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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

등록 : 2014.04.23 20:54수정 : 2014.04.24 11:49

 

박명림 교수 세월호 참사 현장 기고

이 못난 나라의 ‘패덕’을 부디 용서하지 마라

박명림(연세대 교수. 정치학)
세월호 참극의 현장을 이틀에 걸쳐 보고 온 박명림 교수가 통절한 심정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야. ○○야….” 목 놓아 딸 이름을 부르며 대답 없는 칠흑의 바다를 향해 “내가 저 배 속으로 대신 들어가겠다”고 울부짖는 엄마가 지금 내 옆에 있다. “저 조명 불빛 아래 찬 바다 밑에 내 딸이 누워 있다”고 오열하는 엄마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

풍어를 기원하고 만선을 기다리던 항구는 그렇게 사망자 명부를 응시하고 자녀의 시신을 기다리는 통곡의 장소가 되어 있다. 엄마아빠의 넋 나간 눈동자들과, 가슴을 후벼 파는 외마디 비명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신음 소리조차 목에 걸리는 이 단말마적 비극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왜, 어떻게 이런 통곡의 바다를 초래했는지 우린 반드시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진도의 절규를 처절하게 직시하지 않는다면 사람 사는 사회, 좋은 나라를 위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숱한 비극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대참사가 또 터졌기 때문이다.

꽃다운 젊음이 가라앉는 걸
눈뜨고 지켜보는 나라
한국호의 참담한 민낯이 보였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 선진국이라는 자만에 더해, 전자·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를 포함한 첨단산업들이 세계 선두권이라고 자랑해왔다. 금번 사태를 야기한 조선산업과 해운산업 역시, 전자는 주요 국제비교지표(수주량, 수출액, 수주 선박당 평균 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서 장기간 세계 1위였고, 후자는 세계 5·6대 강국을 넘나들었다. 속도의 상징인 통합전자정부지수와 인구 백만명당 인터넷 가입 건수도 세계 1위였다.

기술과 산업, 첨단화와 정보화의 이 휘황한 세계 선두권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인간위기상황이 도래하자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안전지침, 초기 연락, 위기 대응, 인명 탈출 안내, 구조작업, 정부의 합동 대처는 리더십과 책임감, 신속성과 첨단성, 통합지휘체계의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우왕좌왕 상태에서 배가 ‘가라앉고’ 꽃다운 생명들이 ‘죽어가는’ 실제 상황을 눈뜨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상황의 긴박함, 가족들의 절실함과는 달리 정부는 지리멸렬하였다. 생사를 가를 결정적인 상황 초기, 정부는 지휘 중심도 책임 핵심도 없었다. 전시도 아닌데 서로 미루고 허둥대다 눈앞에서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실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선실의 학생들처럼 오직 정부의 말을 믿고 기다렸다. 결과는 죽음이었다. 어려운 ‘수중인양작업’을 통해 ‘시신’을 건져내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도, 촌각을 다퉈 ‘생명’을 구출해야 하는 ‘수상구조작업’이 절실할 때는 왜 사력을 다하지 않았는지 거듭 통탄하며 묻게 된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팽목항의 사망자 현황판은 시대의 대표 아픔을 증거한다. 최초 승선 시의 탑승자에서 생존자와 구조자로, 다시 실종자로, 그리고 끝내는 사망자로의 창졸간의 급변은 정부의 유능과 무능이 국민들의 생과 사의 갈림길임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23일 오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세월호 침몰사고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들이 ‘대한민국 미워요’라고 적힌 조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안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 못난 나라의 ‘패덕’을 부디 용서하지 마라

아직 신원을 몰라 인상착의만 쓰여 있음에도 금방 알아차린 엄마는 상황판 앞에 그대로 무너지며 지상에서 가장 슬피 통곡한다. 집안 경제가 어려워져 수학여행 경비를 출발 직전에야 이웃에게 꿔서 낸 한 아빠는 “내가 딸을 죽였다”며 흐느꼈다. 체육관에는 탈진하여 링거를 꽂은 가족들도 계속 늘어갔다. 한 아빠는 수술로 아픈 몸을 이끌고 내 아이를 살려내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었다.

어떤 아빠는 안산에 대기하고 있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여보, ○○이 나왔어” “어머니, ○○이 나왔어요”라고 전화를 건 뒤,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아빠들은 그렇게 초인적 의지로 슬픔을 삼키고 있었다. 이토록 큰 슬픔을 도대체 어떻게 참는지…. 한 아빠의 짧은 답변이 모두를 대변했다. “아이가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 그거 하납니다.” 그 하나의 간절한 소망조차 모두 빼앗아버린 게 우리의 정성이요 능력이었다.

