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 칼럼] 수잔 페테르센의 스타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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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골프는 당구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자신의 볼로 그린에서 상대의 진로를 막고 홀을 가렸다. 지금은 상대를 위해 공을 마크하고, 마크도 걸리면 치워주지만 예전에는 가로막기가 골프라는 게임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였다. 스타이미(stymie)라고 불렸고 1951년까지 매치플레이에서 존재했다.
해리 바든, 월터 헤이건과 바비 존스 등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골퍼들은 모두 이 가로막기 기술에 능했다. 매치플레이인 라이더컵과 PGA 챔피언십에서 가로막기가 승부를 갈랐다. 바비 존스가 1930년 그랜드 슬램을 할 때도 이 기술이 도움이 됐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 연장에서 존스는 홀 5cm앞에 볼을 세워 상대의 퍼트를 가로막았다. 상대는 존스의 볼을 피해서 홀인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상대의 다음 스트로크가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고 공을 집어 들게 하는 컨시드도 스타이미와 관련이 있다. 홀을 막고 있는 상대 공을 치울 수 있게 한 제도로 시작됐다. 그래서 컨시드를 받은 골퍼는 이를 거절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컨시드를 받은 것으로 알고 공을 집었는데 상대가 컨시드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희귀한 일은 아니다. 골프룰 재정집(이전 사례와 판정을 모은 책) 2-4의 3항에 이에 대한 규정도 명확히 있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질문-A와 B의 매치에서 A의 다음 스트로크가 면제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을 B가 하였다. 따라서 A는 자신의 볼을 집어 올렸는데 그 때 B가 A에게 다음 스트로크를 면제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재정하는가.’
‘답-B가 말한 것이 당연히 A의 다음 스트로크가 면제되었다는 생각이 나도록 인도한 경우 형평의 이념에 따라서(규칙 1-4) A는 볼이 있었던 장소에 될수록 가까운 곳에 그의 볼을 벌 없이 리플레이스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A는 볼 위치를 마크하지 않고 집어 올린 것에 대한 1벌타를 받게 되며(규정 20-1) 그는 볼이 있었던 장소에 될수록 가까운 곳에 그의 볼을 리플레이스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직역한 책이라 말이 좀 어렵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상대 말을 잘 못 알아들어 공을 집어든 경우, 잘 못 해석할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벌타 없이 놓고 친다. 잘 못 해석할 사유가 없다면 1벌타를 받고 놓고 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이다. 말로 해야 한다.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다음 홀로 움직이는 등의 행동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우승섭 전 KGA 경기위원장은 “상대 행동을 보고 컨시드로 판단해 공을 집었는데, 상대가 컨시드를 준 것이 아니라고 클레임을 걸면 구제할 방법이 없다. 벌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 전 위원장은 그러나 “규칙이 그렇더라도 짧은 거리 컨시드를 클레임을 건 선수는 매너에서 문제가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20일 열린 솔하임컵 포볼 17번홀에서 수잔 페테르센은 짧은 퍼트를 남긴 미국의 앨리슨 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 홀 쪽으로 걸어갔다. 앨리슨 리는 짧은 거리(45cm)인데다 상대 두 명 모두 다음 홀로 가는 걸로 파악했으므로 컨시드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공을 집었다. 앨리슨 리는 “‘it is good’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한 말인지 알지는 못했다. 갤러리 속에서 나온 얘기일 수도 있다. 앨리슨 리의 파트너인 브리타니 린시컴이 “명확하지 않으니 집으면 안 된다”고 소리를 쳤으나 이미 공을 집어 든 후였다.
