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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3세 때 아내와 함께 귀농해 21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는 전업 농부다. 농부로 사는 일은 힘들지만 보람이 있다. 흙 만지며 사는 농부의 이야기를 연재 기사로 정리하고자 한다.
'죽지 않을 만큼만 토마토를 괴롭혀라', 처음 토마토 농사를 배울 때 선배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농사라는 건 작물에 애정을 갖고 보살피며 하는 일이 아닌가? 전업 유기농 농부로서, 20년 넘게 토마토 농사를 지으면서야 이 말의 참뜻을 이해하게 됐다.

인생 편하게 산 토마토는 맛이 없었다. 해마다 조금씩 '괴롭히기' 기술을 터득했다. 토마토 농사에 인생이 담겨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토마토에 고난을 주는 특별한 방법, 맛있는 유기농 토마토 농사법을 소개한다.

'토마토 괴롭히기', 어릴 때 극한의 고난을 준다... 중간에 '단수'도

맛있고 튼튼한 토마토를 키우려면 먼저 접목을 해야 한다. 뿌리가 튼튼한 품종의 토마토, 열매가 맛있는 토마토 품종을 인위적으로 연결해서 붙이는 작업이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어린 토마토 줄기를 싹둑 잘라 이어붙이는 작업을 하니, 토마토로서는 엄청난 봉변이다. 칼로 자르고 집게로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도 토마토에게 많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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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목을 하면 토마토가 튼튼하게 자란다. ⓒ 조계환관련사진보기

접목을 한 뒤 빛을 차단하고 습도를 유지하며 1주일 정도 잘 관리하면 토마토가 붙는다. 접목한 이후에는 나쁜 날씨나 바이러스가 찾아와도 잘 견디고 죽지 않는다. 최근 기후 위기로 극단적인 날씨가 이어지는데, 토마토를 잘 키우려면 접목을 해야 한다. 모종을 키울 수 없는 경우에는 접목묘를 구입해서 심는 게 좋다.

모종이 잘 자라고 꽃 하나 정도가 피었을 때 본 밭에 아주심기(식물이나 작물을 이전에 자라던 곳에서, 수확할 때까지 재배할 곳에 옮겨 심는 것)를 한다.

아주심기 하기 전에 토마토는 퇴비를 많이 뿌리지 않는다. 토마토가 정착할 수 있도록 극소량만 퇴비를 뿌리고, 산도 조절과 칼슘 제공을 위해 패화석(굴껍데기 분쇄한 것) 등을 뿌려준다. 퇴비를 많이 주어 거름기가 충만하면 토마토가 게을러져서 뿌리를 뻗지 않는다.

아주 심기를 한 후에는 하루 동안만 물을 넘치도록 준다. 주변이 거의 물바다가 될 정도로 흥건하게 물을 준다. 그리고 해가 쨍쨍한 날 기준으로 10일에서 15일간 물을 주지 않는다. 목이 마른 토마토는 물을 찾아 뿌리를 더 깊게 뻗기 시작한다. 토마토는 초기 정착 과정이 중요하다. 햇볕 쨍쨍한 날, 막 옮겨 심은 토마토에게 '15일 단수'는 엄청난 괴로움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을 잘 이겨내면 이제 본격적인 토마토 인생이 시작된다.

모든 기운을 열매에 집중, 무성한 잎은 잘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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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조절하며 키우면 토마토 당도가 높아진다. ⓒ 조계환관련사진보기

물을 주기 시작한 이후에는 2~3일 간격으로 조금씩만 준다. 과잉보호는 절대 금물이다. 세 번째 가지에 꽃이 필 무렵에 처음으로 웃거름을 준다. 작물 사이에 한 줌씩 유박퇴비 등을 넣어준다. 그리고 매일매일 상태를 살핀다. 잎과 줄기가 너무 길게 자란다 싶으면 다시 고난을 줘서 열매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토마토 같은 열매 작물은 줄기와 잎이 자라는 '영양생장'과 열매가 자라는 '생식생장'간의 균형을 잘 잡아줘야 한다. 잎과 줄기만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열매가 커지질 않는다. 열매 바로 밑 줄기는 광합성을 위해 놔두고, 그 밑의 줄기 끝을 조금만 자른다. 곁순은 바로바로 자른다. 토마토가 자라는 모양새를 보다가 5화 방이나 8화 방 사이에서 본순을 자르는 순 지르기를 한다. 이렇게 줄기와 순을 자르면 토마토가 열매 쪽으로 기운을 쏟는다.

일반적인 화학농 토마토 재배에서는 보통 '토마토톤'이라는 호르몬제로 수정을 한다. 같은 시기에 일제히 수정이 되어야 토마토가 균일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제는 건강과 환경에 좋지 않다. 유기농에서는 자연적으로 수정벌이 오게 하거나, 수정벌을 구입해서 밭에 넣어준다. 비닐하우스 같은 경우에는 방충망으로 측창을 모두 막고 수정벌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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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는 수정벌들 ⓒ 조계환관련사진보기

우리 농장에서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날아오는 수정벌로 충분했으나, 작년부터는 수정이 제 때 안 돼서 수정벌을 구입했다.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보통 한통에 100마리 정도의 수정벌이 담겨 오는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열심히 일하는 수정벌은 10마리도 안 된다. 나머지 90마리 이상은 그냥 집에 편히 앉아서 일하는 벌이 가져다주는 꽃가루를 먹고사는 것 같다.