처음 배 안의 시신 3구를 인양했을 때 체육관 전면 전광판을 일제히 응시하는 눈빛들의 숨죽인 긴장과 초조는 지금껏 내가 경험한 가장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나라의 무능과 억울함에 가슴이 미어져 굵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배 안 세 ‘시신’의 첫 ‘인양’ 직후 ‘생명’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마침내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박근혜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내 아이를 살려내라! 살려내라!” 엄마아빠들의 행진 외침은 심야의 섬 공기를 갈랐다. 결국 총리가 나타났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던 총리는 대화를 중단하고 차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경찰청 차장이 나타나, 가족들에게 불법이니 도로점거를 풀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가족들은 청와대 행진을 막지 말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총리에게 차에서 내려 대화를 하자고 했다.

총리는 문도 안 연 채 대답이 없었다. 가족들은 새벽까지 기다렸으나 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경찰청 차장은 다수가 도보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해서 허가할 수 없다며 대표를 뽑아 출발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버스로 가면 허락하겠습니까?” “대표들만 출발하면 청와대행을 보장하겠습니까?” 경찰청 차장도 답이 없었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총리의 답변을 포기한 가족들은 며칠째 한숨도 못 잔 몸을 이끌고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불통이었다. 슬픔과 분노를 넘는 가족들의 자제와 사려에 가슴이 더 저며 왔다.

가족들의 팽배한 불신은 정부의 극도의 무능과 혼선과 불통 때문이었다. 특히 정부를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다 자식들을 죽였다는 분노와 자책 때문이었다. 정부는 속히 조치해야 한다.

첫째, 이번 참사는 결코 국가안보도 국가기밀 사항도 아니다. 국민생명의 집단죽음이다. 따라서 어떤 정보도 숨겨선 안 된다. 사실 조작과 유언비어를 제외하곤 어떤 의견과 정보도 통제해선 안 된다. 모든 정보를 가장 정확하고 가장 신속하게 공개하라.

둘째, 유족 대표들이 대통령 또는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직통 채널을 개설하라.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통합지휘를 해야 할 중대 사안이고 위급상황이기 때문이다.

셋째, 속히 합동분향소를 확장 설치하라. 진도, 안산, 인천, 서울은 물론 전국의 주요 도시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여 학생과 국민들의 조의의 장소로 삼아야 한다.

넷째, 현지에 파견된 경찰을 축소하고 사복경찰들은 철수시켜야 한다. 지금 진도에는 너무 많은 경찰이 진주해 있다. 또 경찰은 가족들의 대화에 개입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경찰은 가족들의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는 최소 역할에 그쳐야 한다.

선장의 경악할 행태는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그는 위기시 한국 사회 최고 책임자들의 행동을 그대로 재연했다. 몽골의 고려 침략, 일본의 조선 침략, 한국전쟁 때, 절체절명의 국난에서 국가 지도자들은 늘 국민에 앞서 먼저 도망을 갔다. 심지어 북한의 침략 직후 대통령은 금번 선장과 똑같이 거짓방송으로 국민들을 서울에 남게 한 뒤 자기만 먼저 비밀리에 서울을 빠져나갔다. 그럴 때마다, 위난과 전화에 버려진 민초들의 죽음과 고초는 극에 달했다.

천안함 때도 장교 7명은 전원 생존한 반면 사망한 46명은 모두 사병과 부사관들이었다. 당시 국가 최고위직들-대통령, 총리, 국정원장, 대통령 비서실장·정책실장, 감사원장, 여당 원내대표, 재경부 장관-은 군대를 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선박직 15명은 전원 생존하였고, 사망자들은 하위직과 일반승객들이었다. “내가 힘이 없어 아이를 죽였다”는 아빠들의 회한은 이 사회의 본질을 찔렀다.

한국 사회는 꼬리 자르기가 법치와 책임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전국민적 공분을 야기한 사건들도 처벌은 항상 실무급들 몫이었고, 책임자는 권력의 보호 속에 건재했다. 자기 진영과 자기 이념의 유불리만을 따져 처결하는 행태의 반복 속에 국가기강은 뿌리째 무너졌다. 행정·정보기구·군·경찰·기업·금융을 막론하고 동일했다. 지도층들은 바른 애국심과 참다운 공적 윤리는커녕, 법적 책임조차 거의 지지 않아왔다. 무너진 기강, 골병든 나라, 그 썩어문드러진 표출이 지금 진도의 통곡이다.

 진도는 근본이 무너진 나라의 참혹한 표상이다. 공직사회의 책임윤리는 파탄나고, 대통령의 어떤 영(令)도 서지 않으며, 사회는 온통 권력과 돈의 힘만 난무해온 모습의 압축판이 세월호 침몰과 사후대처가 폭로하는 한국호의 민낯이다. 이게 과연 나라인가?

근대정치학을 개창한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잘 조직된 공화국은 언제나 시민에 대한 상벌제도가 분명하여, 공적을 세웠다고 해서 결코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 일반국민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에 비하면 한국 지도층들은 국가기여를 명분으로 갖은 죄를 면탈받아왔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그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반공과 국가안보에 헌신했어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했으면 엄벌해야 한다. 경제발전에 기여했어도 위법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정권 기여와 자기 진영이면 책임도 처벌도 없었다. 거기에서 국가는 안으로부터 무너져갔다.

