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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그곳, 구중궁궐 속 대통령에게 민심은 닿을 수 없었다



 

입력 : 2016.12.16 22:13:00 수정 : 2016.12.16 23:26:43
장회정·김형규 기자 longcut@kyunghyang.com
ㆍ불통의 통치자, 그림자 권력에 나라 맡기다
ㆍ1년 중 3분의 1은 일정 없이 관저에…보고는 서면으로만

2014년 12월3일 박근혜 대통령이 ‘2014 지역희망박람회’ 참관차 광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박 대통령과 수행 비서단,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단을 태운 대통령 전용기 2호기가 광주공항에 착륙했다. 내릴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좌석 차창 너머로 먼저 내린 안봉근 비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는 정윤회 문건 의혹의 핵심으로 부상한 ‘문고리 3인방’이 언론에 몸을 숨긴 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때였다. 

[커버스토리]그곳, 구중궁궐 속 대통령에게 민심은 닿을 수 없었다

기자들은 황급히 안 비서관의 모습(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송고했다. 몇 분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춘추관장이 “광주공항은 군사공항이라 사진이 나가면 안된다”는 이유로 사진을 내려달라고 요구해왔다. 기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군사공항인 성남비행장에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갈 때마다 출국하는 모습을 숱하게 찍어왔지만, 단 한번도 제재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때문이었을까. 2~3개월 후 박 대통령의 다른 지방 일정에 동행하기 위해 성남비행장을 찾은 기자들은 황당한 안내를 받았다. 평소와 달리 대통령이 탄 2호기에 동승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전용기인 5호기에 따로 타라고 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는 “전세기 한 대 더 띄우는데 드는 세금이 적지 않을 텐데, 그 후부터 기자들은 늘 다른 전용기를 타고 대통령과 별도로 이동해야 했다”면서 “안 비서관 사진 파동 이후 청와대가 대통령과 수행단으로부터 기자단을 아예 차단시키기 위해 전세기를 한 대 더 띄운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사진 플래시까지 간섭 
▶“대통령 눈부셔서 싫어하신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청와대는 사진기자들이 ‘스트로보(외장 플래시)’를 사용하는 것에도 까다롭게 굴었다. “대통령이 눈부셔서 싫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통령을 정면에서 찍을 때는 플래시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는 모습, 손녀에게 과자를 주는 모습 등 자신의 꾸밈없는 일상이 담긴 수많은 사진들을 남겼다. 그중 어린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청와대 경내를 돌던 그의 모습은 노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씨가 꼽는 최고의 사진이다. 장씨는 “손녀딸 엉덩이가 아플까봐 안장 위에는 수건까지 깔아 놓은 모습을 보고 ‘저분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박 대통령은 눈물 한 방울까지 철저히 계산된 모습만 연출했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겠다는 식이다. 최근 불이 난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통령 발에 걸릴 수 있으니 화재진압용 호스를 치워달라고 청와대 직원들이 요구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김대중의 조리장 vs 박근혜의 트레이너 
▶청와대에 샥스핀이 등장한 이유가 있다

“요즘 배춧값은 얼마요? 요즘엔 어떤 재료가 가장 비싸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관저에서 식사를 하다말고 갑자기 조리장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당시 청와대 조리실을 책임졌던 조리장의 공식 직함은 4급 행정관에 준하는 ‘운영관’이었다. 청와대 요리에 쓰이는 모든 식재료를 수산시장이나 청과물시장에서 직접 구입했던 운영관은 대통령이 장바구니 물가를 파악하는 창구와 같은 역할까지 담당했다. 

