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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가 장그래 아니면 개... 한국은 비정상 사회"
김병기 기자 쪽지보내기 15.01.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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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 남소연
[프롤로그] 7평 '밀실'에 들어가다
"저 앞에서 좌측으로 가면 됩니다."
"여긴 공사를 하고 있어서요. 저쪽 우측 샛길로 가야 합니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 게다가 공부까지 잘하는 그는 친절하기도 했다. 교수식당에서 나와 10여 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세심하게 길 안내까지 했다.
"아, 사진기자가 오신 댔죠?"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복도에 설치된 투명 가림막 잠금장치를 열어놓고 자기 방으로 안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7평 밀실. 책상에서 한 발짝 떼면 붉은 천으로 둘러싼 접이용 침대에 누울 수 있다. 천장까지 맞닿은 책장은 빼곡했다. 그가 앉은 자리에서 우측에 꽂힌 책은 표지만 봐도 숨이 막히는 형법 관련 서적. 딱딱한 한문 제목이 붙어있다.
건너편 좌측에는 철학, 역사, 소설,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책들이 있다. 시집만 해도 100여 권. 이렇듯 그의 좌뇌와 우뇌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책장 사이에 네 명이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일요일만 빼고 거의 매일 8시간씩 그가 자신을 구속한 곳은 서울대 법대 17동 504호다.
"여긴 밀실이다. 성곽이다.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방해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밀실이자, 나의 성채다. 학자에게는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길고 깊게 생각하려면 단절이 필요하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일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가 입은 청바지처럼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으로 날카로운 발언을 거침없이 날리던 '영남 좌파' '강남 좌파'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지난 6일 오후, 책으로 둘러싸인 그의 성채에 들어가서 2015년 을미년, 첫 번째 '아만남'(아름다운 만남)을 시작했다. 그의 '감옥'에 갇혀 두 시간 남짓 나눈 대화를 재구성했다.
[나의 시] 말랑말랑한 힘
그의 글에는 직선과 곡선이 교차한다. 우선 형법이라는 그의 전공은 강하고 딱딱하다. 또 보수 우파들이 연출하는 공안 반동의 정치 그리고 정글자본주의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그의 글은 서슬이 퍼렇다.
직설로 끝날 때도 있지만 그 속에 영화와 소설, 노래 등을 버무린 글도 눈에 띈다. 그 이질적 요소 중에 유독 시가 많다. 이성적이고 절제돼야 하는 형법과 감성적이고 풍부한 시어, 얼핏 보면 궁합이 맞지 않지만 그의 글 속에서는 자연스레 녹았다. 그 배경이 궁금했다.
"형법학 책을 보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시를 본다."
- ▲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 남소연
어떤 시인을 좋아하나? 어떤 시가 좋나? 기자의 상투적인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긴 다리로 책장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가서 시집을 몇 권 꺼냈다. 한 시집을 펼쳐서 표지 뒷면에 적힌 시인의 친필 사인을 보여줬는데,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함민복 시인이 직접 줬다는 시집이다.
"함 시인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좋아한다. 우락부락한 망치나 쇠보다 말랑말랑한 힘이 더 세다. 도종환 시인의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도 좋아하는데 내 나이로 볼 때 나는 (오후) 3시쯤 와 있다. 정호승 시인의 <밥값>도 좋다. 대선이 끝난 뒤 광화문에 섰던 내게 많은 위로를 줬다. 그리고 안도현 시인도…."
- 아, 이제 그만 하시고(웃음)…. 직접 시를 쓰기도 하나?
"내가 어찌 감히…."
- 동영상을 찍어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니, 애송시를 한번 낭송해 달라.
"(손을 가로로 내저으며) 아이고…."