“내가 자식을 죽였다”며
목놓아우는
이 단말마적 비극은
대체 무엇인가

사회지도층이 생명위협 무릅쓰고
국민 지켜왔다면
선장 선원이 아이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탈출하는
짐승만도 못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왜, 어떻게
이 통곡의 바다를 초래했는지
우린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 죽음들을
참되게 위로하는 길은
사람 중심 나라를 만드는 것뿐이다

지도층이 생명 위협에도 국민을 끝까지 보호하고, 추상같은 기강을 보여왔다면 나라의 근본이 이리 처참하게 붕괴되지는 않았고,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들만 탈출하는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모태는 이 사회였던 것이다.

세월호 침몰의 또 한 본질은 돈·기업 제일주의와 신자유주의다. 무리한 출항, 안전 불감증, 점검 소홀에 일관된 현상은 기업의 이익추구와 규칙·규제의 작동불능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 허용된 선령 연장의 목적도 기업이익의 보장이었다. 기업친화정책의 한 결과는 진도의 참상이었다.

규제는 규칙이다. 규칙은 자유와 평등, 인간안전과 생명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에 완화해선 결코 안 된다. 외려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법조·세무·교육·금융·해운·건설·문화·언론… 한국의 모든 부문과 영역에 만연한 낙하산과 전관예우는 기업과 전관들의 결탁과 이익을 보장하는 반면 규제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공공성을 철저히 파괴한다. 꼭 금지해야 한다.

금번의 경우 한국해운조합의 38년에 걸친 낙하산·전관예우는 정부-조합-기업의 강고한 결탁을 통해 국가의 기업에 대한 합법적 규제를 불가능하게 했고, 끝내는 국민을 죽음의 바다로 몰아넣었다. 세월호 침몰은 전관예우, 관경(官經)유착, 규제완화, 규제작동 불능의 총체적 귀결이었다. 기업들과 은행들의 방만경영, 비자금 조성, 도덕해이, 규칙위반이 초래한 대재앙인 환란으로 인한 고통을 치렀으면서도 또 규제완화인가? 부동산 투기, 족벌경영, 문어발 확장과 자영업 붕괴, 카드대란, 저축은행사태도 모두 규제완화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비정규직의 확산은 이제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핵심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안·경비·건설·철도·해운·운수와 같은 안전 관련 직군의 비정규화와 외주화는 우리네 일상 삶의 안전을 파괴한다. 이번에도 선장은 1년짜리 계약직이고, 핵심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다. 개별 삶의 불안정성이 타자의 생명과 공동체의 안전파괴로 연결되는 무서운 현실이다.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삶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오직 각자도생을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자영상태·자연상태가 도래한 것이다.

자연상태와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이 결합된 한국적 삶에서 반(反)생명화와 반인간화는 이제 기축 현실이다. 자살률, 저출산율, 산업재해사망률, 교통사고사망률, 직계존속살인율… 즉 주요 인간지표와 생명지표들은 모두 세계 최악 수준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인간안전을 뜻하는 문명상태·국가상태(=정치상태)에 반대되는 의미의 야만상태·자연상태(=전쟁상태)에 돌입해 있다. 문명화는 모든 사람이 국가 안에서 안전과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시민자격부여, 즉 시민화(civilis)를 뜻한다. 모든 사람의 평등한 인간화를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문명화는 산업화·물질화·정보화의 급진전과 반생명화·불평등화·반인간화의 극심화라는 양극단을 치달았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자살 숫자는 같은 기간 이라크 전시 사망자보다 더 많다. 한국은 평시 자기살인이 세계 주요 전쟁국가 사망보다도 더 많은 전쟁상태의 삶인 것이다. 믿기 힘든 충격적 현실이다. 타인살인, 군내 사망, 산업재해, 교통사고를 합치면 한국의 인간지표는 세계 최고의 야만성 자체다. 우리는 한국을 보며 국가발전경로에는 후진·중진·선진(先進)국뿐만 아니라 선진(善進)에 반대되는 악진(惡進)국도 있음을 알게 된다.

금번 참사를 계기로 우린 선진(善進)으로 대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정신과 영혼의 본래 뜻은 몸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숨·바람·호흡이다. 이제 우리는 이 사회의 숨·바람·호흡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혁명이다. 돈과 물질, 권력과 허세로부터 인간과 생명, 자유와 평등을 향한 새 기풍을 진작하지 않는다면 팽목의 통곡은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다. 아니 팽목은 이미 한국의 압축판이고, 세월호는 대한민국호의 다른 이름이다.

절대적 비극에는 절대적 반성이 필요하다. 절망적 상황에는 전면적 개혁만이 살길이다. 이 죽음들을 참되게 위로하고 바르게 기리는 길은 한국 사회를 사람 중심 나라, 생명 우선 사회로 환골탈태시키는 것뿐이다.

청년들은 이 못난 세대, 불행한 조국의 현실을 기필코 혁신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나라를 발본적으로 뜯어고치라. 이 패덕의 세대, 야만의 국가를 부디 광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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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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