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인명구조 기회 놓치고 가족들의 아픔 더 키운 정부는 2차 가해자
세월호는 가라앉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1주일간 ‘두 번째 사고’를 겪고 있었다. 사고 이후 이어진 것은 정부의 혼선, 핑계와 말 바꾸기, 미뤄지는 약속이었다. 자식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은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서 더 지독한 상처를 입는 것처럼 보였다.
사고 첫날인 16일 오후 10시쯤, 진도 체육관에서 자식 이름을 부르며 쓰러졌던 부모들이 스스로 일어났다. 수색 재개 여부와 실종자의 생존 확률, 선체 인양에 걸릴 시간 등을 물었지만 답할 책임자는 없었다. 사고 뒤 12시간이 지나도록 실종자 가족 앞에 나서 구조 상황과 계획, 전방위적 수습 방안을 설명하는 정부 관계자가 없었다. 다음날 정오, 가족대책위는 해수부와 해경, 해군 등 민·관·군을 망라하는 일원화된 대화창구를 달라고 또 요구해야 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가족들을 찾아 모든 걸 약속했지만 구조는 여전히 더뎠다. 사고 3일째 구조 현장 인근 팽목항에서 가족들은 “제발 지휘 권한이 있는 책임자를 달라”며 울었다.
사고 첫날 밤부터 가족들은 사비로 배를 빌려 구조 현장으로 떠났다. “언론에선 배 수십척, 잠수부 500명을 투입했다는데 현장에는 고속단정만 오갈 뿐 아무도 물에 안 들어갑니다. 왜 거짓말을 합니까.”
큰 기적 바라는 ‘노란 리본’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일주일째인 22일 강원도청 앞 소공원에서 춘천YMCA 청소년 동아리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을 나무에 달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란 문구가 적힌 ‘리본’ 달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 발표에 따라 언론이 ‘투입했다’고 한 잠수 인력과 배는 실제는 ‘대기 중’일 수밖에 없는 작업 조건에 처해 있었다. 언론사 카메라 여러 대가 가족들 손에 부서졌다. 기자들은 수첩과 펜을 감추고 다녔다. ‘우리 이야기를 알리자’는 가족들은 기자 대신 개인 인터넷 방송을 찾았다.
정부 관계자와 기자들은 가족들에게 자주 멱살을 잡혔고 따귀를 맞았다. 가족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던졌다. 진도는 분노로 넘치는데, TV와 신문에는 미담과 안타까운 사연이 빼곡했다.
사고 사흘째,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본 가족들은 격앙됐다. 정확한 사실을 알려 달라는데 팽목항의 해경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잘 안 터져서 현장과 연락이 안 닿는다”고 답했다.
가족의 요구와 지켜지지 않는 정부의 약속. 매일 진도에서 반복됐다. 가족들은 ‘내일’ 소리에 경기를 일으켰다. “제발 지금, 여기서 부탁 드립니다. 우리가 돈을 걷어서라도 뭐든 할게요.” 한 학생의 아버지는 “법이 없었다면 벌써 몇 사람을 죽였다”며 울었다.
바지선과 채낚기 어선, 안전로프 추가 등. 애타는 가족과 시민들이 첫날부터 내놓은 상식적인 아이디어에 정부는 ‘알겠다’ 하다가 나흘째가 되어서야 받아들였다. 닷새째 해경 관계자가 팽목항에서 “원격수중탐색장비가 새로 도입돼 구조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자지러졌다. “애들이 다 죽었는데, 왜 이제야….” 다음날 기자 브리핑에서 해경은 “해당 장비론 수색에 큰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했다.
19일 밤 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했다.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대통령이 1분 1초가 아깝다더니, 1초마다 사람이 죽어간다. 진짜 총대 맬 사람을 연결해 달라.” 정부가 인형처럼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동안 실종자 가족 입에서는 ‘아이들이 썩어간다’는 말이 나왔다.
첫날부터 가족들은 입을 모아 울부짖었다. “잘잘못을 가리는 건 나중 문제예요. 살아 있을지 모르는 가족을 꺼내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정부 관계자들의 답은 항상 비슷했다. “조류와 날씨 때문에 수색이 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싫다”, “이게 나라냐!” 진도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자책과 무력감, 국가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사고 이후, 실종자 가족들이 겪은 피해는 모두 정부가 만든 인재였다. 정부가 가해자였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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