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측 인사들 “회의록 초안 삭제된 게 아니라 ‘목록’만 삭제된 것”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ㆍ검찰수사 반박 “초안 공개하자”

김경수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등 참여정부 측 인사들은 “회의록 초안이 삭제된 게 아니라 ‘표제부’가 삭제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도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 이들은 “국정원에 있는 최종본도 이미 공개된 이상,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초안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봉하e지원에서 삭제됐던 회의록(초안)을 복구했고, 초안이 수정본보다 ‘완성본’에 가깝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검찰은 초안 또한 대통령기록물로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야 할 문서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비서관과 안영배 노무현재단 사무처장, 박성수 변호사는 9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검찰이 회의록 사건을 조사하던 중, 결과적으로 회의록이 ‘발견’됐음에도 ‘삭제와 복구’ 등 자극적 표현을 사용해 대단한 의혹이 있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이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1) 표제 삭제 가능, 분류 통해 이관

e지원은 참여정부의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통해 모든 전자기록물을 파악했다.

특히 기록물을 자의적으로 폐기할 수 없도록 삭제 기능을 없앴다.

그런데 김 전 비서관의 설명을 보면, 전문 삭제는 안돼도 표제 삭제는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표제가 삭제되면 검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김 전 비서관은 “e지원에는 기록물뿐만 아니라 개인 일정,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의 테스트 문서 등이 있는데, 기록물로서 가치가 없는 문서를 가려냈다”고 말했다.

청와대 기록물관리시스템(RMS) 등재 전 분류는 기록물 생산부서 및 2007년 7월 청와대 비서관들로 구성된 ‘기록물 이관 및 인수인계’ 태스크포스(TF)가 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결국 생산부서 및 이관TF 분류 작업을 통과한 이관 대상 기록물만 RMS를 거쳐 외장하드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이후 외장하드에서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PAMS)에 등록된다. 김 전 비서관은 “이관 기록물 분류 과정에서 회의록 초안은 수정본과 중복되기 때문에 기록관 이관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난 2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회의록은 반드시 이관돼야 할 것이고, 이관이 안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삭제가 됐다면 문제가 더 크다”고 밝힌 바 있다. 회의록 초안도 대통령기록물이며 이관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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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구 아닌 ‘발견’이 맞는 표현

e지원은 기록물과 함께 문서의 내용과 결재 경로 등이 설명된 문서관리카드도 함께 작성해 관리했다. 문서관리카드는 표제부와 경로부, 관리속성부로 나뉜다. 표제부는 문서의 제목과 작성 취지, 작성일 등 기본적인 개요가 담겨 있다.

경로부에는 문서 작성 뒤 보고 절차와 문서 내용에 대한 의견 등이 나와 있다. 관리속성부에는 홍보관리와 기록물의 유형을 설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김 전 비서관은 “기록관 이관 대상 기록물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이관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기록물을 추려내기 위해 표제부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본래 삭제 기능이 없다는 e지원에 표제부 삭제 기능은 있는 것이다. 김 전 비서관은 “표제부만 삭제가 됐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록은 봉하e지원 목록에 보이지 않을 뿐 문서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안 사무처장은 “청와대 e지원에서 문서 파일 자체를 지우면 사본인 봉하e지원에도 남아 있을 수 없다”면서 “(검찰은 삭제된 초본을) ‘복구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발견’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말했다.


(3) 노 전 대통령 삭제 지시 안 해

김 전 비서관 등은 “노 전 대통령이 e지원에 탑재된 회의록 초본을 삭제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은 지난 1월 검찰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5일 검찰 조사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을 바꿨다.

조 전 비서관의 변호인인 박성수 전 법무비서관은 이에 “삭제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건 사실인 것 같다”면서 “검찰이 갑작스럽게 물어봐서 당황했을 것이다. 부정확한 기억에 의해 잘못 이해했고, 경솔하게 답한 것 같다고 해서 지난 5일 조사에서 바로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이 ‘책자로 보고된 초안을 남기지 말라’는 취지의 말은 했지만, e지원에 탑재된 초안을 삭제하라는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4) 최종본 이관 안된 것 함께 규명

김 전 비서관 등이 이날 공개한 관련 자료를 보면,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2007년 10월9일 노 전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고했다.

박성수 전 비서관은 “(회의록은) e지원상으로, 또 책자 형태로도 보고됐다. 노 전 대통령이 보시고는 ‘사실상 초반 녹음이 안된 부분도 있었고, 녹취도 잘 안됐을 것 아닌가. 부정확한 표현이나 오류 등을 수정·보완하라’고 안보비서실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서실에서 조 전 비서관이 정상회담에 배석했기 때문에, 나름 메모한 것도 있고, 기억도 살리고 해서, (조 전 비서관으로 하여금) 표현 오류 고치고, 대통령께서 호칭 바꾸라는 지시는 안할 걸로 아는데, 호칭 문제도 다듬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 지시로 조 전 비서관이 녹취록을 수정했고, 그랬기 때문에 초안을 기록관으로 이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 비서관 등은 ‘최종본이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돼 기록관으로 이관돼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다. 김 전 비서관 등은 “기록관에 최종본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를 추측으로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수사에 협조하기로 한 만큼 검찰이 확인한 내용을 놓고 같이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 관례 따라 ‘님’ ‘저’ 표현 수정

김 전 비서관은 “당시 초안을 봤던 사람 중 한 명”이라며 “초안과 최종본의 형태, 표지, 제목은 똑같고 조 전 비서관이 오류 등 내용을 수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상적인 관례대로 ‘저’를 ‘나’로 고치고 ‘님’이라는 표현을 일부 수정했다”고 말했다. 안 사무처장은 “노 전 대통령은 다른 정삼회담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항상 ‘저’라는 자신을 썼다고 한다”면서 “ ‘각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런 표현을 가지고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제 삼는 것은 이해가 잘 안된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관 등은 논란을 종결하기 위해 검찰이 초안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초안이 수정본보다 ‘완성본’에 더 가깝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 전 비서관 등은 수정본이 곧 최종본이라고 주장했다. 김 비서관은 “검찰이 초안을 숨겨놓고 얘기할 게 아니라 경위를 밝혀 불필요한 논쟁을 끝내기 위해 초안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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