록 철저히 밝혀야 한다.” 솔직히 말합시다. 이번 사고가 살인이라면 두 번의 단계를 거쳐 범죄는 저질러졌습니다. 침몰의 원인 제공과 선원의 탈출, 그리고 수수방관한 구조가 그것입니다. 구조만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최악의 재앙이 최고의 미담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구조를 하지 않았다고 해야 마땅했습니다. 세계인이 경악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국민들이 의심하는 건 도대체 이 정부가 인명을 구조할 생각이 있었는가였습니다.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이를, 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면, 그에게는 어떤 죄를 줘야 하겠습니까.
사정이 이런데도, 당신을 구하기 위한 권력기관의 총체적 노력은 눈물겹기만 합니다. 당신이 선원들을 두고 살인 운운하자,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란 혐의를 꺼냈습니다. 참으로 잔꾀가 많은 검찰입니다. 법리를 떠나 그러면 이 정부와 그 책임자에게는 어떤 죄를 적용해야 할까요. 생존자가 있다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이 말 한마디 했다고 면탈되겠습니까?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 이후 각종 회의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깨알 지시’를 내린 건 당신이었습니다. 총리 이하 장관 공무원들은 그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엄단과 처벌 그리고 책임자 문책, 민형사 책임만을 입에 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되는 걸까요?
종교적 근본주의주의자들에겐 이런 신조가 있습니다. 신은 무오류이며, 그의 말씀 역시 무오류이며, 그의 사도 또한 무오류다. 종교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에도 있습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 역시 무오류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북의 권력자들은 이런 구호를 국가의 책무로 삼습니다. “당중앙을 옹위하는 총폭탄이 되자.” 지금 이곳에도 그런 총폭탄이 작동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무오류의 여신을 위한 총폭탄!
유가족이건 국민들이건,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건 진실입니다. 진정성입니다. 국민의 아픔을 공감하고, 저의 잘못과 오류를 처절하게 반성하고 고백하는 대통령의 말과 행동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무오류나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무오류와 신성의 여왕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지어낸 신성에 당신을 가둬두고 있습니다. 독일의 한 매체는 그런 당신을 두고 이런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독재자의 딸”(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22일치). 영국의 가디언은 이렇게 말했죠. “서양 국가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고도 신용과 지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는 결코 없을 것.”
자책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단원고 교감 선생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이야말로 고통의 공감과 잘못의 고백을 통해 신성에 가까이 간 분일 겁니다. 신성이란 진실한 인간성에 다름 아니니까요. 이제 진실한 인간으로 국민의 고통 앞에 서십시오. 거짓된 신성에 숨지도, 북한의 위협이란 방패 뒤에 숨지도, 미국의 우산 아래로도 피하지 마십시오. 선장에게 뱉은 침은 당신에게 떨어지겠지만, 교감 선생님의 진실을 본받으려 한다면, 그나마 국민은 위로를 받을 겁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