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붕괴론이 배후다. 개성공단이 닫혔으니 ‘통일대박론’이 폐기될 것이라는 의견은 틀렸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론은 처음부터 북한붕괴론이었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부정하면서 ‘결과로서의 통일’만 강조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1월1일 박 대통령은 현충원의 방명록에 ‘올해 통일을 이루겠다’고 썼다. 붕괴론이 먼저였다.
붕괴론은 남북대화와 경제협력을 부정한다. 곧 망하는데 대화와 협력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일관성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격이 맞지 않는다고 장관급 회담을 무산시키고, 비방·중상 중단을 합의해 놓고 심리전을 계속한 이유를 이제는 알겠는가? 붕괴론은 원래부터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 감이 익어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전략 말이다. 정보부서는 대통령이 좋아하는 붕괴론과 관련된 정보를 집중적으로 생산했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부각하고 마치 금방 쿠데타가 일어날 것처럼 과장했다. 그러나 감은 저절로 떨어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인내심도 바닥났다.
그래서 기다리는 전략에서 붕괴를 재촉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개성공단 중단은 급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붕괴론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남한의 붕괴론과 북한의 핵개발이 치고받으면서 결국 여기까지 왔다.
북한붕괴론은 새롭지 않다. 아주 오래전에 붕괴한 편견이다.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의 한국전쟁 휴전에 맞섰던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은 얼마나 허망했던가.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영삼 정부는 ‘빠르면 3일, 길어도 3년’이라고 했다.
김영삼 정부 시기 ‘공백의 5년’은 붕괴론의 재앙적 결과였다.
붕괴론은 언제나 무능을 덮는 가면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붕괴론이 넘쳐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드러났지만, 이명박 정부의 관료들은 미국 측 인사를 만나 ‘김정일이 사망하면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자주 얘기했다. 붕괴론이 먼저고 천안함 사건을 명분으로 한 5·24 조치가 그 다음이다. 5·24 조치와 개성공단 폐쇄는 동일한 인식, 동일한 맥락, 동일한 순서로 이루어졌다. 한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번은 더 큰 비극으로 말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개성공단 폐쇄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끝을 알고 있다. 5·24 조치 이후의 상황이 재연될 것이다. 한국은행의 ‘북한 국민소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북한 경제는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제재를 했는데 왜 북한 경제는 망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졌을까. 중국이라는 뒷문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끊으면 그만큼 북·중 경제협력이 늘어난다.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만 높였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정책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시장의 규모가 커졌고 제도화되고 있다. 여전히 평양과 지역의 격차가 있고, 가뭄으로 수력발전소의 가동이 떨어져 광물 생산이 줄었고 그래서 대외무역이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북한 경제는 확실히 달라졌다. 식량위기를 겪던 북한은 아주 오래된 과거일 뿐이다.
붕괴론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부정한다. 그러나 붕괴론의 기회비용은 크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북한의 시장화를 재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안타까운 엇갈림이다.
통일은 총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예멘을 봐라. 전쟁으로 통일을 한 예멘은 완전히 망했다. 경제가 망하고 공권력이 붕괴하고 끝이 없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힘으로 하는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공멸일 뿐이다. 독일 통일은 어떤가. 동독은 붕괴하지 않았다. 동독 인민들이 투표로 통일을 선택했다. 서독 사람들과 함께 살아도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독의 대동독 정책이 동독 주민들의 마음을 산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북한붕괴론은 정반대다. 제재의 가장 큰 피해자는 기득권층이 아니라 북한 주민이다. 개성공단의 전기를 끊으면 당연히 개성 주민들이 이용하는 정수장도 가동이 중단된다. 갑자기 직장을 잃고 식수가 중단된 개성 주민들은 남한을 어떻게 생각할까.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할 뿐이다. 붕괴론은 변화를 방해하고 얼어붙게 한다. 그러나 동결되고 퇴행하는 것은 남북관계뿐이다.
물이 바위를 피해 돌아 흐르듯이, 북한을 둘러싼 정세도 변하고 또 변한다. 붕괴론은 결국 동북아의 외교지형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만 붕괴시킬 것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북한보다 ‘북한붕괴론자’가 먼저 사라질 것이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