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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이임식…학생·교사 700명 ‘인간 하트’ 선물
29일 오전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이영희 교장을 위한 깜짝 이임식을 하려고 거대한 ‘인간 하트’를 만들었다. 선사고등학교 제공 |
‘혁신 학교’ 선사고 이영희 교장선생님 떠나는 날 감동의 선물
“제 이름 불러주신 선생님 사랑합니다”…권위 내려놓자 존경
한 반 30명 두 학급으로 나눠 두 명의 담임 통해 세심한 교육
지난 29일 오전 서울 강동구 선사고등학교 교장실에서 ‘마지막 업무’를 보던 이영희 교장은 학생들의 손에 이끌려 옥상으로 안내됐다. 1층 교장실에서 5층 옥상까지 올라가는 계단에는 학생 30여명이 ‘이제 더 넓은 곳, 더 높은 곳으로 가셔서’ ‘선생님의 참교육의 뜻을 맘껏 펼치실 수 있다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런 기쁜 일이 왜 이리 슬플까요’ 등 손팻말 편지를 들고 줄줄이 서있었다. 손팻말 편지를 따라 올라간 옥상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선사고 학생 700여명이 운동장 크기의 ‘인간 하트’를 만들어놓고 ‘교장 선생님 가감사’를 외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 ‘가’지 마세요, 교장 선생님 ‘감’사해요, 교장 선생님 ‘사’랑해요.”
이 교장은 1일부터 서울시교육청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 일한다. 2011년 서울형혁신학교로 개교한 선사고의 ‘초대 교장’으로 부임해 3년반 동안 ‘권력을 내려놓은 리더십’으로 교사·학생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며 학교를 만들어갔다. 학생들과 함께 이임식을 준비했던 서우정 교사는 이 교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훌륭한 리더는 함께 있을 때도 구성원들을 공동체로 뭉치게 만들지만, 떠날 때도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고, 남은 사람들이 잘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주고 간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26일 이 교장의 인사발령 소식이 선사고에 전해졌다. 교사들은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가 ‘진부하지 않게’ 교장선생님을 보내드리자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고3 추천사, 생활기록부 작성, 학생 간부 수련회 준비 등 바쁜 일이 한창이던 교사들은 선뜻 이임식 준비에 나서지 못했다. 그때 학생들이 먼저 교사를 찾아 교장 선생님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고 싶다고 나섰다. 전 학년 임시 대의원 대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이임식 개최를 결정했다. 입시 준비로 바쁜 고3들도 자발적으로 이임식에 동참했다.
이 교장은 교장실에 전교생 사진을 붙여놓고 이름을 거의 다 외우는 보기드문 교장이었다. 누가누가 사귀고, 누가누가 헤어졌고, 누가 성적이 오르고, 누가 방황을 하는 지, 아이들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교장이었다. 아이들은 이 교장이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걸 귀신 같이 알아챘다. 한 학생이 이 교장에게 편지를 보내 “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준 것은 처음”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흔하지 않은 교장이었다. 강명희 교사는 “이임식날 오후에 졸업생들이 교장 선생님을 찾아 왔는데, 공부를 잘 했던 애들이 온 게 아니었다. 교장 선생님한테 사랑받았다고 생각하니까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한테 이 교장은 권위주의를 내려놓아 권위를 얻은, 친근하지만 존경하는 교장이었다. 김대선 교사는 선사고에서 이 교장의 존재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혁신학교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게 교장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에서 진행하는 많은 프로그램들 중에 교장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하신 것도 있고, 때론 교사들에게 밀려서 하신 것도 있는데 어쨌든 교장 선생님이 모든 걸 수용하고 결정했다. 교사들이 마음껏 재능과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판을 마련해줬다.”
보통의 학교에서 교직원 회의는 교장의 뜻을 관철시키는 ‘요식행위’쯤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선사고에서는 교직원 회의가 실질적인 의결기구다. 이 교장은 교직원 회의에서 결정된 것을 과감하게 따랐다는 게 교사들의 증언이다. 이 때문에 선사고에선 다양한 교육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1학년 ‘작은 학급제’다. 1학년 한반에 30명인데, 15명씩 a반과 b반으로 나눠 각각의 담임이 맡는다. 수업은 30명이 함께 하지만, 담임과 하는 오전 창의체험 활동과 오후 종례는 a, b반이 나눠서 진행한다. 담임 한 사람이 학생 15명을 맡게 되니 아이들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고, 얼굴 표정만 봐도 아이한테 어떤 변화가 있는지 느낌이 온다. 김대선 교사는 “담임이 늘면 교장이 편하게 행정업무를 맡길 수 있는 선생님이 준다. 또 학급당 교실 2개가 필요한데, 이는 교장이 재량껏 쓸 수 있는 ‘다른 공간’을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선사고는 결재라인도 바꿨다. 보통은 평교사-부장교사-교감-교장의 체계인데, 부장 결재를 없앴다. 교장이 ‘자기사람’을 부장교사로 앉히고 부장은 해당 부서에 가서 교사들을 통제하는 옥상옥 구조를 깨기 위해서다. 부장 결재가 사라지면 교감과 교장의 업무가 많아지는데, 선사고 교장·교감이 그걸 수용했다. 김대선 교사는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있겠다, 교장·교감 선생님이 일을 많이 하시라’는 취지도 있었다. 이걸 수용한 학교는 전국에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선사고엔 학교 구성원들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여럿이다. 하루 30분씩 담임과 학생들이 알아서 활용하는 아침 창의체험, 일주일에 한번 학급회의, 반별로 학생들이 직접 정하는 소규모 테마 수학여행 등이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고등학교 ‘초대 교장’ 이영희 선생님이 학생과 선생 700여명이 운동장에 만들어 선물한 ‘인간 하트’를 학교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선사고등학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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