'좌파 교수'의 시낭송을 듣는 데 실패했지만, 그가 좋아하는 장석남 시인의 <수묵정원9-번짐>이란 짧은 시를 인용한다.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번짐'은 곡선이다. 그가 추구하는 공감과 연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조국 교수는 때로는 강철같이 강한 쇠를 말랑말랑하게 녹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나갈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
[나의 드라마] <미생>의 공감대... 정글자본주의에서의 '인간선언'
- 혹시, 드라마 <미생>을 봤나?
"봤다. 웹툰은 처음부터 봤다."
- 무엇에 끌렸나?
"회사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가 미생이다. 회사원이든 아니든, 지역에 관계없이 우리 사회 다수가 '장그래 상태'다. 장그래가 아니어도 가족 중에 한 명은 장그래다. 그런데 우리 세대의 당연한 경로는 대학을 졸업하면 정규직 취업하고 돈을 벌어 대출을 끼고 집 사고 결혼하는 것이다. 내 고향 친구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없이 부산에서 집 사고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
지금은 비정상 사회다.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이런 사회 공식이 깨졌는데 아직도 우리는 그런 문화와 법의 지배를 받고 살고 있다. '나라가 거덜 난다'는 공포 속에 만들어진 국가의 친기업·반노동 정책이 유지된다. 기업 사내 보유금이 넘쳐흘러도 많은 사람들이 장그래로 살아야 한다.
미생은 한 회사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사회의 비정함, 정글 자본주의가 투영돼 있다. 그 속에서 비정함을 넘을 수 있는 씨앗도 보여줬다. 오 차장과 함께 힘들어하면서 연대하려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은 '나는 개가 아니다'라고 인간선언을 했다. 우리 모두가 회사에서 개처럼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를 돌아봐야 한다. 장그래뿐만 아니라 재벌회사의 정규직인 박창진 사무장까지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장그래처럼 잘리거나, 정규직으로 개처럼 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공동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함께 맞서야 한다."
그는 7평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정글 자본주의를 깨려는 몸부림에 공감하면서 그들과의 연대를 꿈꾸고 있다.
[나의 책] 양날의 칼 '형법'... 그 절제와 개입
- ▲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10만인클럽' 회원 가입서를 받아 든 조국 교수는 해맑게 웃었다. ⓒ 남소연
시를 읽고 드라마도 본다는 그가 마냥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7평의 방 안에 가둔 것에서도 문인의 원칙주의적인 완고함과 무인의 절도가 묻어났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절제의 형법학>을 펴냈다. 사형제, 국가보안법, 군인간 합의동성애, 존속살해죄, 간통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다뤘다. '수구 인사'들로부터 '종북 좌빨'이라고 몰매를 맞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에 학자적 발언에도 용기가 필요한 영역이다.
- 반응도 뜨겁나?
"(<절제의 형법학>은) 대중서가 아닌 법학서다. 그럼에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법률가 집단에서 많이 회자된다. 한 판사는 법원 통신망에 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고 한다.(웃음) 대중도 볼 수 있는데 주 독자층은 법률가다.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봐서 형법 과잉상태를 바꿨으면 한다."
-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형법 과잉상태에 빠졌나?
"권위주의 정권 때부터다. 시민들의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를 형법으로 제약했다. 민주화가 된 뒤에도 그대로다. OECD 국가에서는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 게 범죄 목록에 들어갔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도 그렇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은 6-4 또는 7-3으로 헌재 결정에 찬성했는데, 8-1로 해산이 결정됐다.
재판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관용의 정신을 압도했다. 즉 '저 사람의 사상이 싫다'는 판단이 헌재 결정으로 이어졌다. 다수파가 소수파를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형법 등을 동원해 처벌하고 억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한다. 정치적 보수주의와 도덕적 보수주의가 결합해 형벌권을 남용하고 있다."
- 600여 쪽의 두꺼운 책을 내면서 이 사회에 쏘아올리고 싶었던 화두는?
