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2 20:06수정 : 2013.09.02 21:38
|
지난 대선 때 선거개입 댓글을 작성 유포해 ‘국정원 댓글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왼쪽부터)와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 등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이 19일 오후 청문회장에 설치된 가림막 뒤에서 의원들의 심문을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공판서 “원세훈 전 원장이 지시”
“후보 거명 댓글 바람직하지 않다”
민병주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단장이 지난해 대선 다음날 국정원 직원 김하영(29)씨에게 “선거도 끝나고 이제는 흔적만 남았네요. 김하영씨 덕분에 선거 결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심리로 열린 원세훈(62)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사건 두번째 공판에 증인으로 민 전 단장이 출석했다. 그는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받아 직원들에게 정치·선거개입 인터넷 활동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유예됐다.
이날 재판에서 민 전 단장은 지난해 12월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다음날 국정원 직원 김씨에게 “경찰 공식발표 났고 이제 가닥이 잡혀가고 있으니 맘 편히 가지시길 바랍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민주당 당원 등과 이틀간 대치하는 동안 노트북에서 파일 187개를 삭제하고 이를 본부에 보고한 바 있다. 민 전 단장은 대선 다음날에도 직원 김씨에게 격려의 뜻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민 전 원장은 “저희 활동이 노출돼 문제가 됐는데, 경찰 (중간) 발표로 논란이 안 되고 대선도 잘 끝나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민 전 단장은 국정원 직원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비방한 글을 쓴 행위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해 11월23일 심리전단 직원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비판한 글을 쓴 데 대해 검찰이 “이 글을 대북활동으로 볼 수 있냐”고 묻자 민 전 단장은 “직원 개인의 정체성에서 이뤄진 것인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가, 검찰이 “이런 글이 선거에 영향을 준 사실은 인정하냐”고 캐묻자 “특정 후보를 거명했다는 건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 전 단장은 “매달 전 부서장 회의, 매일 모닝브리핑에서 피고인(원세훈)이 지시·강조한 내용을 ‘이슈’로 사이버활동을 한 것이 맞냐”는 검찰의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민 전 단장은 이날 오전 재판에서 “내가 직접 (원장님께) 서면으로 보고한 적도 있다”고 말했으나, 오후에는 “활동내용 중 특별히 보고해야 할 사안은 3차장에게 보고하고, 3차장이 원장님께 보고했다”고 말했다.
민 전 단장은 게시글·댓글·찬반클릭 등 사이버 활동은 모두 북한 및 종북세력의 국론분열·국정폄훼 공격에 대처하는 심리전단의 고유 업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리전단의 공격 대상인 ‘종북세력’의 기준에 대해 뚜렷한 답을 하지 못했다.
검찰이 “심리전단의 공작활동은 대상이 명확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민 전 단장은 “종북세력의 국정폄훼 실상을 알리는 측면이어서 구체적인 타깃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판장이 “종북의 기준이 없나”라고 묻자, 그는 “다른 데는 있는지 몰라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검찰은 “댓글 달기도 공권력 행사인데 기준이 없다면 종북 척결을 빙자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기준과 범위 없이 공작부서 임의로 이뤄질 경우 100% 선거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리전단의 천안함 관련 사이버활동 보고서엔 심리전 상대 주체로 ‘북한과 종북세력’이라고 명시돼 있으나, 4대강 사업 관련 활동보고서에는 심리전 상대 주체 부분이 삭제된 채 검찰에 제출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경미 김선식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