방충망은 수정벌을 지킬 뿐 아니라 해충인 나방이 들어오는 것도 막아준다. 토마토 병충해는 나방유충 피해와 잎곰팡이, 청고병(잎과 줄기가 마르며 죽어가는 병) 등이 있는데 유기농에서는 방충망으로 비닐하우스를 막아서 나방유충 피해를 막고, 난황유(계란 노른자와 식용유, 물을 섞은 유기농자재)를 뿌려줘서 잎곰팡이병을 예방한다. 청고병은 접목을 하면 오지 않는다.

이밖에 유기농 방제에서는 미생물, 제충국 같은 식물추출물, 유황 등을 활용한다. 병충해가 오기 전에 미리 방제를 해야 하는데, 유기농 자재는 화학농약에 비해 3배 정도 비싸고, 3배 정도 효과가 덜하다.

수확 전에 물을 조금만 주고 바닷물을 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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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사람 키를 훌쩍 넘어 크게 자란다. ⓒ 조계환관련사진보기

토마토가 어느 정도 크기 시작하면 2~3일 주기로 물을 주던 것을 3~5일 간격으로 조절한다. 물을 많이 주면 토마토 당도가 떨어진다. 너무 적게 주면 크기가 작아진다. 그 사이 균형점을 찾는 것이 기술이다. 계속 토마토 상태를 관찰하면서 물을 최소한으로만 준다. 물론 물을 너무 오래 끊고 계속 괴롭히면 토마토가 아예 죽어버린다. 항상 토마토 상태를 살피며 물 조절을 해야 한다.

물은 해뜨기 전에 주는 게 제일 좋다. 물을 줄 때 유기농 액비(물에 유박퇴비, 토착미생물 등을 풀어서 발효시킨 것)를 타서 주는 것도 좋다. 특히 아주 더운 여름이라면 물을 조금씩 주면서도 물속에 영양성분을 넣어 주면 토마토가 잘 자란다. 대부분의 작물들이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좋지 않다. 고추도 물을 조금씩 주면서 줄기와 줄기 사이의 간격을 짧고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수확 2주 전부터는 바닷물을 30배까지 희석해서 잎에 뿌려준다. 바닷물 안에 들어있는 미네랄과 좋은 영양성분을 흡수하면 맛있는 토마토가 완성된다. 시중에 시판하는 토마토들을 보통 파랗고 단단할 때 수확해서 출하한 뒤 유통 과정에서 익히지만, 유기농 직거래 토마토 농가들은 대부분 90% 이상 빨갛게 익었을 때 수확한다. 완전히 완숙된 토마토가 맛도 좋고 영양성분도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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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이상 완숙된 상태에서 토마토를 수확해야 맛과 영양이 좋다. ⓒ 조계환관련사진보기

이밖에 온도 차이를 활용하는 괴롭히기 방법도 있다. 오후 4시 정도에 비닐하우스 측창을 닫아서 온도를 확 올리고 새벽에 일찍 측창을 열어 일교차를 크게 벌인다. 온도차가 큰 고랭지의 경우 자동으로 이 방법이 적용된다. 역시 너무 극단적으로 온도차를 크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 장마가 계속되거나 해가 안 떠서 일조량이 부족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당도를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다.

이처럼 고난을 이기고 자란 유기농 토마토는 맛도 좋고 저장도 오래된다. 화학비료를 물에 타서 키우는 수경재배, 화학비료를 뿌리에 직접 주는 양액재배 등으로 자란 토마토는 쉬운 인생을 살아온 탓에 밍밍한 맛이 난다. 영양적으로도 유기농 토마토가 항산화성분, 비타민, 미네랄이 훨씬 더 풍부하다고 한다.

때때로 오는 고난, 결국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21년 전 귀농 첫해에 토마토를 직거래로 팔았다. 책이나 인터넷에 나오는 농사법은 너무 어렵기만 하고, 대부분 현실과도 맞지 않았다. 현실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외국 농사법을 번역한 느낌이었다. 진짜 농사법을 찾아다녔다. 토마토 농사 잘한다는 사람들은 다 찾아다니며 비법을 배우려 했으나 보통은 잘 알려주지 않았다. 가서 일을 도와드리고 친분 관계가 생기면서 조금씩 비법을 배울 수 있었다.

첫해에는 사실 실수 연발이고 물도 거의 제 때 못 줬는데, 그래서인지 첫 해 토마토가 제일 맛있었다고 하는 고객들이 많다. 농사 기술이 늘어가면서 토마토 수확량은 많아졌지만, 첫해만큼 맛을 내지는 못한다. 해마다 크게 키우면서도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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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새초록으로 변해가는 농장 풍경이 아름답다. ⓒ 조계환관련사진보기

토마토 농사를 지으며 물을 조절하고 잎과 줄기를 잘라주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시골 산다는 얘기를 하면 듣는 대부분은 다들 시골에선 마음 편하게 살 거라고 생각하는데, 시골에는 시골 나름의 어려움이 많다.

태풍으로 비닐하우스가 다 날아가버리기도 하고, 이웃이 매일같이 쓰레기를 태우는 통에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건 토마토 농사처럼 행복한 삶을 위해 찾아오는 고난이다, 결국은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하며 이겨냈던 것 같다. 최근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것도, 한국이 여러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또 밭을 만들고 새로운 토마토를 심으려고 한다. 올해는 얼마나 또 토마토 농사가 재미있을까, 얼마나 맛있는 토마토로 키워낼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벌써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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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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