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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 밝힌 ‘3만 촛불의 약속’

등록 : 2014.05.17 23:29수정 : 2014.05.18 08:49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5.17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월호 시민 촛불 원탁회의'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시민 5만명(경찰 추산 1만1000명)이 참여했다. 【서울=뉴시스】

500여 시민사회단체 세월호 추모 집회
김상근 목사 “국민 목숨 못지킨 대통령은 온전한 대통령 아냐”

“끝까지 함께할게. 꼭 밝혀낼게.”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을 향한 3만 인파의 약속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 뜨겁게 울려퍼졌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 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가 주최한 ‘세월호 참사 추모 5.17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 “행동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열린 추모집회에는 애초 예상했던 1만명보다 3배가 많은 3만여명이 모여 청계광장 인근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추모집회 첫번째 발언자로 나선 인터넷 까페 ‘엄마의 노란손수건’ 오혜란 대표는 “우리 엄마들은 아이들의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도 너무도 무지하게 기도만 하고 있었다. 이제 눈물이나 흘리는 나약한 엄마가 아니라 행동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며 “우리의 이름은 엄마다. 우리 아이들의 생명은 엄마가 지키겠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5.17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월호 시민 촛불 원탁회의‘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시민 5만명(경찰 추산 1만1000명)이 참여했다. 【서울=뉴시스】

원탁회의 대표인 김상근 목사가 연단에 올라 “국민들의 목숨을 지키는 정부는 온전한 정부가 아니다. 국민들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은 온전한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외치자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박수가 쏟아졌다. 김 목사는 이어 “참사의 진상규명을 이 정부에 맡겨서는 안된다. 진심이 없고, 눈물이 없고, 가슴이 없는 이 정부에 진상규명을 맡길 수 없다”며 “시민사회가 진상규명에 참여해야 한다. 선생님도, 교수도, 기자도, 불교·천도교·천주교·원불교 신자들도, 주부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계를 대표해 발언에 나선 전국언론노동조합 이경석 수석부위원장이 “기레기들도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침몰하는 KBS, MBC, 한국 언론에 선원이 되어 국민들을 구조하겠다. 우리를 외면하지 말아달라. 모든 국민이 침몰하는 한국 언론의 평형수가 되어달라”고 호소했다.

정당이나 단체에 속해있지 않으면서도 작은 행동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해온 일반 시민들의 발언도 이목을 끌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침묵행동’을 제안한 대학생 용혜인(25)씨는 이날 집회에 참석해 “‘제 자식이 죽어서 국민들한테 슬픔을 줘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한 유가족분이 계셨다. 국가 시스템에 의해 자식을 잃은 부모가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정부가 우리 모두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며 “당신이 하는 건 추모가 아니라 불법이라는 경찰이 두렵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만히 있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민 5만명(경찰 추산 1만1000명)이 모인 가운데 ‘세월호 참사 추모 5.17 범국민 촛불행동‘이 열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추모·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시민단체들이 모여 구성한 ‘세월호 시민 촛불 원탁회의‘가 주최한 이날 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청계광장~보신각~종로3가~을지로3가~서울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서울=뉴스1)

검은티를 입자는 또다른 시민행동을 제안한 권순영(34)씨는 연단에 올라 “사고 당일 밥을 먹으면서 배가 침몰해가는 것을 봤다. 나 역시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살인에 내가 동참한 것 같다”며 “우리는 언론과 정치권과 대통령의 행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구조를 하라니깐 구경을 하고, 지휘를 하라니깐 지랄을 하고, 보도를 하라니깐 오보를 하고, 조사를 하라니깐 조작을 하고, 조문을 하라니깐 연기를 하고, 사과를 하라니깐 대본을 읽고, 책임을 지라니깐 남탓을 하니, 하지를 않으려면 하야를 하라!”는 문구가 적힌 검은 티를 입고 있었다.

이날 집회에는 민주노총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등 단체 참가자와 함께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참석자들도 많았다. 인천 청라지구에서 집회 참석을 위해 자녀 셋과 함께 나온 박은주(41)씨는 “수사 결과가 나왔지만 답답함이 해소가 되지 않는다. 선장이 방송을 안한 건 잘못이지만 구조가 안 된 게 더 문제이지 않냐. 뭔가 투명하지 않은 것 같아 그걸 밝혀달라고 여기에 나왔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5.17 범국민 촛불행동‘을 마친 참가자들이 보신각 인근에서 서울광장을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추모·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시민단체들이 모여 구성한 ‘세월호 시민 촛불 원탁회의‘가 주최한 이날 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청계광장~보신각~종로3가~을지로3가~서울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서울=뉴스1)

1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5.17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으로 행진하던 중 일부 시민이 대열을 벗어나 청와대로 향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대치하고 있다. ‘세월호 시민 촛불 원탁회의‘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추최측 추산 시민 5만명, 경찰 추산 1만1000명이 참여했다. [서울=뉴시스]

한편 촛불집회가 열린 청계광장 건너편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대한민국 재향 경우회, 고엽제 전우회, 육·해·공군·해병대 대령 연합회 등이 주최한 ‘세월호 참사 악용세력 규탄 집회’가 2000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회로 삼아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면서 “희생자 가족과 정부에 대한 이간질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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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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