약 15년 후인 지난 8월11일. 박 대통령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이 벌인 청와대의 오찬 식탁에는 송로버섯과 샥스핀이 올랐다. 멸종위기 동물인 상어 지느러미 요리까지 등장한 청와대의 ‘무개념 초호화 오찬’.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청와대 조리실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운영관을 역임했던 문문술 서정대 호텔조리학과 교수는 “그때는 청와대 조리실에서 50인 규모의 공관 만찬과 연회까지 모두 관장했다”면서 “재벌 총수들이나 언론사 간부 초청 만찬 등도 내가 직접 메뉴를 짰다”고 말했다. 당시 외부인 초청 만찬의 1인당 식사 단가는 2만5000원으로 고정돼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도 유지됐던 운영관 체제는 ‘작은 정부’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지됐다. 조리장의 공식 직급이 4급 행정관에서 일반 공무원기능직으로 하향 조정된 것이다. 웬만한 만찬은 모두 호텔 케이터링 서비스에 맡겼다. 식재료 구입 권한도 총무비서관실 구매담당자에게로 넘어갔다. 최근 청와대에 특혜 채용된 것으로 보도된 최순실씨 조카의 처남이 근무했던 곳이 바로 총무구매팀이었다. 이 때문에 최씨 일가가 청와대의 식자재 구매 과정에서 각종 이권을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문 교수는 “청와대에 송로버섯·캐비어 같은 초호화 메뉴가 등장하고 수입규제품목인 샥스핀이 오른 것은 이를 책임지고 필터링할 수 있는 운영관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운영관 직책은 사라졌는데, 강남 유명 호텔 피트니스센터의 트레이너 출신이 3급 행정관으로 채용되는 지금의 청와대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조직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루트조차 봉쇄해버렸다. 통상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조직도와 연락처를 제공한다. 쌍방의 원활한 업무를 위한 기본 정보 제공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서는 조직도는 물론 각 부서 담당자의 내선번호조차 공유되지 않고 있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청와대가 조직도를 제공하지 않아서, 요즘은 춘추관에서 매번 내는 보도자료에 기재된 이름과 전화번호를 토대로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조직도를 그려가며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입기자뿐 아니라 지금은 같은 청와대 직원들끼리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와대 관계자는 “각 비서관실 간의 교류가 사라져서 다른 실 소속 사람들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그냥 같은 청와대 직원이려니 짐작만 할 뿐 어색하게 지나친다”면서 “인사에 직접 관여한 사람이 아니면 채용 공고가 언제 났는지, 누가 뽑혔는지도 모를 정도로 인사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탓”이라고 말했다. 

▷1년 중 3분의 1은 공식일정 ‘없음’ 
▶이명박 64일 vs 박근혜 129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전 6시쯤 일어나 간단한 운동을 하고 조간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7시30분~8시 사이 관저로 찾아온 이발사가 면도와 이발을 마치면, 수행비서가 미리 추려 온 국정원·경찰청·검찰의 국내외 동향보고서를 검토하며 아침식사를 했다. 오전 9시쯤 집무실로 출근한 후부터는 15~30분 단위로 접견, 면담, 보고, 결재, 공식 행사 참석 등 하루 일정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심지어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오전 7시부터 일찌감치 본관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얼리버드형’으로 유명했다. 

화강암 석조에 청기와를 얹은 청와대의 본관 내부. 웅장한 기둥과 샹들리에가 달린 높은 천장 아래 깔린 레드카펫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대통령 집무실이 나온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화강암 석조에 청기와를 얹은 청와대의 본관 내부. 웅장한 기둥과 샹들리에가 달린 높은 천장 아래 깔린 레드카펫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대통령 집무실이 나온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결정된 정책들에는 확 힘이 실리기 때문에, 각 부처들은 어떻게든 대통령을 서로 모시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면서 “그러다보면 대통령 일정은 아무리 엄선해도 모든 요청을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지고, 그게 국가 의사결정에 중요하게 반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평소에도 며칠씩 별다른 이유없이 아무 일정도 잡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보이는 청와대 본관에 정적이 감돌고 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참모들도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기 위해선 본관까지 두 차례 검문을 거쳐야 하지만 비선 실세 최순실씨는 ‘문고리 3인방’을 수족처럼 부리며 제집 안방 드나들 듯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보이는 청와대 본관에 정적이 감돌고 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참모들도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기 위해선 본관까지 두 차례 검문을 거쳐야 하지만 비선 실세 최순실씨는 ‘문고리 3인방’을 수족처럼 부리며 제집 안방 드나들 듯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경향신문은 청와대 사진기자단의 사진기록과 언론보도를 바탕으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2년차였던 2009년과 2014년의 공식 일정을 전수조사해봤다. 