"범죄는 엄벌해야 한다는 중벌주의, 엄벌주의가 만연돼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범죄라고 규정돼 있는 행위의 실질을 봐야 한다. 범죄가 아니어야 마땅한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많다. 간통이나 군인간 합의동성애 같은 시민의 사생활, 교사의 정치활동 등 표현의 자유 등은 범죄로 규정되면 안 된다. 범죄가 아니어야 할 행위가 범죄로 규정돼 시민의 자유와 행복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 <개입의 형법학> 집필에 들어갔는데, 어떤 내용을 담나?
"(한국은) 경제범을 너무 가볍게 처벌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형량이 가볍고 가석방을 통해 쉽게 풀려난다. 또 외국의 경우 살인죄, 강도죄, 강간죄 등 중범죄의 공소시효는 매우 긴데, 우리는 반밖에 안 된다.
공소시효를 만들 당시 평균 수명이 짧았다. 지금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엄청 늘어났는데 형량은 그대로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런 영역에 관심이 없다. 한편 재벌은 3~4세 후계체계를 구축하는데, 내부 비리와 범죄가 저질러졌을 때에는 통제 방안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각종 부당이득이 많은 데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 경제범도 그렇지만, 최근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조사 결과는 '박근혜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고서 작성자의 자작극'이라고 밝혔는데, 이런 내용도 <개입의 형법학>에서 다룰만한 주제인가?
"그렇다. 사실 정윤회 문건은 특검이 수사해야 한다. 명백하게 상호이해가 충돌하기에 상설특검법의 취지에도 맞다. 검찰 총장의 임명권자가 대통령인데, 검찰이 청와대의 속살을 파헤칠 수 있을까? 대통령이 '십상시'를 공개적으로 엄호하는데 검찰이 전면수사를 할 수 없다. 검찰이 '십상시'를 친다면 다음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검찰의 자질 문제 이전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는 오늘도 7평 공간에서 <절제의 형법학>을 펴내고 <개입의 형법학>을 쓰면서 스스로를 절제하고, 한편으로는 세상에 적극 참여하면서 개입하고 있다. 때로는 시인과 산책하기도 하고, 깊고 길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7평 공간은 한없이 팽창하고 축소하는 그의 소우주였다.
지난 6일 만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테이블 위에는 학생들의 리포트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걸 보자 그의 전공과 관련한 질문이 떠올랐다.
-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법학과 학생이고, 재임 기간 동안의 법률적 통치 행위를 시험대 위에 올렸다면 두 학생에게 어떤 성적표를 줄 수 있나?
"이명박은 C마이너스, 박근혜는 D마이너스다."
- 교수님 주변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낙제점을 주는 사람도 있을 텐데, 'F학점'을 주지 않은 까닭이 있나?
"F학점을 주면 재수강이 가능하다. 학점을 수정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D마이너스는 재수강을 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수강을 신청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다.
- 박근혜 대통령이 낙제점에 가까운 이유는?
"박근혜 정권 들어서 공안 통치가 강화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상인형 정치인이다. 상인형 정치가 공안 통치와 결합된 형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공안 보수이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유신헌법을 만든 사람이다. 그의 핵심 주변에 공안 통치를 확신하는 사람들, 군인 출신이 집결돼 있다. 그래서 법치를 공안 통치와 동일시하고 있다."
- 전 정권과 비교한다면?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수도 없이 대통령을 놀렸지만 처벌된 적이 없었다. '노가리' '깍두기'라고 해도 경찰이 수사할 생각조차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 때 우스꽝스러운 쥐벽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보다 더 강하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비판과 풍자를 엄금하는 '남조선의 최고 존엄'으로 등극한 것 같다. 그러나 야유와 풍자물은 넘쳐난다. 대구에서도 박정희 풍자 낙서가 걸렸다. 이를 주거침입이나 손괴죄 등으로 처벌하려고 한다. 웃기는 일이다."
