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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도박, 경박하고 천박합니다

등록 : 2014.01.27 13:53 수정 : 2014.01.27 13:53

 

박근혜 대통령은 1월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대립과 전쟁 위협, 핵 위협에서 벗어나서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야만 하고, 그것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42
‘쥐박이 정권’ 이어 천박한 ‘도박 정권’ 본색 드러나
대박 망상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바닥부터 다져야

 

이명박씨가 못 마땅했던 것은 여러 가지지만 지금 생각해도 불쾌한 것은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였습니다. 한 신용카드 회사가 상업용 카피로 처음 사용했다고 하지만, 이 대통령이 인사말로 차용하면서, 온 세상이 경박한 부자 놀음에 들뜨게 됐죠.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카피가, 한 나라의 구호가 되고 가치가 되어버린 천박한 시대를 살았던 겁니다.

저작권을 따지자면 이명박 대통령이라도 주장하지 못할 게 없습니다. 그는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국민 성공시대’, ‘성공’을 키워드로 삼았죠. 사업가 출신으로 돈 벌고 출세한 그에게 성공이란 떼돈 벌어 출세한다는 것이었습니까. 그러니 국민성공시대란 국민이 돈 벼락 맞는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자 되라’는 것이나, ‘성공하라’ 것이나 오십보 백보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농담 삼아 건네더라도 경박하다는 핀잔을 피할 수 없는 것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두 팔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부자 되세요’라고 해댔으니, 경박의 극치였습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도덕의 본보기여야 하고, 모범적인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돈벌이에 미쳤어도,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만한 품격을 갖춰야 하는 겁니다. 국가의 품격이 문화적 경쟁력인 시대에, 돈, 출세, 성공 따위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으니, 세상의 어느 누가 호감을 보이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과 한때 후보 경쟁을 했던 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떻게 저런 경박스럽고 천박한 사람에게 졌을까.

그가 내세웠던 구호는 사기로 끝났습니다. 그는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었을 뿐, 대다수 가난한 국민들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실질 소득은 줄었고, 집안 빚은 늘었습니다.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할 국가 빚 역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입으로는 부자 되게 해주겠다면서 실제로는 국민들의 뒷주머니를 털고 빚만 안겨 준 게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부자도 모자라 ‘대박’이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앞장서 제기하고, 정부 전체가 나서서 터트린 환상입니다. 그것도 민감한 통일 문제를 두고 벌이는 로또 도박이었으니, 차라리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점잖습니다. 게다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 통일 비용을 거론하며 ‘통일 허구론’을 퍼뜨렸던 일부 언론들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참으로 꼴볼견입니다.

대박이란 도박판에서 사용되던 말입니다. 특별한 노력이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떼돈을 버는 경우에 쓰는 말이죠. 로또 복권이 등장하고, 너도나도 대박을 꿈꾸며 로또에 열중하면서 대박은 일상 언어가 되었습니다. 국가 주도의 도박이 일상화되면서 대박이 일상화된 것입니다. 결국 이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써먹던 ‘부자 담론’을 ‘도박 담론’으로 발전시킨 셈입니다. 이제 경박한 ‘쥐박이 정권’에 이어 천박한 ‘도박 정권’의 본색이 드러났으니, 난형난제입니다.

물론 평화롭게 통일만 된다면야 그건 성공 대박을 떠나 국민적 축복이고 기쁨일 겁니다. 분단이 남북에 이식했던 전체주의적 억압체제는 민주적 평화체제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남쪽엔 새로운 시장, 새로운 노동력 등 새로운 기회가 될 터이고, 북쪽엔 인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평화롭지 않을 경우, 통일은커녕 파괴와 파탄만 남길 가능성이 큽니다. 전쟁은 아니어도 최소한 국지적 분쟁을 유발할 수 있고, 치명적인 생산 시설의 파괴와 국제적 신인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통일이라도 된다면 다행입니다만,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방관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북한이 남쪽(혹은 미국쪽)으로 흡수되는 걸 용인하지 않습니다. 센카쿠 열도를 두고 전쟁의 위험도 무릅쓰는 중국이, 어떻게 저의 턱밑에 칼날이 들어오는 걸 방치하겠습니까.

중국은 ‘조중 혈맹’에 따라, 북한의 급변 사태시 언제든 북에 병력을 진주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도 대한민국 군의 전시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군보다 서너 배 빨리 진주할 수 있습니다. 쿠테타로 대박을 터트린 게 두 번씩이나 있었던 정권이니, 북한에 쿠테타가 일어나 ‘종남 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기대할 수도 있겠죠. 아마 그런 환상에서 통일 대박 망상이 나왔을 겁니다. 북한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중국의 개입으로 내전의 우려가 커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종남 세력이 미국에 손을 벌린다면, 내전은 국제전으로 확전될 수 있습니다. 과정이 평화롭지 않다면, 대박은커녕 쪽박만 찰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인 겁니다.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도 통일 문제를 갖고 한번 대박을 터트렸죠. ‘7·4 남북 공동성명’을 통해 조성된 통일의 환상을 이용해 영구 집권이 가능한 유신체제 대박을 터트렸으니까요. 물론 아버지가 터트린 대박을 딸이라고 터트리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형편은 대박을 노리기 보다는 정권의 심각한 위기를 대박 환상으로 극복하려는 측면이 강합니다. 무엇보다 심각해지는 경제 형편이 문제입니다. 청년부터 노인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선거 부정으로 인한 정통성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입니다. 언제까지나 집권당 2중대 수준으로 지리멸렬한 야당에 기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뭔가 국민을 홀릴 소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너무나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에서 무언가 폭발하면, 그건 대박이 아니라 남쪽까지 위험에 빠트릴 ‘대폭발’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바탕 개그로 끝내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개그로서 나름 충분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보스 포럼 등 외국인들에게까지 통일 대박론을 펼치는 걸 보면,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호응하는 등 적극적인 대화 제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북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 곧 ‘붕괴론’을 언급하는 걸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철부지가 폭탄을 갖고 장난치는 것 같아 조마조마합니다.

곽병찬 대기자
이제 ‘대박 개그’는 그만 두시기 바랍니다. 더 계속하다가는 중독됩니다. 나라 구석구석, 아이들 학교 근처에까지 대형 화상 경마장을 설치해 국민을 도박판으로 끌어들이려는 이 나라 이 정부의 대통령이, 대박 환상으로 국민을 유혹해서야 되겠습니까. 위험천만한 통일 대박론에 기댈 것이 아니라, 씨 뿌려 가꾸고 가꾼 만큼 거두는 농부의 자세로 나라의 기본과 남북관계의 바닥을 다져나가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허황된 대박의 망상이 아니라, 근면과 성실의 힘에 대한 믿음의 씨를 나라 구석구석에 뿌리십시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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