그 결과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 휴일을 포함해 64일이었다. 주 6일 공식 일정을 소화한 셈이다. 4월엔 사흘, 10월엔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공식 일정이 있었다. 하루에도 서너개씩 일정이 있는 날이 흔했다. 그해 7월에는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호우 피해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곧바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향하기도 했다. 

[커버스토리]그곳, 구중궁궐 속 대통령에게 민심은 닿을 수 없었다

반면 박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보다 두 배나 많은 129일을 공식 일정 없이 보냈다. 1년 중 3분의 1 이상에 해당한다. 주말엔 거의 일정을 잡지 않는 주 5일 근무 원칙을 지켰고, 심지어 주 7일 중 4~5일 동안 아무 일정이 없는 때도 많았다. 추석연휴나 여름휴가 때는 미리 앞뒤로 하루 이틀씩 아무 일정도 잡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은 공식 일정 외에도 외부에 알리지 않는 비공식 일정이 많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 관저에만 머물렀다는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4년에 총 45일 동안 7번의 해외 순방을 다녀왔다. 이 전 대통령도 47일로 비슷한 기간을 해외에서 보냈지만 순방 횟수는 11번으로 더 많았다. 비행기에서 숙식을 하며 이틀, 사흘씩 실무형 출장을 많이 다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행정관 보고서에도 댓글 단 노무현 
▶비서실장도 얼굴 보기 힘든 박근혜

2001년 9월11일 오후 11시쯤. 당시 김대중 정부 청와대의 1부속실장이었던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급히 청와대로 뛰어들어갔다. 그가 관저에 도착했을 때 평상시 같으면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CNN을 틀어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역시 관저로 긴급호출된 의전비서관은 외신을 실시간 번역하며 브리핑 중이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대통령은 “당장 내일 아침 국가안보회의와 비상국무회의를 열고, 전군과 경찰은 경계태세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의 비상대기조는 다음날 회의자료를 준비하느라 밤샘 근무를 해야 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던 그때,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10시30분부터 낮 12시50분까지 관저에서 총 8번의 보고 중 7번을 서면보고로 받았다. 대면보고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14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와 “세월호 당시 대통령이 관저에 있는지, 아니면 집무실에 있는지 몰라 두 곳에 보고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전달방식은 “보고서를 들고 뛰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갔다”고 말했다. 그 이후 일어난 참사를 우린 모두 이미 알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정권핵심 실세로 꼽혔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7일 국정조사에서 “일주일에 한번도 대통령을 못 뵙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기피하는 불통형일 경우 ‘그림자 권력’의 폐해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김한정 의원은 “장관도, 수석도 대통령을 만나기 쉽지 않으니 대통령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측근의 권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림자 권력’의 출현을 막기 위한 청와대 시스템이 이미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知園)’을 직접 개발해 대부분의 서면보고를 e지원을 통해서만 받았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비서실장을 거쳐 수석, 행정관에게 차례로 하달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먼저 들을 수 있다는 게 일종의 권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e지원은 일종의 전자게시판 같은 역할을 했다. 실무 행정관이 보고서를 작성해 e지원 시스템에 업로드하면, 보고서가 비서관-수석비서관-정책실장 등 결재라인을 거쳐 대통령에게 갈 때까지의 과정이 해당 담당자들에게 모두 투명하게 공개됐다. 대통령이 보고서에 코멘트를 달면, 실무 행정관은 대통령의 피드백을 e지원 시스템에서 실장, 수석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 비서관을 했던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e지원에 올라오는 보고서를 하루 10건에서 많으면 수십건을 읽었다. 밀리면 주말 동안에라도 다 보고 직접 코멘트를 달아 피드백을 줬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던 수석비서관 회의도 정보의 독점을 막기 위해 나중엔 화상중계 시스템을 통해 말단 행정관까지 모두 지켜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162213005&code=210100#csidx7ccf54a904fec768f91aa3b2e677f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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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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