살아있는 권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나의 강의] 박근혜·김기춘이 꼭 읽어야 할 네 권의 책
조국 교수는 오는 1월 21일부터 오마이스쿨 '고전읽기2' 강의를 시작한다. '이번 강의에서 다룰 네 권의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사회 저명인사를 꼽아보라'는 질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 등 우리 사회의 권력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이유를 듣기 전에 그가 많은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고전을 즐겨 읽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단지 오래된 책이기에 고전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오래된 책인데 현재 우리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고 해결 방향을 제시하기에 고전이라고 불린다. 과거의 책인데 우리 현재와 미래를 위한 그 무엇이 있기에 고전이다. 많은 분들이 고전을 어렵게 생각할 것이다. 어투도 지금과 다르고 외국 사람이 쓴 것도 많다.
나는 2015년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고전의 핵심을 풀어서 전달하려는데, 단지 단어와 문장을 해석하려는 게 아니다. 글을 쓴 사람도 당시 현재를 산 사람이다. 고전을 쓴 저자가 언제 태어나서 무슨 고민을 하면서 살았고 이 글을 왜 썼는지를 파악하면 어려운 글이 살아서 움직이고 현재의 것이 된다. 현재와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고전 읽기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 저자의 시대와 공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것이다."
<법학고전 읽기2>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샤를 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존 롤스의 <정의론>을 다룬다. 교과서 등에서 한번쯤 봤을 제목들인데, 전공자가 아니면 표지를 넘길 엄두도 내지 못했을 책들이다. 강의에 오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에게 고전의 현재적 의미를 물었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 "현대 민주주의 기초를 세운 주춧돌이다. 주권자인 시민들 사이의 계약에 기초해서 민주공화국이 움직이는데 그 한마디를 여러 이야기로 풀어간다. '대한민국 속에서 나는 뭐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처음과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 "올바른 법의 정신을 가르쳐준다. 법 같지 않은 법도 존재하고 법의 정신을 왜곡해서 집행하는 현상을 해석해 줄 수 있다. 제대로 된 법의 정신에 입각해서 현실에 존재하는 법률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책인데 형법학의 바이블이다. 사형폐지론을 제창하기도 했던 저자는 현재 운용되는 민주주의에서 형법과 형벌의 사용 지침을 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형벌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주는 책이다."
존 롤스의 <정의론> :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마이클 샐덴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롤스의 <정의론>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의론 세운 사람은 롤스다. 자유와 평등의 결합을 법철학적으로 가장 먼저 정립한 책이다. 2012년 대선 때 경제민주화를 이슈화됐는데 롤스의 정의론이 실현되는 게 경제민주화다."
☞ 조국 교수 <법학고전 읽기 1> 보기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루돌프 폰 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박근혜 정부는 '귀족정'... 국민이 아니라 '백성' 원한다
-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학생이라고 가정하고 재임 기간 동안의 법률적 통치 행위에 대해 어떤 점수를 주겠나"라는 질문에 "이명박은 C마이너스, 박근혜는 D마이너스"라고 답했다. ⓒ 남소연
네 권의 책 제목만 봐도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지금의 시대에 곱씹어 볼 대목이 많은 듯하다. 그가 이 고전을 박근혜 대통령 등 우리 시대의 권력자들부터 읽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사회적 차원에서 민주공화국인데 그 법률적 외피 안에 귀족정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정치귀족과 사회귀족이 생겼다. 요즘 말로 이야기하면 '슈퍼 갑'이다. 정치귀족의 대표는 여왕이다. 재벌은 사회귀족의 정점에 있다. 민주정의 위기다.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존재로 움직인다. 사회적으로는 재벌이 법 위에 있다. 법의 핵심은 귀족과 평민 모두가 법의 규율을 받는 것인데 법으로부터 자유롭고 법을 왜곡하는 집단이 생겼다. '파업은 민란, 진보당은 역적, 지식인은 귀양을 보내야 할 서생'으로 바라본다."
