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권리가 너무 세서 집안의 법도가 서지 못한다.(女權太重 家道不成)”(이익의 <성호사설> ‘인사문’)
“아침에 마신 술은 하루의 근심이요, 맞지 않는 가죽신은 1년의 근심이요, 성질 나쁜 아내는 평생의 근심이다.(一日之患卯時酒 一年之患狹窄靴 一生之患性惡妻)”(성현의 <용재총화>)
‘엄처시하(嚴妻侍下)’의 두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사를 빛낸 위인들마저 부인의 말 한마디에 꼼짝도 못했으니 말이다.
어디 이익이나 성현 뿐이랴. 초정 박제가 역시 “요즘 사람 중에 자기 집안을 대장부 답게 다스리는 자가 어디 있느냐”고 한탄했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삼재(三災)’란 ‘수재(水災)와 화재(火災), 악처재(惡妻災)를 가르키는 말’이라 하지 않던가.
■영웅호걸도 부인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제 아무리 세상을 호령한 영웅호걸이라도 부인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였다.
오죽했으면 명나라의 전설적인 명장인 척계광(1528~1588)은 이렇게 말했다지 않은가.
“만 명의 원수(怨讐·적군)는 무섭지 않다. 그러나 집안에 있는 단 한 명의 원수(元帥·아내)는 무서워 한다.”
불멸의 양명학을 창시한 성리학자 왕양명(1472~1529)은 또 어떤가.
제자들에게 ‘인간의 도리와 사물의 이치’를 가르친 만고의 철학자였지만 집에서는 한낱 공처가였을 뿐이다. 왕양명이 첩을 들이기라도 하면 왕양명의 부인은 남편을 질질 끌고 나와 ‘반성하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존경받는 성리학자가 아내의 ‘사자후’에 놀라 손을 들고 싹싹 비는 꼴이라니….
당나라 시대 계양현 현령을 지낸 완숭(阮嵩)이라는 인사를 보라. 어느 날 완숭이 연회를 베풀다 흥에 겨워 계집종들을 불러 노래를 시켰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아내 염씨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에 팔을 걷어붙인 뒤 칼을 들고 달려온 것이다. 남편은 상 밑으로 숨고, 손님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고…. 결국 완숭은 ‘아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죄’ 때문에 ‘인사고과’에서 최하등급을 받고 파직됐다.
■‘공처가가 나 뿐이 아니로구나!’
비단 중국 뿐일까.
서거정의 <해동잡록>에 소개된 ‘공처가’ 이야기를 보라.
즉 지독한 공처가였던 어떤 장군이 교외에다 붉은 기와 푸른 기를 세워놓고 명령했다.
“공처가는 붉은 기 쪽으로, 공처가가 아니면 푸른 기 쪽으로 가라.”
그러자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붉은 기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모두들 ‘공처가’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단 한사람 만이 푸른 기 쪽으로 섰다. 장군이 부러워 했다.
“대단한 사람이야. 난 백만대군을 이끌고 적과 맞섰지만 한번도 항복하지 않았지만, 집에서는 꼼짝도 못하는데…. 자네는 무슨 비결이 있기에….”
그러자 푸른 기로 달려간 사나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제 아내가 늘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들이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밝힐 것이다. 그러니 남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마라.’고…. 그래서 저 혼자 푸른 기 쪽으로 간 것입니다.”
그제서야 장군은 맞장구를 치며 기뻐했다.
“야! 이 사람이야말로 공처가구나. 그러고보니 공처가가 나 뿐이 아니로구나.”
■지팡이로 맞은 임금님
공처가의 대명사가 우리 역사에도 있다. 바로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이었다.
충렬왕은 39살 때 무려 23살 연하인 제국대장공주(16살)와 혼례식을 치렀다. 제국대장공주가 누구인가. 바로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세조)의 막내딸이었다.
그랬으니 얼마나 기세가 등등했을까. 충렬왕에게는 원래 조강지처가 있었다. 24살 때 혼인한 정화궁주였다. 하지만 충렬왕은 제국대장공주와의 혼인 후 본부인(정화궁주)을 별궁에 유폐시킬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충렬왕이 새 부인(제국대장공주)과 천효사라는 절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문제가 생겼다. 왕이 먼저 절에 도착한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공주가 충렬왕에게 화를 벌컥 냈다.
“날 따르는 수행원이 왜 이리 적은 겁니까. 나 돌아가겠습니다.”
부인이 변덕을 부리며 행차를 되돌리자 당황한 남편이 부인을 따라 말머리를 돌렸다. 공주는 그런 남편을 맞아 지팡이로 때렸다.(公主以仗迎擊之)
이 때의 장면을 기록한 <고려사>를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공주가 지팡이로 왕을 때리자) 충렬왕은 사모를 벗어던지며 그 분풀이로 공주의 시종(홀라대)를 쫓아가 꾸짖었다. ‘다 네 놈 때문이야. 널 반드시 처벌할거야.’ 그 사이 공주의 노여움이 풀렸다. 다시 절로 돌아갔다. 그러다 이번에는 남편이 자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들어갔다고 욕하고 때렸다.”(<고려사> ‘제국대장공주’)
이 목불인견의 장면을 목격한 고려인들의 가슴은 찢어졌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문신이자 일관(日官) 문창유(?~1285)는 장탄식했다. ‘이보다 큰 모욕이 어디 있겠느냐.’”(<고려사> ‘제국대장공주’)
일국의 왕이 부인에게 매를 맞고, 부인의 시종에게 분풀이 하는 꼴이라니…. 그것도 23살이나 연하인 부인에게…. <고려사>를 다시 보면 점입가경이다.
