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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도 안한 사초폐기” 난리치더니…
무죄 판결에는 ‘꿀 먹은 벙어리’

등록 : 2015.02.06 17:54수정 : 2015.02.06 17:56

대화록 초본 폐기 무죄 선고
‘사초 폐기’라며 참여정부 공세하던 청와대·여당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물타기 정황 더 명확해져

법원이 6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 폐기 사건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2013년 당시 ‘사초 폐기’라는 주장으로 야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쪽을 몰아붙였던 청와대와 여당이 곤혹스런 처지에 몰리게 됐다. 대화록 폐기 사건 자체가 현 정부 초기 불거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물타기하려는 청와대와 여권의 ‘꼼수’였다는 그동안의 비판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사초 실종 논란의 시작은 2012년 말 대선을 앞둔 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발언을 정략적으로 꺼내들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김무성 대선 캠프 선대위원장과 권영세 캠프 상황실장 등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자세히 파악한 상태에서 이를 선거전에 활용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대선 뒤인 2013년 2월 검찰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맞고소·고발에 모두 혐의 없음 결정을 내리면서 정상회담대화록 및 북방한계선(NLL) 논란이 사라지는 듯했지만, 박 대통령 취임 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파장이 거세지자 새누리당은 다시 대화록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해 6월20일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가정보원에 요청해 북방한계선(NLL) 발언을 검토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폭로했다. 서 위원장의 이런 폭로는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이 박근혜 후보 당선에 유리한 인터넷 댓글 작업을 벌여왔다며 기소한 지 6일만의 일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 타임라인(※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정부·여당의 ‘북방한계선 폐기 논란’의 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 위원장의 폭로 뒤 남재준 국정원장이 아예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과 발췌본을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배포하며 전면 공개에 나섰고, 새누리당은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 원본이 실종됐다며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대화록 초안 폐기에 관여했던 참모들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이같은 정부·여당의 공세에 정점을 찍은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8월6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때 활용해 온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번엔 아예 ‘사초 실종 사건’으로 규정하며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검찰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등 관련자를 출국 금지하고 경기도 성남의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해 했으며, 디지털자료 분석용 특수차량까지 동원해 755만건의 기록물을 분석해 ‘기록관에는 회의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 복사해간 ‘봉하 이지원’에서 회의록 초본이 삭제된 흔적과 완성본에 가까운 수정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사안 자체를 노 전 대통령 지시에 의한 ‘사초 삭제 사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2013년 10월2일 검찰이 이런 내용을 언론에 발표하자, 새누리당은 이날 하루에만 6번의 논평을 내며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 등을 궁지로 몰았다. “참여정부가 조선시대 연산군도 하지 않은 사초 폐기라는 만행을 저지른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굴욕적인 정상회담 결과가 역사적으로 지탄을 받을 것이 두려워 삭제한 것이 아닌가”(황진하 새누리당 의원), “사초 실종은 국기문란이며 있을 수 없는 일”(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 등이 당시 나온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날 법원의 무죄 선고 뒤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 누구도 무죄 판결에 대한 반응은 내놓지 않았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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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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