- 박 대통령이 귀족정의 정점인가?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신년인사회에서 V자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비유해 각 부처의 일사불란함을 강조했다. V자의 꼭짓점에 자신이 날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가 울리면 가슴에 손을 얹는 부부를 감동적으로 봤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말이 상징적이다. 그는 국민이 아니라 백성을 원한다. 주권자가 아니라 신민을 원한다. 힘과 돈으로 귀족정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흐름이 필요하다. 내가 신민이냐, 주권자이냐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민주정이 귀족정으로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주권자의 의무이고 지식인의 도덕적 의무다."
[나의 공부] "가진 자의 '계급 배반', 난 억압과 차별에 맞선다"
조국 교수는 지난해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자기 성장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법을 공부하는 이유와 세상 공부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공부는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공부는 이렇게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공부는 끝이 없다."
그는 또 "공부에 대한 열정을 여는 열쇠는 작은 호기심 점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시인의 말을 빌리면 '새도 둥지를 틀지 않는 35m 고공의 한진중공업 철제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309일 동안 농성을 벌인 신인류'도 있었고, 지금도 평택 쌍용차 공장 70m 높이의 굴뚝에 올라가 복직을 외치는 사람도 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공포감'이 팽배한 사회, 이들에게 공부는 사치일 수 있다.
"사실 모두가 강퍅하다. 힘들게 하루벌이를 하고 입에 밥을 넣어야 한다. 현실이 힘들 때 많은 사람들의 해결방식은 TV를 켜는 것이다. 코미디를 보고, 쇼를 보는 순간 즐거움을 얻고 다음날 또 일을 한다. 그런데 그때 책을 선택해야 한다. 큰 기쁨을 줄 것이다. 지금 당장 웃지는 않겠지만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책을 보면 삶이 바뀐다. 돈을 벌어주는 게 아니지만 고통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고, 힘든 고통을 위로받을 수 있다. 공부가 쌓이면 삶을 넘어서는 비전과 방향도 나온다.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한국 보수의 밑천 드러났다... 2017년 진보 집권해야"
- 대학에서 함께 시대를 고민했던 많은 분들이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나오는 씁쓸한 모습처럼. 소위 '좌파'의 길을 계속 가는 데 가장 큰 동력은 공부였나?
"난 복이 많다. 다른 친구들보다 특별히 탁월했던 게 아니라 내 사상과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됐다. 내가 (<미생>에 나오는) 원 인터내셔널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대학이라는 조건이 좋은 환경이다.
또 주변을 보면 권력과 돈을 추구하려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난 의도적으로 다른 선택을 했다. 왜냐? 난 이미 가진 게 많다. 서울대 교수로 오기 전부터 난 한국사회에서 이미 가진 자였다. 지금은 시쳇말로 이름값과 명예까지 얻었다. 이 상태에서 더 많이 다른 것을 가지려는 것은 욕심이다."
- ▲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 남소연
- 그럼 무엇이 고민인가?
"가진 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 그게 내 고민이다. 골프를 치지는 않는데 골프채를 한번 잡아볼까? 지금 모는 차를 대형차나 외제차로 바꿔볼까? 그런 쪽의 욕망이 별로 없다. 나를 계급적으로 분류하면 부르주아가 될 것이다. 출신지역은 영남이다. 서울대 나왔기에 '학벌자본'도 가지고 있다. 이 정도의 스펙을 가진 전형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판단을 한 것이다. 일종의 계급 배반이다."
- 계급 배반에도 한계가 있지 않나?
"롤스, 러셀, 사르트르 등 수많은 과거 지식인들이 계급배반을 했다. 출신 이익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기계적 유물론이자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적 표현을 빌리면 계급적 한계는 있다. 나는 굴뚝에 올라간 이창근씨를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의 고통을 얼마나 알겠는가? 손배가압류로 고통받고 있는 파업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손잡고'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노란봉투 사업하고 있지만, 그 노동자들의 고통을 또 얼마나 알겠는가?