“공주가 흥왕사의 황금탑을 파괴하여 금을 쓰려고 하자 왕이 ‘안된다’며 금했다. 공주는 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 충렬왕은 그저 울기만 했다.(王禁之不得 但涕泣而已)”
딸 뻘인 아내에게 혼이 나서 그저 울기만 했다는 것이다.
■공처가 열전
일국의 임금이 그랬으니 일반 백성들은 어땠으랴.
여말선초 때 왜구섬멸의 큰 공을 세운 최운해(1347~1404)의 아내 권씨는 성품이 질투가 심하고 사나왔다고 한다.
“걸핏하면 남편 얼굴에 상처를 내고 옷을 찢었다. 심지어는 말(馬)의 목을 자르고, 개(犬)를 쳐서 죽였다.”(<고려사> ‘열전·최운해’)
이 뿐이 아니었다. 권씨는 도망가는 남편 최운해를 쫓아가 칼로 내리치려 했다. 아내가 휘두르는 칼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꼴을 상상해보라.
조선조 중종 시대인 1517년(중종 12년), “못생긴 남편과는 동침도 안한다”고 남편을 구박한 여인이 있었다. 판관 홍태손의 부인(신씨)이다.
천성이 사납고 완악했던 부인 신씨는 결혼 후 6~7년간이나 남편과 동침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너는 추한 얼굴에 나이도 늙고 기력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혼인해서 나를 초라하게 만드느냐”며 “빨리 죽어라”고 다그쳤다.
1522년(중종 17년) 남편을 상습적으로 구타해온 아내 이야기가 장안에 화제를 뿌렸다. 결국 사헌부가 나서 사건을 조사한 뒤 임금에게 고했다.
“허지의 아내 유씨는 투기가 너무 심해 남편을 ‘상습구타(毆辱)’해왔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볏짚을 사람처럼 만들고 사지와 몸통을 절단하면서 ‘이것이 허지(남편)다’라고 계집종들로 하여금 축하하도록 했습니다.”
남편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담장을 넘어온 이웃집 수탉의 날개를 뽑고 사지를 찢어죽이며 말했다.
“니네 집에도 암탉이 있는데 남의 집 암탉을 쫒는 이유가 뭐냐. 꼭 허지(남편)같은 류의 짐승이로구나!”
유씨의 악행은 “소문이 퍼진 뒤이므로 조정 안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남편의 급소를 잡아 살해한 아내
1427년(세종 9년) 태조 이성계의 사촌동생인 이지가 79세의 나이로 갑자기 죽었다. 그런데 사인이 묘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내(후처인 김씨)와 함께 찾았던 절(향림사)에서 죽은 것이다. <태종실록>에 나타난 그의 졸기를 보면 “떠도는 이야기”라며 소개하는 심상찮은 사족이 보인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지의 부인(김씨)이 향림사 스님과 정을 통했는데, 남편(이지)이 간통 현장을 목격했다. 남편이 내연남과 김씨를 붙잡고 마구 때렸다. 그 때 김씨가 남편의 고환(불알)을 끌여당겨 죽였다.(金拉枝腎囊而殺之).”
바람을 피우다 현장에서 적발됐으면서도 남편의 급소를 잡아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씨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비록 죽을 죄를 지었으되 종친(이지)의 아내라는 점이 감안됐다. 하기야 뭐 좋은 일이라고 동네방네 소문내며 처벌을 하겠는가. 그러고보면 급소를 잡혀 죽임을 당한 남편만 불쌍할 따름이다.
이런 말이 있다.
당나라 초기 어사대부를 지낸 배담의 ‘공처가론’이다. 이른바 ‘아내가 무서운 세가지 이유’이다.
“첫째, 젊고 예쁠 때는 보살 같아서 무섭다. 둘째, 세월이 지나 집안에 자식이 많아지면 구자마모(九子魔母·동자를 잡아먹는 불경의 여신)처럼 변하니 무섭다. 셋째, 60대가 지나면 검은 얼굴에 온통 분을 발라 마치 ‘구반도(鳩盤茶·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불경 속 귀신)처럼 변한다. 어찌 무섭지 않으랴.”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알아둘만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동차 Engine (0) | 2014.07.08 |
---|---|
안토노프 AN-225 (세계최대 수송기)-퍼옴 (0) | 2014.05.14 |
넥타이 매는 18가지 방법 (0) | 2013.11.18 |
20년 경력 '진상 술꾼'의 양심선언 (0) | 2013.11.18 |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0) | 2013.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