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남북 공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없다. 어느 쪽이 먼저 무력을 사용하건 남북간엔 ‘상호확증파괴’가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94년 지미 카터의 방북 직전 클린턴 행정부가 실시한 시뮬레이션에서 개전 24시간 내에 150만명의 사상자와 1주일 내 50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는 결론이 난 후 오랫동안 재확인되어 왔다.
그래서 보수언론에서조차 2000년대 이후론 전면전은 공멸이며 어떤 상황에서라도 침착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논조가 대세를 이뤄왔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과 종편 출범 이후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호전적 목소리들이 강화되어왔고, 이번 연천 포격 국면에서 언론의 쇼비니즘(국수주의)과 황색저널리즘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언론의 호전적 보도행태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1) 이번 기회에 북한에 본때를 보여주자는 응징론 2) 용기를 내어 나라를 지키자는 희생론 3) 군을 믿자, 박근혜 대통령을 사령관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국가주의 4)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방불케하는 황색저널리즘 5) 남북간 대화, 평화공존 노력을 매도하는 진영논리 등이 대표적이다.
1) 응징론
응징론은 조선일보를 필두로 보수언론 전반에 팽배해있는 북한 관련 보도행태인데, 이번 연천 사건에선 경향신문에서도 응징론 프레임을 사용했다.
조선일보는 사건 이틀뒤인 22일자 4면 톱기사에 연천 인근과 통일촌 주민의 말을 인용해 “북의 상습도발 두렵지 않다…단호하게 맞서 못된 버릇 고쳐줘야”라는 제목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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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2일자 4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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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21일자 사설에서 ‘남측 지뢰 매설에 포격까지 한 북한, 용납할 수 없다’는 제목으로 “북한의 두 얼굴을 확인” “대화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응징론 프레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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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의 8월 21일자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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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희생론
조선일보는 연천 포격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21일 금요일자 ‘여기서 북 도발 습성에 종지부 찍어야 한다’ 제하의 사설에서 “우리 군사적 능력은 모자라지 않다. 부족한 것은 결의와 인내심”이라며 “우리 국민이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북에 끌려 다니는 악순환을 끝내겠다고 결심하고 불편과 희생을 각오한다면 북의 도발 습성은 여기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희생론을 펼쳤다.
채널A는 21일 ‘“불러만 달라”육군 SNS에 군복 댓글 릴레이’라는 리포트에서 ‘“언제든 다시 불러달라”는 뜻으로 옛 군복과 군화를 꺼내 입고 인증 사진을 찍어 올리는 (예비군의)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며 “현역 시절 신었던 군복과 군화를 찍은 사진을 올리며 ”북한을 응징하겠다“는 굳은 의지도 다진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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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8월23일 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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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는 23일에도 “군인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는 아버지의 글이 SNS를 통해 알려져 화제”라면서 “아버지의 아들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아들인 우리 군인들에게 이 나라는 의지하고 있다며 용맹함을 떨쳐달라고 당부했다”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3) 국가주의
이번 사태에서 보수언론이 공히 사용하고 있는 보도행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쟁사령관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전 국민이 군인처럼 단결해야한다는 국가주의적 프레임이다
한국경제는 22일 1면에 군복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이 군 장성들 한 가운데 앉은 사진과 함께 “군을 믿고 힘 실어 줄 때다”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뽑았다.
조선일보는 22일자 3면 기사에서 “박 대통령, 전투복 입고 야전 사령부로…”선조치 후보고하라“ 지침”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군이 이번에 아주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었는데, 먼저 정신에서 승리한 후 실전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대통령·군·국민 모두 정위치에서 안보 위기 이겨내야”라는 제하의 사설에서도 ‘한 치의 빈틈’ ‘불퇴전’ ‘적전 분열’ ‘결연하게 맞선다면’ 등 국방일보를 방불케하는 군사 용어를 사용하며 독자들에게 정신무장을 주장했다.
4) 황색저널리즘
이번 연천 포격 국면에선 보수언론의 이념적 편향만이 아니라 선정주의로 가득한 황색저널리즘 보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중앙일보의 22일자 1면과 4, 5면과 서울신문의 22일자 2, 3면은 흡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지상중계를 보는 듯 화려한 인포그래픽과 군 관련 사진들로 도배됐고 군사작전 관련 내용들이 다뤄졌다. 한국일보도 같은날 1, 2, 3, 4면을 털어 유사한 내용들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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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8월21일 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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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은 21일 ‘北, 이번엔 테러 준비 정황…주요 탈북인사 신변보호 대폭 강화’라는 기사에서 “북한이 포격 도발과 함께 국내 주요 탈북인사 테러를 준비하고 있고, 이런 움직임을 우리 공안 당국이 포착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현재 다수의 주요 탈북 인사들이 24시간 특별 경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보도의 근거로는 몇몇 탈북자 단체와 극우 단체 대표들의 멘트를 인용한 게 전부이며 ‘정보당국’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사실 검증을 피해갔다.
5) 진영논리
보수언론은 응징론과 국가주의 프레임 하에서, 대화를 강조하는 야당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들도 곁들이고 있다. 특히 TV조선은 21일 대북 확성기 방성과 관련해 ‘노무현 정부 때 중단…“남북 대화 성과 욕심에 포기”’라는 보도를 내고 “11년 전 보여주기식의 남북 대화 성과를 내기 위해 했던 ‘통 큰’ 양보가 불필요한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치 국면을 활용해 남북간 대화와 평화공존 노력을 해 온 야권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한 진영논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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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8월24일자.
미디어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