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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
박명림 교수 세월호 참사 현장 기고
이 못난 나라의 ‘패덕’을 부디 용서하지 마라
박명림(연세대 교수. 정치학) |
꽃다운 젊음이 가라앉는 걸
눈뜨고 지켜보는 나라
한국호의 참담한 민낯이 보였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 선진국이라는 자만에 더해, 전자·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를 포함한 첨단산업들이 세계 선두권이라고 자랑해왔다. 금번 사태를 야기한 조선산업과 해운산업 역시, 전자는 주요 국제비교지표(수주량, 수출액, 수주 선박당 평균 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서 장기간 세계 1위였고, 후자는 세계 5·6대 강국을 넘나들었다. 속도의 상징인 통합전자정부지수와 인구 백만명당 인터넷 가입 건수도 세계 1위였다. 기술과 산업, 첨단화와 정보화의 이 휘황한 세계 선두권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인간위기상황이 도래하자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안전지침, 초기 연락, 위기 대응, 인명 탈출 안내, 구조작업, 정부의 합동 대처는 리더십과 책임감, 신속성과 첨단성, 통합지휘체계의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우왕좌왕 상태에서 배가 ‘가라앉고’ 꽃다운 생명들이 ‘죽어가는’ 실제 상황을 눈뜨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상황의 긴박함, 가족들의 절실함과는 달리 정부는 지리멸렬하였다. 생사를 가를 결정적인 상황 초기, 정부는 지휘 중심도 책임 핵심도 없었다. 전시도 아닌데 서로 미루고 허둥대다 눈앞에서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실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선실의 학생들처럼 오직 정부의 말을 믿고 기다렸다. 결과는 죽음이었다. 어려운 ‘수중인양작업’을 통해 ‘시신’을 건져내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도, 촌각을 다퉈 ‘생명’을 구출해야 하는 ‘수상구조작업’이 절실할 때는 왜 사력을 다하지 않았는지 거듭 통탄하며 묻게 된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팽목항의 사망자 현황판은 시대의 대표 아픔을 증거한다. 최초 승선 시의 탑승자에서 생존자와 구조자로, 다시 실종자로, 그리고 끝내는 사망자로의 창졸간의 급변은 정부의 유능과 무능이 국민들의 생과 사의 갈림길임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23일 오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세월호 침몰사고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들이 ‘대한민국 미워요’라고 적힌 조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안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내가 자식을 죽였다”며
목놓아우는
이 단말마적 비극은
대체 무엇인가
사회지도층이 생명위협 무릅쓰고
국민 지켜왔다면
선장 선원이 아이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탈출하는
짐승만도 못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왜, 어떻게
이 통곡의 바다를 초래했는지
우린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 죽음들을
참되게 위로하는 길은
사람 중심 나라를 만드는 것뿐이다
지도층이 생명 위협에도 국민을 끝까지 보호하고, 추상같은 기강을 보여왔다면 나라의 근본이 이리 처참하게 붕괴되지는 않았고,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들만 탈출하는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모태는 이 사회였던 것이다. 세월호 침몰의 또 한 본질은 돈·기업 제일주의와 신자유주의다. 무리한 출항, 안전 불감증, 점검 소홀에 일관된 현상은 기업의 이익추구와 규칙·규제의 작동불능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 허용된 선령 연장의 목적도 기업이익의 보장이었다. 기업친화정책의 한 결과는 진도의 참상이었다. 규제는 규칙이다. 규칙은 자유와 평등, 인간안전과 생명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에 완화해선 결코 안 된다. 외려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법조·세무·교육·금융·해운·건설·문화·언론… 한국의 모든 부문과 영역에 만연한 낙하산과 전관예우는 기업과 전관들의 결탁과 이익을 보장하는 반면 규제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공공성을 철저히 파괴한다. 꼭 금지해야 한다. 금번의 경우 한국해운조합의 38년에 걸친 낙하산·전관예우는 정부-조합-기업의 강고한 결탁을 통해 국가의 기업에 대한 합법적 규제를 불가능하게 했고, 끝내는 국민을 죽음의 바다로 몰아넣었다. 세월호 침몰은 전관예우, 관경(官經)유착, 규제완화, 규제작동 불능의 총체적 귀결이었다. 기업들과 은행들의 방만경영, 비자금 조성, 도덕해이, 규칙위반이 초래한 대재앙인 환란으로 인한 고통을 치렀으면서도 또 규제완화인가? 부동산 투기, 족벌경영, 문어발 확장과 자영업 붕괴, 카드대란, 저축은행사태도 모두 규제완화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비정규직의 확산은 이제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핵심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안·경비·건설·철도·해운·운수와 같은 안전 관련 직군의 비정규화와 외주화는 우리네 일상 삶의 안전을 파괴한다. 이번에도 선장은 1년짜리 계약직이고, 핵심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다. 개별 삶의 불안정성이 타자의 생명과 공동체의 안전파괴로 연결되는 무서운 현실이다.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삶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오직 각자도생을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자영상태·자연상태가 도래한 것이다. 자연상태와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이 결합된 한국적 삶에서 반(反)생명화와 반인간화는 이제 기축 현실이다. 자살률, 저출산율, 산업재해사망률, 교통사고사망률, 직계존속살인율… 즉 주요 인간지표와 생명지표들은 모두 세계 최악 수준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인간안전을 뜻하는 문명상태·국가상태(=정치상태)에 반대되는 의미의 야만상태·자연상태(=전쟁상태)에 돌입해 있다. 문명화는 모든 사람이 국가 안에서 안전과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시민자격부여, 즉 시민화(civilis)를 뜻한다. 모든 사람의 평등한 인간화를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문명화는 산업화·물질화·정보화의 급진전과 반생명화·불평등화·반인간화의 극심화라는 양극단을 치달았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자살 숫자는 같은 기간 이라크 전시 사망자보다 더 많다. 한국은 평시 자기살인이 세계 주요 전쟁국가 사망보다도 더 많은 전쟁상태의 삶인 것이다. 믿기 힘든 충격적 현실이다. 타인살인, 군내 사망, 산업재해, 교통사고를 합치면 한국의 인간지표는 세계 최고의 야만성 자체다. 우리는 한국을 보며 국가발전경로에는 후진·중진·선진(先進)국뿐만 아니라 선진(善進)에 반대되는 악진(惡進)국도 있음을 알게 된다. 금번 참사를 계기로 우린 선진(善進)으로 대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정신과 영혼의 본래 뜻은 몸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숨·바람·호흡이다. 이제 우리는 이 사회의 숨·바람·호흡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혁명이다. 돈과 물질, 권력과 허세로부터 인간과 생명, 자유와 평등을 향한 새 기풍을 진작하지 않는다면 팽목의 통곡은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다. 아니 팽목은 이미 한국의 압축판이고, 세월호는 대한민국호의 다른 이름이다. 절대적 비극에는 절대적 반성이 필요하다. 절망적 상황에는 전면적 개혁만이 살길이다. 이 죽음들을 참되게 위로하고 바르게 기리는 길은 한국 사회를 사람 중심 나라, 생명 우선 사회로 환골탈태시키는 것뿐이다. 청년들은 이 못난 세대, 불행한 조국의 현실을 기필코 혁신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나라를 발본적으로 뜯어고치라. 이 패덕의 세대, 야만의 국가를 부디 광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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