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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대통령을 닭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한 진짜 이유는?

등록 : 2014.10.06 14:18수정 : 2014.10.06 14:36

 

방송인 김제동

방송인 김제동씨가 3일 진도 팽목항에서 열린 ‘팽목항, 그 간절함에 함께하는 문화제’에서 “일부 사람들이 대통령을 닭에 비유하지만 (나는) 그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발언은 언론에서 별로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만 보고 그냥 넘어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전후맥락을 따져 다시 살펴보면, 이전과 다른 말을 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하고, 세월호 유가족이 박 대통령에게 느끼는 아쉬움과 원망을 대신 표현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문화제에서 김제동씨가 한 발언입니다.

▶ 관련 동영상 바로 보기 : [여기는 팽목항] 김제동이 남긴 감동 메세지

 

“패륜적인 사람들은 대통령님을 닭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 역시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닭은 매일 아침마다 웁니다. 근데 어제하고 달라서 우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아침이 되면 우는 겁니다. 어제 울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감히 그따위 닭을 대통령님에게 비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왜냐하면 대통령님은 지금도 그런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고 또 누구보다도 유가족의 손을 잡고 그리고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야 하며 진상규명뿐만 아니라 검경 모두를 동원하고 특별법을 만들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의 뜻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대통령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렇습니다.

‘패륜적인 사람들은 대통령님을 닭에 비유한다→닭은 어제 울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해 아침마다 울기 때문이다→그따위 닭을 대통령님에게 비유해서는 안 된다→대통령은 검경 모두를 동원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을 한다고 약속했고, 무엇보다 유가족의 뜻이 반영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처럼 받아들인다면, 진보적인 사람은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왔던 제동씨가 요즘 힘들어 변절한 건가?”라고 실망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보수적인 사람은 “종북좌파로 알았던 김제동이 이제야 정신이 들었구나”라고 반길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다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김제동씨의 말은 ‘아이러니’(irony)입니다. 겉으로 표현한 내용과 속마음에 있는 내용을 서로 다르게 말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반어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슬프다’는 그저 그런 표현입니다. 하지만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슬픔 이상의 감정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러니는 ‘숨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유로니아’(euronia)에서 유래한 말로 ‘반어(反語)’란 뜻입니다. 그리스 희극에 나오는 인물 ‘에이론(eiron)’은 약하지만 무지(無知)를 가장해 어리석은 허풍장이 ‘알라존(alazon)’에게 승리하는 데서 그 의미가 나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반어를 이용해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이 드러나도록 해 상대방의 무지를 폭로하는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그의 철학 저서 <대화편>에서 이를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김제동씨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요? 아마 이럴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을 닭에 비유한다→나도 안다→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닭이 어제 울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해 아침마다 울 듯’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안다. 하지만 권력에 찍힌 내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 그래서 ‘닭을 대통령님에게 비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한 거다→나는 대통령이 진상규명에 나서고 유가족의 뜻을 반영한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아쉽고 답답하다.→나는 유가족들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돌려서 얘기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신이 김제동씨의 속마음을 어떻게 아냐고 제게 따지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처음에 소개해드린 동영상을 보신다면 틀림없이 저의 해석에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동영상에서 김제동씨는 슬퍼서, 안타까워서, 아쉬워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청운동 동사무소에서 유가족들과 같이 한 그의 토크콘서트를 봤는데, 느낌이 이번과 같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에둘러 말한 게 슬픕니다. 코미디는 단도직입적이야 재미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블랙코미디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습니다(물론 강한 비애감(Pathos)을 주기는 하지만요). 그가 그렇게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픈 것이지요.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 했던’ 홍길동이 떠올랐습니다. 복잡한 생각에서 떨쳐 버리기 위해 TV를 켰습니다. 개그콘서트에는 ‘닭치高’가 나왔습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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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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