드물지만 이처럼 말로 하지 않은 컨시드 논란도 나온다. 상대가 짧은 퍼트를 남기고 있을 때, 다음 홀 쪽으로 슬쩍 움직이면 컨시드를 준 것으로 알고 공을 집는 경우가 많다. 이전까지 계속 컨시드를 준 거리였다면 공을 집을 확률이 더 높다. 이 때 “컨시드를 주지 않았다”고 걸면 벌타를 받는다. “당신이 다음 홀 쪽으로 움직였으니까 혹은 고개를 끄덕였으니까”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매치플레이에서 컨시드는 명확한 의사 표현을 확인하고 해야 한다. 솔하임컵에선 앨리슨 리의 실수다.
몇 년 전 국내 여자 매치플레이에서 지금은 일본으로 진출한 유명 선수 A가 신인급 B에게 패한 후 “내가 컨시드를 주지 않았는데 C가 한 홀에서 그냥 공을 집었다”면서 경기위원을 부르려 한 일이 있다. 주위 사람이 “매치플레이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해당 홀에서만 클레임을 걸어야 하며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고 만류해 넘어갔다.
요즘에도 컨시드 안줬다, 줬다 다툼이 종종 일어난다. 지나치게 승부욕에 눈이 먼 선수는 함정을 파기도 한다.
페테르센이 경험 적은 신인 앨리슨 리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판 것일까. 아마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앨리슨 리가 구덩이에 빠지자 용서가 없었다. 곧바로 클레임을 걸었다. 그 홀 및 매치를 승리로 끝낼 수 있었다. 수잔 페테르센은 경기 후 “다시 그 상황이 오더라도 똑같이 할 것이며 후회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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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리는 경기 후 펑펑 울었다. 페테르센-앨리슨의 컨시드 사건이 미국 선수들의 힘을 내게 해 대역전승을 일궜다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 선수들이 똘똘 뭉쳐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러나 마지막 개인전에서는 똘똘 뭉쳐도 큰 효과는 없다.
이 보다는 유럽 선수들이 페테르센 때문에 약해졌다는 해석이 더 적절해 보인다. 페테르센 때문에 유럽선수들은 치사한 집단이 됐다. 앨리슨 리-린시컴과 맞서 페테르센과 한 조로 경기한 유럽팀 찰리 헐은 앨리슨 리를 보면서 미안해 울었다. 유럽 팀에서 오래 뛴 로라 데이비스는 “내가 지금 유럽 팀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페테르센의 비겁한 행동에 유럽 선수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잃었고 최선을 다해 싸울 정당성을 잃었다. 페테르센이 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리를 미국에 건네준 것이다.
2000년 스코틀랜드 로크 로몽드 골프장에서 벌어진 솔하임컵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안니카 소렌스탐이 칩샷을 집어넣었는데 상대인 미국 선수 켈리 로빈스가 “내 공이 홀에서 더 멀다. 내가 먼저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소렌스탐이 순서를 어겼다는 로빈스의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소렌스탐의 칩인은 무효가 됐다. 로빈스는 이 매치에서 이겼다. 그러나 대회에서는 유럽이 이겼다. 치사한 행동을 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면 최선을 다해서 경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에티켓과 양심을 중시하는 골프에서는 그렇다.
이번에 문제가 커지자 수잔 페테르센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경쟁의 장의 열기 속에만 있었다”면서 줄리 잉크스터와 미국 팀에 사과했다. 그는 또 “내가 우리 팀을 주눅들게 했다”고 했다.
이 사건의 당사자가 페테르센이 아니었다면 문제는 이 만큼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페테르센은 동료 선수들이 껄끄럽게 생각한다. 경기 중 상대를 주눅 들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한국 선수들은 판단한다. 다른 나라 선수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늦게나마 페테르센이 사과는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에 더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명예의 전당의 이름을 딴 ‘치욕의 전당’에 페테르센이 들어갔다는 의견도 나왔다.
페테르센의 경기 중 야유가 나올 것이고 다른 선수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골프에 스타이미라는 규칙은 없어졌지만 스타이미라는 말은 아직도 곤경, 난처한 상태라는 뜻으로 살아 있다. 페테르센은 스타이미 상태다. 자신이 45cm 퍼트 컨시드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도 컨시드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성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