그래서 난 노동자의 삶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안다고 말할 뿐이다. 내가 전공하고 발을 딛고 있는 분야에서 깊고 길게 공부하면서 사회 구성원의 억압과 차별, 불평등에 맞서는 것이다. 고공농성을 하지 않고 7평 연구실에 있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는 나의 실천을 한다."
서울대 교수이자 1993년 사회주의노동자연맹 사건에 연루돼 반년간 옥고를 치렀던 국보법 전과자. 이런 계급 배반적인 이력도 그의 현실참여형 공부관에서 비롯된 셈이다.
-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등장으로 10년의 민주개혁 시대가 끝나고 긴 반동의 시대가 시작된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을미년인 올해 그리고 2017년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올해는 정치세력의 재편기다. 자기를 돌아보고 세를 재편하면서 비전을 점검하는 시간이다. 난 2017년에 범보수세력의 집권을 원치 않는다. 이번 10년으로 한국 보수의 밑천이 드러났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 무능력까지 드러났다. 경제민주화는 할 의사도 없고 경제살리기를 할 능력이 없다. 이들에게 우리 사회를 맡길 수 없다. 정권교체가 필요하다."
- 하지만 여전히 무기력한 야권은 존재감이 없다. <진보집권플랜>에서 말한 '왕이 되기를 포기한 행복한 영주들', 즉 지금 갖고 있는 지분과 세력에 만족하는 야권이 야성을 되찾아야 그나마 희망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올해는 범야권·범진보 진영이 혁신해야 할 시기다. 보수시대 15년이 도래하지 않도록 범진보진영이 머리와 힘을 모아야 한다."
[에필로그] 세상을 바꾸는 '7평'
사람마다 '결'이 있다. 나무의 결처럼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위해 얼마의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사람의 결이 결정된다. 사람마다 '마디'가 있다. 나무의 마디처럼 시간과 공간의 성과를 일단락 매듭져야 한 계단을 더 오를 수 있다. 사색과 성찰, 공부를 통해 결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를 세상과 공유하면서 매듭이 하나씩 완성된다.
"이 공간에서 혼자 득도를 하거나 자족적으로 성찰하려는 게 아니다. 깊게 오래 생각하면서 책과 사회활동을 통해 법과 사회를 바꾸고 싶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시민사회 인사와 정치인들이 많을 텐데, 그분들이 고민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내가 할 일이 있다. 여기는 학자인 나의 사회적 기여가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정치적 발언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나만이 할 수 있는 참여의 방향과 내용, 깊이를 준비하는 곳간이다."
매일 8시간씩 머물면서 과거를 탐구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서울대 법대 17동 504호는 조 교수의 결과 마디를 만드는 든든한 진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활짝 열린 공간이었다. 그는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에서도 "나는 언제나 내 공부가 책상머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경계한다"라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돈 냄새 보다는 사람냄새가 더 많이 나도록 하는 것이 내 공부의 목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 목표를 함께 이루려고 그는 7평 공간에서 짬짬이 64만 명의 트위터 팔로어와 5000여 명의 페이스북 친구에게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연대를 호소한다. 그는 1인 미디어이자 1인 군대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수구 반동적인 사회 분위기를 부추기는 언론의 행태도 비판했다.
"목욕탕과 미장원에 가면 모두 종편을 틀어놓는다. 보수 진영이 술자리에서 뒷담화하는 것을 TV로 중계한다. 범죄 전력자도 패널로 나오는 후안무치한 방송이다. 이명박 정부가 무리수를 써서 종편을 만들었는데 지나고 나니까 진보 정부가 순진했다는 생각을 했다.
종편 같은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았을 때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등 정당한 법적 조치를 실천했어야 했다. 앞으로 방송의 위력이 더 세질 텐데, 진보언론의 수가 너무 적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이 말을 마친 그는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짧은 홍보 동영상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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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수진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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